나는 고등학생이다. 그리고 할머니랑 둘이 산다 나라에서 주는 돈과 할머니가 주워오시는 폐지가 우리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불행하게 자라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폐지수집외에는 따로 할일이 없으셨던 할머니가 항상 내곁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가 밤마다 무서운 이야기도 곧잘 해주셨다. 무서운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나는 항상 잠을 설치다가 악몽을 꾸곤 했는데 그럴때면 할머니께서는 친절하게도 내가 눈부위에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는 깨워주시곤 했다. 그리고 잠에서 깬 나는 안도감과 왠지모를 서러움의 감정에 휩싸여 훌쩍거리며 다시 잠이 들었다.
악몽의 주제는 대부분 할머니가 해주신 무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순간 나를 쫓고있던 무서운 괴물들은 모두 친구가 되었고 나는 그것들의 대장이 되어 함께 놀곤했다 친구들과의 행복한 기억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씩 꾸었던 즐거운 악몽들이 내게는 작은 추억들로 남아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내주위에는 부쩍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친구를 사귀기는 힘들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말수도 적은 가난한 소년에게 관심을 두는 아이는 흔치 않았던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친구를 사귀겠다는 의욕을 잃어갔고 결국에는 반에서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 가위가 심하게 눌리던 밤… 아무리 움직이려고 노력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가위에서 풀려나려고 애쓰다가 그냥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위가 풀려있겠지..
'스스스스스스슷' 하지만 잠을 자려고 마음먹은 순간 귓가에 바람소리와도 같은 이명이 들리더니.. 방금전까지만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던 손발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드디어 가위가 풀렸나 싶어 벌떡 상체를 일으키고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할머니? 항상 내곁을 지켜주시던 할머니가 안보였다 나는 할머니를 찾기위해 급하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할..머!!!" 하지만 나는 바깥의 광경을 보곤 온몸이 굳어버렸다. 할머니랑 내가 살던 초라한 판자집은 온데간데 없고 멋진 정원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바로 엄마와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리고 화단에 물을 뿌리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뿌옇게 흐려진 눈을 비비며 미친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덥석 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나의 눈물은 홍수가 되어 넘쳐흘렀고 급기야는 온정원이 눈물로 가득차버렸다.
이런…. 눈물로 정원이 홍수가 나버리다니.. 이건 꿈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곳에는 내가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던 행복한 시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것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가 내눈가을 닦아주고 있었다. "무슨 꿈을 꿨길래 이렇게 울면서 자누.." 뭔가를 짐작하셨는지 할머니의 눈가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나는 인터넷검색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나도 모르게 흡입하고 있었다. 무조건! 무조건 나는 그꿈을 다시 꾸어야만 했고 내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순수한 목적을 위해 나는 한달이상 인터넷 검색에 몰두했고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해답은…. 가위에 있었다.
가위를 통해 자각몽으로 가는 방법은 대체로 간단했다. 가위자체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상태이기 때문에 가위상태에서는 약간의 신경이완만으로도 꿈으로 빠져들 수가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가위에 눌리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문제에 있어서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타고난 허약체질 덕분에 특별한 노력없이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가위에 눌렸던 것이다. 나는 그 한두번을 세네번으로 만들기위해 이틀에 한번꼴로 잠을 잤다. 그러기를 다시 한달여… 나는 의식적으로 자각몽을 꿀수 있게 되었다.
# 너무나도 행복에 겨운 시절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수업시간내내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실성한 사람처럼 밤을 기다렸다. 더 이상 현실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내가 창조하는 세계만이 나에게는 진실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수업시간내내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있는 내모습은 친구들이 보기에 그리 낯익은 광경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