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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P사감과 민주레터
게시물ID : readers_212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wangGaeTo
추천 : 13
조회수 : 42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5/08/11 1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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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without books is like a body without a soul.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 -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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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P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보수꾼으로 유명하다.
칠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죽은깨투성이 얼굴이 사람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튀긴지 삼년은 지난 치킨을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훌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흑백티비에서 튀어나온 양, 살짝 웨이브를 넣어 꽤나 단정한 품으로 빗어 고정한 머리라던지,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프롬모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P여사가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민주 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성실한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모르되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민주 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기숙생에게 오는 사신을 일일이 검토하는 터이니까 그 따위 편지도 물론 P여사의 손에 덜어진다. 달짝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편지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아마 까닭 없이 그런 편지를 받은 학생이야말로 큰 재변이었다. 하학하기가 무섭게 그 학생은 사감실로 불리어 간다.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모양으로 쌔근쌔근하며 방안을 왔다갔다 하던 그는, 들어오는 학생을 잡아먹을 듯이 노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코가 맞닿을 만큼 바싹 다가들어 서서 딱 마주친다.
 
웬 영문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선생의 기색을 살피고 겁부터 집어먹은 학생은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간신히 모기만한 소리로,
 

"저를 부르셨어요?" 하고 묻는다.
 

"그래 불렀습니다.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팍 무는 듯이 한마디하고 나서 매우 못마땅한 것처럼 교의를 우당퉁탕 당겨서 철썩 주저앉았다가 학생이 그저 서 있는 걸 보면,
 

"장승입니까? 왜 앉지를 못하는지 책임자를 엄벌하겠습니다." 하고 또 소리를 빽 지르는 법이었다. 스승과 제자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를 새에 두고 마주 앉는다. 앉은 뒤에도,
 

"이번 참사가 유감인 것을 학생에게 한치의 의혹도 없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 만에야 그 편지를 끄집어내어 학생의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 편지는 누구에게 오는 건지 한치의 의혹도 없도록 너나가 합의해서 잘해야합니다?" 하고 문초를 시작한다.
 
앞장에 제 이름이 쓰였는지라,
 

"저한테 온 것이야요." 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발신인이 누구인 것을 채쳐 묻는다.
 
그런 편지의 항용으로 발신인의 성명이 똑똑지 않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다가 자세히 알수 없다고 내대일 양이면,
 

"사건의 당사자가 재대로 설명을 못하는 것은 저를 비롯한 학생 모두를 속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명명백백히 사건의 전말을 밝혀서 한치의 의혹도 없도록 해야합니다." 라고, 불호령을 내린 뒤에 또 사연을 읽어 보라하여 무심한 학생이 나직나직하나마 꿀 같은 구절을 입술에 올리면, P여사의 역정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놈의 소위인 것을 기어이 알려한다.
 
기실 보도 듣도 못한 남성의 한 노릇이요, 자기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것을 증명하여도 곧이듣지를 않는다. 바른 대로 아뢰어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자살을 시킨다는 등, 제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편지할 리가 만무하다는 둥, 필연 행실이 개인의 일탈한 일이 있으리라는 둥---.
 

하다 못 해 어디서 한 번 만나기라도 하였을 테니 어찌해서 남자와 접촉을 하게 되었느냐는 둥,
자칫 잘못하여 학교에서 주최한 정무회의나 국회에서 혹 보았는지 모른다고 졸리다 못해 주워 댈 것 같으면 사내의 보는 눈이 어떻더냐, 표정이 어떻더냐, 무슨말을 건네더냐, 미주알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서 넉넉히 십년 감수는 시킨다.
 

두 시간이 넘도록 문초를 한 끝에는 민주주의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 먹으려는 마귀인 것, 민주주의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인 것을 입에 침이 없이 열에 떠서 한참 설법을 하다가 닦지도 않은 푸른지붕집 바닥(침대를 쓰기 때문에 방이라 해도 마룻바닥이다)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말끝마다 반인반신 아버지를 찾아서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려는 어린 양을 구해 달라고 뒤삶고 곱삶는 법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그의 싫어하는 것은 기숙생을 민주가 면회하러 오는 일이었다.
 
무슨 핑계를 하든지 기어이 못 보게 하고 만다. 시민단체, 유가족간이라도 시행령이 어떠니, 안보니 무슨 핑계를 하든지 따돌려 보내기가 일쑤다.
 

이로 말미암아 학생이 촛불 시위을 하였고 외신의 면박까지 들었건만 그래도 그 버릇은 고치려 들지 않았다.
 

P사감이 감독하는 그 기숙사에 금년 가을 들어서 괴상한 일이'생겼다'느니보다 '발각되었다'는 것이 마땅할는지 모르리라. 왜 그런고 하면 그 괴상한 일이 언제'시작된' 것은 귀신밖에 모르니까.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밤이 깊어서 새로 한 점이 되어 모든 기숙생들이 달고 곤한 잠에 떨어졌을 제 난데없는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하는 말낱이 새어 흐르는 일이었다.
 
하루 밤이 아니고 이틀 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소리가. 외신에 밝은 기숙생의 눈에 보이기도 하였지만 국내에선 찾을수가 없어서 외국뒷동산에 구르는 찌라시 노래로나, 빨갱이에 날개를 번뜩이며 울고 가는 종북좌파의 소리로나 흘러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의 장난이나 아닌가하여 무시무시한 증이 들어서 동무를 깨달으면, 밤소리 멀리 들린다고, 학교 이웃집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또 딴 방에 자는 제 동무들의 잠꼬대로만 여겨서 스스로 안심하고 그대로 자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풀릴 때는 왔다.
이때 공교롭게 한방에 자던 학생 셋이 한꺼번에 잠을 깨었다. 첫째처녀가 민생을 보러 일어났다가 그 소리를 듣고 둘째 처녀와 셋째 처냐를 깨우고 만 것이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요.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야."
 
하고 첫째 처녀는 휘둥그래진 눈에 무서워하는 빛을 띠운다.
 

"어젯밤에 나도 저 소리에 놀랬었어. 국정원이 났단 말인가?"
 
하고, 둘째 처녀도 잠오는 눈을 비비며 수상해 한다.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은 뿐더러(많았자 열여덟밖에 아니 되지만)장난 잘 치고 짓궂은 짓 잘하기로 유명한 셋째 처녀는 동무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이윽히 귀를 기울이다가,
 

"딴은 수상한걸. 나는 언젠가 한 번 들어 본 법도 하구먼. 무얼 잠이 아니 오는 애들이 이야기를 하는 게지."
 

이때에 그 괴상한 소리는 땍대굴 웃었다. 세 처녀는 귀를 소스라쳤다. 적적한 밤 가운데 다른 파동 없는 공시는 그 수상한 말 마디를 곁에서나 나는 듯이 또렷또렷이 전해 주었다.
 

"! 유신 씨! 그러하는 것이 정말로 국가안보와 민생에 있어서 최후의 골든타임 같은 것이라면 진정으로 각오를 가지고 개혁에........"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다.
 

"애 씨가 좋으시다면 내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아, 오직 애씨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가슴을 인제야 아셨습니까!"
 

정열에 뜬 사내의 목청의 분명하였다. 한동안 침묵--.
 

"인제 그만 놓는 것이 국민과 민생에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너나가 합심하여 함께 해야할 것입니다. 독재가 너무 길지 않는지 바쁜 벌꿀에게 물어보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줍니다. 국정에 간섭을 하는 것은 헌법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국민이 심판해야 합니다.“
 

아양 떠는 여자 말씨,
 

"길수록 더욱 좋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독재를 하여도 길다고 못 하겠습니다. 그래도 짧은 것을 한하겠습니다."
 

사내의 피를 뿜는 듯한 이 말 끝은 계집의 자지러진 웃음으로 묻혀버렸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독재에 겨운 남녀의 허무러진 수작이다. 감금이 지독한 이 기숙사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 처녀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놀랍고 무서운 빛이 없지 않았으되 점점 호기심에 번쩍이기 시작하였따.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결같이 로맨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안에 있는 여자 애인을 보려고 학교 근처를 뒤돌고 곱돌던 사내 애인이, 타는 듯한 가슴을 걷잡다 못하여 무관심이 이슥하기를 기다려 담을 뛰어넘었는지 모르리라.
 

모든 불이 다 꺼지고 오직 TV 조선만이 은가루처럼 서린 창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여자 애인이 흰 수건을 흔들어 사내 애인을 부른지도 모르리라.
 

활동 사진에 보는 것처럼 기나긴 피륙을 내리워서 하나는 위에서 당기고 하나는 밑에서 매달려 디릉디릉하면서 올라가는 정경이 있었는지 모르리라.
 

그래서 두 애인은 만나 가지고 저와 같이 독재의 속삭거림에 자자졌는지 모르리라-- 꿈결 같은 감정이 안개 모양으로 눈부시게 세 처녀의 몸과 마음을 휩싸돌았다.
 

그들의 뺨은 후끈후끈 달았다. 괴상한 소리는 또 일어났다.
 

"이렇게 안보에 해당하는 월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선거로서 심판할 것입니다. 당신 같은 독재는 사감의 이름으로 엄연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
 

이번에는 매몰스럽게 내어대는 모양.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 주어요, 나를 구해주어요."
 

사내의 애를 졸이는 간청---.
 

"우리 구경 가볼까."
 

짓궂은 셋째 처녀는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처녀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 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처녀의 흰 모양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소리나는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고는 나무로 깎아 세운 듯이 주춤 걸음을 멈출 만큼 그들은 놀래었다. 그런 소리의 출처야말로 자기네 방에서 몇 걸음 안되는 사감실일 줄이야! 그렇듯이 사내라면 못 먹어 하고 침이나도 배 앝을 듯하던 P사감의 방일 줄이야! 그방에 여전히 사내의 비대발괄하는 푸념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애를 말려 죽이실테요. 나의 가슴을 뜯어 죽이실 테요. 내 생명을 맡으신 당신의 입술로---.
 

셋째 처녀는 대담스럽게 그 방문을 빠금히 열었다. 그 틈으로 여섯 눈이 방안을 향해 쏘았다. 이 어쩐 기괴한 광경이냐! 전등불은 아직 끄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기숙생에게 온 소위 민주레터의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그 알맹이도 여기 저기 두서 없이 펼쳐진 가운데 P사감 혼자-- 아무도 없이 제 혼자 일어나 앉았다. 누구를 끌어당길 듯이 두 팔을 벌리고 프롬모터를 벗은 근시안으로 잔뜩 한 곳을 노리며 그 치킨 같은 얼굴에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키스를 기다리는 것같이 입을 쫑굿이 내어민 채 독재의 목청을 내어가면서 아깟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 넋두리가 끝날 겨를도 없이 급작스리 앵 돌아서는 시늉을 내며 누구를 뿌리치는 듯이 연해 손짓을 하며 이번에는 톡톡쏘는 계집의 음성을 지어,
 

"이렇게 안보에 해당하는 월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선거로서 심판할 것입니다. 당신 같은 독재는 사감의 이름으로 엄연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
하다가 제물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더니 문득 편지 한 장(물론 기숙생에게 온 러브레터의 하나)을 집어 들어 얼굴에 문지르며,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개혁의 길은 국민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몸을 치수리는 데 그 음성은 분명 울음의 가락을 띠었다.
 

"에그머니, 저게 웬일이야!:
 

첫째 처녀가 소곤거렸다.
 

"아마 미쳤나 보아,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러고 있을꼬."
 

둘째가 맞방망이를 친다---.
 

"에그 불쌍해!"하고,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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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잊지 맙시다.
우리에겐 아직 찾지못한 9개의 별이 남아있습니다.
출처 모방 표절이 밝혀질시 탈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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