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말하면 태권도의 원류는 가라데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가라테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물론 아주 틀린말은 아닙니다 먼저 가라테의 탄생 배경을 알아 봅시다. 가라데는 1920년에 "기친 후나고시"란 사람에 의해서 일본 본토에 최초로 보급되었습니다. 오리지날 명칭은 당수도(唐手)인데, 당(唐)나라 권법이라는 뜻입니다. 1920년대부터 일본에서 활성화되면서 명칭이 당수(唐手) -> 가라테(空手)로 바뀝니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열풍으로 중국과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일본의 무술을 확립하는데 있어서, 중국 이름을 쓸 수 없었죠. 당수도(가라테)의 원류는 인도이고, 중국으로 건너가 당나라 권법이 됩니다. 이후 중국 명(明)나라 때 이르러서 당수권법(唐手拳法)으로 체계화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키나와로 넘어와서 토착 방어무술로 정착된 겁니다. 그러다가 1920년 이후에 일본 본토로 건너간 것이죠. 가라테 보급 당시, 일본에서는 가라테를 아주 하급의 무술로 인식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검도를 최고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가라테가 일본에서 그렇게 멸시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그 원류가 중국 과 오끼나와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오키나와(류큐)는 일본과 별도의 국가였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에 1879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음. 따라서 당시 일본인들은 오키나와를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음 **1910년 일본의 강제합병 후 일제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전통무술을 금지했습니다. 한국 전통무술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택견, 수박을 가르치던 사람은 가라테 사범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후, 가라테 사범들이 모여서 태권도를 만들게 됩니다. 시대적 흐름을 보면, 택견과 수박을 가르치던 사람 -> 가라테 사범(일제시대) -> 태권도 사범(해방후) 태권도 초창기 이름은 태수도 입니다. 태권도는 *가라테 품새를 많이 참고하게 됩니다. (여기서 오해의 소지가 생긴듯합니다.) 여기에, 택견,수박 등의 기술이 접목되서 지금의 강력한 발차기 기술이 완성됩니다. 태권도 특유의 리듬감과 몸의 회전력을 이용한 강력한 발차기 기술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죠. 지금의 태권도는 가라테와 품세는 비슷할지언정, 태권도 장점인 발기술은 다른 무술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강력해 집니다. 영춘권을 기본으로 한 이소룡의 절권도도 발차기 공격만은 태권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라테도 최근에는 역으로 태권도의 영향을 받고, 태권도와 유사한 발차기 기술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공중회전 후리기, 회전옆차기, 뛰어 옆차기, 들어 찍기, 두발 당상 찍기, 공중 나래차기, 반달차기, 돌개차기 등 폭발적으로 연속적인 스피드를 내뿜는 속사발차기는 태권도만의 강력한 매력입니다 태권도의 화려한 기술 덕분에 전세계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됩니다. 30개의 기왓장을 연속해서 격파하는 시범이 방송을 타면서 미국인들을 매료시켰답니다. 전세계 태권도 수련생은 7천 만명이고, 가입국수는 무려 147개국이나 됩니다. [출처] 태권도의 역사논란 |작성자 웅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은것은 맞습니다. 적다고 할순 없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힘에 의해 이루어졌던, 어쩔수 없이 받아야만했던 영향일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하여 강제점령 당한 시기에 생겨나고 영향을 받은것들이 아직도 많이 잔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통문화와 혼동하는것은 옳지 못 한 일입니다. 그리고 다각도로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에서 습득한 지식으로 옳은것이다라는 편향적 인 생각은 여러분들께 잘못된 상식만을 줄 뿐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한 나라에 영향력을 줄 정도의 미디어가 편향적인 기사들로 도배해버리니 그 나라의 모든국민들은 그 말이 진실 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것과 똑같은 우를 범하면 안되겠지요. 그럼 오유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요 ^ㅡ^ / 태권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