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3동 주공아파트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신모(45)씨는 최근 단지 내에 울음소리가 독특하고 생김새가 낯선 새들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고 놀랐다. 멧비둘기는 정원을 노닐고 나무 위 직박구리 무리는 요란한 울음 소리를 냈다. 박새는 물론 더 작은 쇠박새도 눈에 띄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도 부지기수. 생물교사인 신씨는 "멧비둘기는 사람을 봐도 도망을 가질 않더라"며 "처음 이곳에 이사올 때만해도 까치나 비둘기 외에 다른 새들을 보기 힘들었는데 다양한 새들이 부쩍 늘어나 환경변화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주공아파트에 사는 문모(32)씨도 7살 아들과 산책을 하며 다양한 새를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다. 문씨는 "아이에게 설명해주려고 봤던 새는 검색해서 이름을 찾곤 한다"며 "박새나 멧비둘기는 물론 곤줄박이나 오목눈이, 새홀리기도 보이고 인근 공원에서 오색 딱따구리를 본 일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 갑자기 낯선 새들이 많아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도심 곳곳이 공원화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류전문가인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몇 년 새 서울 도심에 박새나 직박구리 등 텃새의 개체수가 크게 증가했다"며 "도심 인근 하천들이 살아나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 등에 울창한 고목 숲이 조성돼 다양한 새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도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제주도와 남부지역에 많은 직박구리는 중부지역에서 그 수가 급증했는데 조류 전문가들은 한반도 온난화의 영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가 매년 겨울(11월~2월) 주요 하천과 생태공원 등 12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류 생태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서울에서 발견된 겨울철새와 텃새는 중대백로, 갹도요, 진박새, 물까마귀 등 서울에서 처음 발견된 11개 신규 출현종을 포함해 72개 종에 2만여마리에 이른다. 특히 중랑천 하류와 청계천 하류 등 도심에만 61개 종 6,330마리가 발견됐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조류는 2009년 43개종 3,721마리에서 2010년 49개종 4,441마리, 2011년 50개종 4,759마리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윤무부 경희대 교수와 4명의 조사위원이 녹지공간이 많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일대 야생동물 서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에만 노랑딱새, 나그네새, 오색딱따구리, 오목눈이 등 텃새 17종과 여름ㆍ겨울철새 19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험한 도심에 터를 잡은 새들의 종류와 개체수가 늘면서 화를 당하는 새들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2007년 780건이었던 조류 구조활동은 2008년 894건, 2009년 941건에 이어 2010년에는 1,016건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도심의 새들은 늘었지만 새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 유리창들이 곳곳에 있고 마땅한 보금자리도 없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남궁대식 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총장은 "일상에서 듣는 새소리는 시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은 해충방제 기능도 한다"며 "예컨대 박새 한 마리는 한 해 평균 10만 마리의 벌레를 잡아 먹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해충이기 때문에 수십만원 상당의 방제 기능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