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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껍질
게시물ID : readers_21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ankeGunter
추천 : 3
조회수 : 18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1 15: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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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요...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책게시판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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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껍질이 벗겨지는 것은 수줍은 일이다. 목덜미와 귀, 눈 아래 까지 붉어진다.
약간의 손길로도 으스러지는 속을 드러낸 어느 것이든, 왜 그것이 왜 햇볕에 화악, 하고 타버리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창피해하는데.햇볕은 잔인하다. 그래서 껍질을 벗겨낸 것은 그리 쉽게 뜀박질을 그치는가 보다.

뜨겁다. 매미는 세차게 몸을 떨어댄다. 난 정수리에 불을 얹은 듯한 느낌으로 나무들 사이에 놓인
아스팔트 길 위를 걷는다. 발이 길 위에 놓일 때마다 뜨거운 김이 전신을 휩싸는 듯 하다.
머리 아래의 육체에게 어디든 네 가고싶은 곳으로 가보아라 하고 말고 정신을 놓았더니 몸이 녹아내리기 직전까지 쉬지도 않고 걸었다.
그래도 어쩌다 용케도 철 상자에 부딪히지 않았다. 이것은 정말로 용하구나. 내 몸에게 적절한 휴식과 그늘을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도 그래도 눈이던 코던 귀던 다-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를 이리저리도 피해 나무와 아스팔트와 나
(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그-뿐만이 존재하는 곳에 데려온 것을 칭찬하는 것도 어차피 내 몸이라
자화자찬이 아닌가싶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어차피 이어져있으니 굳이 진동을 느끼지 않더라도
나의 역정과 감사 정도는 알겠다. 정수리와 발바닥으로부터 감싸고 올라오는 열기를 느껴본다. 뜨겁다.
벌레들은 어딘가엔 분명히 존재한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살이 드러난 곳이라면 어디든 붙어 즙을 빨아내거나
새끼를 낳아놓고는 또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가는 곳 아무데나로 날아간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나 간지러움이나 아픔을
느끼곤 그 흔적에 화를 낼 뿐이다.
 
이것은 조금 다르다. 목 뒤는 씨앗을 잔뜩 매달고 해만 죽어라 해만 죽어라 해만 죽어라 쫓아 다니는 해바라기 처럼, 거대한 대가리를 높게 치켜든
그 아래의 연약한 줄기처럼 우툴두툴하고 무겁다. 딱정벌레들. 난 가만히 서있다.하지만 내 목은 그들의 양분이 되거나, 그 자식들의 집이 되거나 하기에는
영양이 많이 부족했나보다. 그들은 내 살을 뚫는 대신에 약간의 아릿함만 남겨두고는 갈색의 바람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내 살을 뚫는
대신에 허파를 뚫고 그 속에 감싸두었던 외로움을 전신으로 뻗어가는 혈액마냥 퍼뜨렸다. 난 내 목을 햇볕에 따듯해진 손으로 쓸고,

톡,
하곤 내 손바닥 위에는 아직 떠나가지 못한 첩자가 놓인다. 순식간에 날개가 뜯겨 진동을 그만두었다. 날개는 옆에 두고 딱정벌레는
움직이지를 않고 반질반질한 배를 여과없이 드러내곤 누워있다. 난 아스팔트 언저리에 핀 푸른 들꽃 위에 첩자를 올려놓는다. 꽃은
자기 꽃잎도 지탱하기 힘든지 바로 뱉어낸다. 껍질이 벗겨지면 보이기 싫은 속살마저 드러난다. 창피하다. 그래서 너무 창피해서 그리 쉽게 죽었다.
나도 내 겉껍질을 벗겨내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내 육신은 치워내기도 곤욕이다. 난 내 목젖대신에 딱정벌레를 단다.
그곳은 빛도 잘 들어오지 않아 덜 창피할 것이다. 난 목젖대신 딱정벌레를 매달고는 걸어간다. 그는 그것마저 부끄러웠나보다.
떨어진 날개를 집어들곤 머언- 곳으로 날아간다. 난 혼자남는다. 혼자 서있다.
 
그래도 아직 내 껍질은 무사하다. 나의 겉껍질은 아직 무사하다. 아직까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열고 코를 킁킁대며 나무들이 줄고 차가 줄지어 지나가는 그 곳을 향해 걷는다.
허파에서 바람새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나의 껍질은 벗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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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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