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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다키마쿠라 살해 사건
게시물ID : readers_212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택배산업기사
추천 : 4
조회수 : 26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2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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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는 인간은 인간으로써의 가치가 있는가? 어쩌면 우리 사회는 책 없는 인간보다 책이 그려진 다키마쿠라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책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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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마쿠라 살해 사건

 

(저자 주) 다키마쿠라 :

https://namu.wiki/w/%EB%8B%A4%ED%82%A4%EB%A7%88%EC%BF%A0%EB%9D%BC

 

잠자리가 한참동안 넘실대는걸 보며 여름의 끝이 점차 다가온다고 생각하던 어느 아침이었다. 어떠한 사무실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 영업을 하는 초짜 변호사란, 사짜직업에도 불구하고 만지는 돈이 제법 적어서 아침나절부터 출근길에 나서서 파리라도 쫒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른 아침녘부터 사무실에 앉아있으려니, 어제 퇴근 무렵, 건물주가 이번에도 밀리면 변호사고 나발이고 소를 넣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거 이거 어디 로펌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금수저 친구 놈이 개업식날 내개 선물한 난 화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놈을 생각하니 그것도 영 모양이 나지 않았다. 사실 원예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이 고귀한 자태를 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이름도 붙혀가면서 제법 인격체 대우를 하기 시작했다.

 

조간신문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건물주만 아니게 해주세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손님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보던 신문을 접어버리고, 머리와 양복을 매만지며 책상으로 돌아갔다.

 

,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한 등치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좀 더워보였기에 나는 자리로 안내하며 선풍기라도-어떤 손님인지 아직 모르니 귀한 에어콘은 불가했다- 틀어드렸다. 그는 자리로 앉더니, 대뜸 내게 물었다.

 

살인사건도 해주시나요?”

 

나는 당황했다. 일단,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경우. 검사측에서 알아서 해주고, 살인사건의 가해자인 경우, 그래 사실 이경우는 문제될게 없지만 내게는 처음 있는 살인 변호가 되는 것이다. 내심 두려웠다.

 

... 정확한 사건 개요와 지금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말씀을 해주셔야 할거같습니다.”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사건은 지난 6, 그의 집에서 일어났다. 헤드셋으로 노래를 듣던 그는, 심지어 집의 차임벨도 듣지 못했다. 그 덕에 빈집인줄 알고 어찌 어찌 집안으로 들어온 빈집털이범은 신나게 자루에 귀중품들을 쓸어담았고 마침내 그가 있는 방의 문까지 열었다.

 

아무리 헤드셋이라고 하더라도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그는 깜짝놀라 뒤를 쳐다봤고, 복면도 없이 일을 하던 빈집털이범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빈집털이범은 손에 들고 있던 연장을 휘둘렀고, 그에 방어하기 위해 그는 가장 가까이 있던 자신의 베개-세이버짱이라고 하긴 했는데, 판사 앞에서 세이버짱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를 머리위로 올려 막았고, 베게는 터져버렸다. 화가나서 결국 옆에 있던 알루미늄 빨랬대로 후드려패서 제압에 성공했고, 이 사건은 이제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아유 잘 됬네요. 몸도 안상하고, 범인도 잡았고. 그런데 그 살인이라는 부분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2막이 따로 있나요?”

 

그는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그자식이, 제 세이버짱을 죽였습니다. 살인죄도 죄목에 병합되어야 합니다.”

 

.... 베개가 인간이던가? 형법상 출산이 진통이 왔을 때 부터인데, 베개를 만들 때 진통이 왔을까? 출산을 거치지 않은 인간이 존재할까? 아니 지금 이게 무슨상황이지? 배게살인죄라, 맙소사 이건 미친짓이군. 설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월세도 오늘중으로 처리할 수 있다.

 

.. 살인이라는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성립되는겁니다. 말 그대로 殺人인거죠. 살인죄 성립을 위해서는 그 솜덩어.. 아니 베개 사람이라는걸 입증해야합니다. 가능하십니까?”

 

, 세이버짱은 인간입니다. 저와 쌓아온 추억도 있습니다.”

 

입증이 추억만으로 되는건 아닙니다. 혹시 그 베개의 출생과 관련된 서류 있습니까, 아 관세청꺼 말고요.”

 

그는 꺼내려던 서류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런 서류는 없습니다만, 왜 법은 세이버짱을 인정하지 않는겁니까?”

 

법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물학적 인간만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더는... 어쩔 수 없나봅니다. 내일이 공판이고, 오늘이 마지막 변호사였어요. 당연히 검사는 거절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다녔고요.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그는 상담비를 탁자에 내려놓고 처량맞게 문을 열고 나갔다. 뭔가 폭풍이 지나간것같다. 그가 나간뒤 쭈욱 팔을 펼치고 천장을 바라보며 곱씹었다. 물질도, 인간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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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추었다. 아직 철쭉도 그 봉오리만 있을뿐이다.

영원히 여름은 오지 않고, 장마또한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하염없이 가슴 앓는 이들이 눈물만 흘러 흘러

저 멀리 남해바다 언저리까지 다가가서 시린 철판 녹인다.

그러나, 그또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여름 앞에서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강 건너에서 여름 하늘을 나는 나비들을 추모하며.

출처 이게 표절이면 이불을 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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