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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영화와 게임이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책이란 상대적으로 어렵고 지루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름 밤하늘 아래 누워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가며 램프를 벗삼아 책장을 넘긴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피서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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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손님 여기에 어떻게 찾아오셨수? 아하, 근방에 문을 연 식당이 여기뿐이긴 하지우? 사실 우리 집은 밤에만 여는 밥집이어요. 일찍 출근하시는 기사 분들이나, 뭐, 또는 밤에 주로 일하시는 분들이 그분들 말마따나 점심 혹은 저녁 겸 이곳에 들르쥬. 메뉴는 딱히 없시우. 쩌기 손님께서 자시고 싶은 게 있으면 제가 만들어 주는 식이유. 재료는 어떻게 구하냐고요? 아니 뭐 여기 바로 옆이 시장이기도 허고, 멀리 갈 것도 읎이 편의점에서 간단한 양념 정도는 팔고 있으니께요. 으허허허 대충대충 만들어 주는 게 저희 집의 특성이긴 합니다. 손님께서도 뭔가 드시고 싶으신게 있으시믄...
*딸랑딸랑*
“사장니이임, 오늘도 왔습니다아아, 흐흐”
어유, 최 전무님 오늘도 회식이여? 아, 이분은 최 전무님이요. 인사들 나누십쇼.
“아이고, 쌤송에서 호흡기 겨우 달고사는 식물전무 최 전무입니다아.”
어휴 전무님 오늘은 술 너무 많이 자셨네, 이러다 또 집 못 찾아가고 그런거 아니쥬?
“갠차나요 갠차나, 내가! 소싯적엔 등화관제한 서울 한복판을 내집 안방처럼 활개치고 다녔던 사람이었잖수! 오늘날처럼 삐까번쩍한 서울 공구리 숲에서 이 최경집이가 길을 잃는다고? 에-이 말도 안되지!”
아이고 미안헙니다 손님, 야간에 밥장사 하는 입장이라 이런 손님들도
“이런 손님이라니, 사장님 나빠요~”
가끔 오는 편이어요. 그랴도 여기 최 전무님은 남한테 폐는 안 끼치니께 내가 여태껏 쫒까내지 않은거지.
“크흐흐 내가 딱! 사장님헌테 안 쫓겨날 정도로만 술 마시고 들어온다 이거 아닙니까.”
어이구, 말이나 못 허면... 아참, 이거 죄송헙니다 손님, 뭐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신지요?
“보아하니 그쪽도 약간 알코올 끼가 도시는 것 같은데 주먹밥 어떻수? 여기 사장님이 해장 주먹밥 하나는 기가막히게 마는데.”
거참 최 전무님 사람 주문 받는데... 네? 주먹밥 드신다고요? 아니 뭐 주먹밥이야 금방 내옵니다만 여기 최 전무님이 드시는 주먹밥은 그런 주먹밥이 아니에요.
“김이랑 볶음김치만 넣고 얼굴만큼 크게 만드는 주먹밥! 이거 하나면 담날 내가 언제 술 먹었나 싶을 정도로 말짱해진다오.”
전무님, 그건 전무님헌테나 먹히는 거고요. 처음 온 손님헌티 밑도 끝도 없이 주먹밥을 멕이려고 하면 워쩝니꺼.
“아참, 나 이거 제정신 봐라. 내가 이 주먹밥을 해장 대신으로 먹는 이유는 또 따로 있수다. 이걸 설명할라면 전두환이가 땅끄로 청와대 정문을 부순 때로 돌아가야 하오.”
이거이거 전무님 또 시작하셨네 그래.
“....빡통이 여대생을 안주로 씨바쓰 리갈을 기울이다가 지 오른팔에게 총 맞아 죽은 다음 날, 지금 돌이켜보면 티비나 거리에선 거의 김정일이 죽은 북한마냥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이 관악의 대학가는 축제의 한마당이었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옥상에서 박정희 욕만 했다하면 남영동이나 남산으로 끌려갔던 게 숱했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던 선배들이나 후배들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딱 두 달 뒤 왠 대머리 한 마리가 지 선임마냥 똑같이 땅끄를 타고 청와대에 기어들어온거요. 그날로 좋았던 봄은 다 가고 다시 피를 흘리는 나날이 시작됐지. 결국 80년 5월 사람들이 서울역 앞에서 모였었소. 그때 모인 인파는 예전 4.19때보다 훨씬 많았다는구먼. 18년 동안이나 해먹은 박정희가 이제 겨우 죽었는데 또 군바리 새끼가 정권을 잡으려는 게 말이 되냐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공감을 산거지.”
으하, 대단헜지. 그때 서울은 진짜 공기 반 최루까스 반이었으니께.
“아니, 사장님도 그때 서울역에 있었는감?”
아녀, 나는 그때 한창 주먹패 시다노릇 했을 때라 오야가 그날은 나오지 말라드만. 자칫 잘못하면 학생으로 오인당해서 맞아죽는다고.
“으허허허, 하긴 여기 사장님도 지나온 인생사가 참 굵었지. 자주 들러서 언제 한 번 이야기 들어 보시구랴, 재밌어. 이 사장님이 어떤 분이셨냐면...”
전무님, 주먹밥 얘기는 안하시려구?
“아 맞다 맞어. 어디까지 했드라... 아 그래 서울역! 그렇게 인파가 구름처럼 모이자 여름날 모기처럼 필연적으로 군대가 꼬이게 되드만. 그때꺼정은 계엄령이 발동되지 않아서 총구를 들이밀진 않았다만 명령 한 마디에 서울역이 피바다가 되는건 시간문제였어. 나도 당시엔 서울대 학생회 OB여서 그때도 그곳에 있었지. 그때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열린 대학총연합회의에 있었던 사람들중에 그쪽이 알 만한 사람이 누군고 하면 서울대 학생회장 심재철이, 복학생 대표 이해찬 선배, 학생처장 이수성 형님, 그리고... 그래, 시민이, 유시민도 있었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 유시민.”
사케 나왔슈, 목 축여가면서 햐.
“어이구 왠일이야, 사장님이 서비스도 다 하시구... 고맙심도 사장님. 흠흠, 그래, 선생님께선 그때 그 마이크로버스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 가능허신가요? 옛날 독립군 영화나 시대극마냥 ‘김 동지! 시대의 바람이 불고 있소이다! 뜨겁게 궐기하여 민족의 반역도들을 시민의 힘으로 내쫒읍시다!’ ‘옳소, 이 동지! 저 반역도당들에게 깨어있는 시민의 보루가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가르쳐줍시다!’ 이럴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이올시다. 당시 모인 사람들 지금이야 나이먹어 다들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서 정치에 들어간 놈들은 서로 니가 나쁜 놈이네 손가락질 하고 재계에 입문한 놈들은 호시탐탐 서로 뒤통수 쳐먹으려고 노려보고 있다만 그 당시 그때에는 좁은 버스에 한몸마냥 옹기종기 모여서 바들바들바들바들 떨고 있었소. 어이구, 건배한다는 걸 까먹었구만. 자, 반갑습니다. 짠~”
*꿀꺽꿀꺽*
“크으으, 쩝쩝. 그래, 생각해보시오. 제일 나이 어렸던 유시민, 심재철이가 그때 21살이었수. 선생님 집에 들어가서 티비보고있는 21살 대학생 아들 함 보시구랴. 그 놈 한테서 시대의 뜨거움이라던가 반란군 놈들의 총부리에 맞서는 청춘의 기개 같은 게 느껴지오? 아니야, 그때 우리들도 다 애송이었수다. 기껏해야 공부 좀 잘해가 마을잔치 함 하고 서울에 상경해서 전공서나 쬐끔 깔짝대다가 청와대 돌아가는 꼬라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져서 단체로 이건 아니지~라고 외친게 전부인 애송이들이였시다. 그런 우리들한테 군부는 총부리로 답해줬고, 그렇게 해서 역사가 쓰여진 것뿐이지. 그 때도 마찬가지야. 일단 모이자! 해서 모였다만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모였고 그것 때문에 군대까지 포위하니까 시쳇말로 판이 너무 커진 거지. 자,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립니다. 거기서 ‘이대로 밀고나가 청와대로 갑시다! 군부에게 민주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하오!’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학생회장 심재철? 학생 중 가장나이 많았던 해찬 선배? 매파라고 알려진 유시민? 땡땡땡! 한 명도, 나를 포함해서 단 한 명도! 그딴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지 않았시다.”
*정적*
“우리들이 죽는 건 두렵지 않았수. 오히려 쏟아지는 총탄에 벌집이 되더라도 민주주의의 거름이 된다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다녔지. 그래, 참 어렸지... 하지만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내가 아닌 남이 죽는 것 이였소. 그곳 서울역에 모인 사람들은 선배, 동기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모여라! 고 해서 영문도 모르고 나온 1학년 파릇파릇한 스무살 후배들과 대학생 형누나오빠언니들이 모인다기에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 못하고 뛰쳐나온 고등학생들도 많았지. 만에 하나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그리고 나는 살아남는다면, 이제 스무살, 열아홉 살들의 핏값을 우리는 어떻게 져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 어느 한 명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마치 텔레파시처럼 다들 그런 생각을 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민족과 역사를 위해 핏길을 만드는 걸 불사하며 청와대로 가자는 인간은, 그건 인간이 아니고 요즘 말하는 사이코패스지. 특히나 우리들 중 가장 나이 어렸던 시민이는 정말 누가 봐도 불쌍해 보일 정도로 떨고 있었수다.”
주먹밥 나왔시우. 김치를 볶느라 좀 늦었네 흐흐.
“어이고 사장님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시네~ 으허허. 어때요, 맛있어 뵈죠? 우리 사장님은 그때 서울역에 없었다고 하면서 어찌 이렇게 그때당시 비주얼과 맛이 똑 닮은 주먹밥을 만드시나, 거 참 신기하다니까. 쨌든 딱 이때 이 주먹밥이 나왔시오. 학생회가 그 전날에 만들어 놓은 주먹밥인데 쉬지 말라고 볶음김치를 넣어놨지. 학생운동을 하면서 이 주먹밥을 숱하게 먹어왔고, 먹을 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서 화염병이든 뭐든 다 집어던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만 그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다들 아무 말 없이 주먹밥만 먹었고 그렇게 긴장되는 시간만 무심하게 흘렀지. 그 때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유시민이었수. 뭘 말했냐고? 말은 안했어 토악질만 거하게 했지.”
허어, 그 유시민이가 그랬을 줄은.
“결국 당시의 유시민도 21살 어린애 아니겠수. 사실 의장이니 회장이니 하는 거창해 뵈는 직책도 다 우리같은 못난 선배들이 형사놈들한테 걸릴 때 후배들을 고기방패로 써먹으려고 앉혀놓은 직책이라, 시민이 입장에선 이 상황이 참 날벼락 같았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제일먼저 자기가 총탄에 죽던가, 오늘 죽지 않아도 중정 새끼들이 죽을 때까지 쫒아와서 죽을 때까지 고문할 게 뻔하니까 말이우. 게다가 시민이 한테도 똑같이 후배들이 있을 것 아니오, 녀석도 죽기를 각오했을 진 몰라도 남의 피까지 뒤집어쓸 각오는 차마 하진 못했겠지. 버스 밖에는 우리들의 발표에 따라 다음 날 햇살을 보지 못 할 이들이 한없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수다. 그 무거움이란... 20대 젊은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고되었소. 엇, 이거 주먹밥 식겠네. 일단 한 입 먹고 계속 말하겠시다.”
“토악질을 하는 시민이를 보면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잔해가 튀어도 비켜설 생각도 하지 못했죠. 사실 우리들도 입을 떼면 바로 넘어올 것 같았거든요. 순간 이게 다 뭔가 싶더라고요. 이런 어린애를 앞에 세우고 우리는 무얼 하려고 하는 건지... 콜록거리는 놈의 앞에 다가서서 아직 먹지 않은 주먹밥을 손에 쥐어주고 제가 말했습니다, 살자고. 오늘 우리들의 아집으로 수많은 피들이 서울역에 쏟아진다면 설령 오늘을 기점으로 민주주의가 살아난다해도 우리는 이 피를 씻어낼 수 있느냐고. 우리들의 목표를 위해 남들을 희생시키지 맙시다, 라고. 일단 여기서 살아남아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지요. 다시 생각해보면 다음이란 없었는데도......”
보통 이쯤 되면 최 전무님이 곯아떨어져야 되는데 신기허게 쌩쌩하네요이. 그래서, 그 담엔 어떻게 되었시우?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겠수, 그렇게 나는 어영부영 있다가 운동권을 나오고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삼성에 취직해서 여기까지 왔지요. 하긴, 삼성에 있었던 일들도 참 파란만장했지. 먹고살기 위해 작은 회사들을 찍어 누르고,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인건비는 후려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돌아왔다고, 386과 청춘들이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 후에 우리들이 싸워 얻었다는 새로운 세상은 말 그대로 돈이 돈을 지배하는 무간지옥이더만. 나름 노동쟁의를 논했던 입이 300명의 비정규직 공장노동자를 잘라야 한다고 말하고, 나름 뜨겁게 화염병을 들던 손은 술 취한 갑에게 배춧잎을 찔러주느라 바빴지. 이 최경집이, 젊은 날의 나에게 부끄럽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나 자신이 사람다워진다는 자각이 없어졌고 내 주변 사람들은 정치게임이나 돈의 논리로 언제나 쓰고 버리거나 버림당할 존재로 여겼소이다. 그렇게 돈을 벌었어. 그렇게 집을 샀고, 그렇게 밥을 먹었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한 대학생을 보았소. 학생이 뭔가를 찾는 것 같더구먼.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다니길래 내심 무얼 그렇게 찾는가 궁금해졌어.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자기가 원하는 책을 집더군. 그 학생은 단번에 얼굴이 환해지더니 곧장 카운터로 걸어갔다네. 옆에서 계속 지켜본 나는 대체 그 책이 무어길래 저 학생이 저리도 활짝 핀 얼굴로 나가는가, 해서 학생이 있었던 책장에 가보니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꽂혀있었던 것이요. 아! 유시민! TV나 뉴스로는 매일 볼 수 있었지만 왠지 뭔가 멀게만 느껴졌던 유시민이 그 때 나에게 후배로 다가온 거야. 그래, 시민이가 내 후배였지... 지금 생각해 보면 환하게 웃던 시민이의 얼굴과 ‘청춘’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던 것 같아. 시민이가 어렸을 적엔 잘 웃었거든.”
*꿀꺽꿀꺽*
“키야~, 그래. 책을 사서 호숫가 공원 벤치에 앉아 읽기 시작했소. 대체로 자기가 읽어왔던 책들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거의 다가 예전에 우리가 대학생 시절 골방에서 돌려보던 책이더구먼.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책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감상을 소회하는데 옛날 우리들의 독서모임이 생각났다 그 말이오. 그때도 이렇게 모여앉아 서로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었었지.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기에 민주화가 무엇인지, 노동인권이 무엇인지 막연하고 잘 몰랐던 때였지만 사람이 누군가의 총알로 전락하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때였어. 책을 덮고 호수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니 내가 만든 세상과 배불뚝이 전무가 보이더군. 돈이 사람을 갈아 끼우는 세상과 그런 세상을 만든 어른이 말이요. 반면에 내 후배 유시민이는 지금도 그때 서울역에서 계속 싸우고 있었던 거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생이 아직도 그 녀석의 책을 찾는 것이지. 녀석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도 필히 그런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하하하”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허지 않습니까.
“사장님 말이 옳수다. 하지만 이 최경집이는 많이 변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지 않았소? 그래서 그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생각했지. 내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러니 딱 떠오른 게 그날 서울역이다 이 말 아닙니까. 내 자랑 같지만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대신 그날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뿌리지 말고 돌아가자는 말을 처음 꺼낸 것이 나였으니까. 그래서 그날 먹었던 주먹밥을 지금도 숙취 해소용으로 먹는 것이라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콩크리트 성채를 돌아다니며 점점 닳아 없어지는 나의 인간성을 여기서 보충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이렇게 얘기하면 그 요새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울 푸드? 라고도 할 수 있겠소이다. 허허허”
자 주먹밥 특제요. 이거는 내가 쏘는 것잉게.
“어이구 사장님 오늘부로 장사 접으시려고 그러시나, 아주 인심을 팍팍 쓰시네잉 흐흐흐. 어이구 내가 이런 걸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사장님도 한 잔 받으시구랴.”
허이구? 술꾼께서 술을 다 건네주시고 참말로 오늘 내가 장사를 접는 날인가봉가, 허허허. 자 그럼 우리 세명이서 거국적으로 건배 할까유?
“조오치요! 자아, 다들 그날의 서울역과 청춘을 위해!”
주먹밥을 위해!
“사람다운 세상을 위해!”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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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운 세상에 사는 아이들은 지금쯤 신나게 축구를 하고 매점빵을 닥치는대로 사가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소소한 실랑이를 벌이고 아이돌 그룹의 컴백기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서로 마음껏 사랑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 부모님께 다녀왔습니다라고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그저 그 아이들을 기억만 할 뿐이다.
출처 | 글이 길어요! 근데 나름 재미있어요! 제발 끝까지 읽어주세요ㅠㅠㅠㅠ 유시민도 나오고 책도 많이 소개해주니까 제발 다 읽어주세요ㅠ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