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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상소안과 그 수정에 관하여 2 - 지나가다
게시물ID : history_21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해가람
추천 : 0/6
조회수 : 318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6/11 18: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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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제 말한 대로 글을 따로따로 팠습니다. 셋이서 댓글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바람에 혼자 상대하기가 여간 버겁지 않더군요.
물 한 잔 마시고 오면 대여섯 개씩 달려있고, 댓글 하나 써서 올리면 어느새 대여섯 개씩 또 밀려나 있고...
 
제가 식민사학의 정의에 치중한 것은 조선사편수회 때문입니다. 조선사편수회의 목적이 식민사학을 행하기 위해서니까요. 다음은 포털사이트의 브리태니커 사전의 요약입니다.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식민주의적 한국사상을 구축하기 위해 1925년 6월 칙령 제218호로 공포한 '조선사편수회관제'에 따라 만들어진 관청"
따라서 식민사학을 위해 설치된 조선사편수회에서 사학자로써 20년간 일했다면, 주류 학자였건 잡일을 했건 식민사학과 관련해 그를 비난하는 것이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덧붙입니다.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해야 된다'가 아닙니다.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한다해서 부당한 것은 아니다'입니다)
무엇보다 이 행위 자체를 유사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지나 연명상소안이 상정된다면 지금처럼 이교수와 식민사학에 대해 얘기하는 것조차 유사사학이 될 테니까요.
 
식민사학을 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사편수회에서 사학자로써 해방 때까지 일했다는 것은 논리 상 식민사학과 직결됩니다.
저는 이와같은 논리를 펴기위해 식민사학의 정의를 동의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편은 이를 친일로 봐야지, 식민사학은 아니다. 식민사학적 연구나 업적을 하나라도 대라고 합니다. 되묻겠습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식민사학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연구나 업적을 들어야만 된다면, 제가 이제껏 식민사학의 정의를 동의받고 위의 논리를 편 것은 쓸데없는 짓을 한 게 됩니다.
따라서 그편은 이제 위에서 펼친 제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이고, 반드시 연구나 업적을 거론해야만 되는 것이라고 저를 설득해야 됩니다.
지금처럼 여럿이서 댓글을 와르르 쏟아내면서 답변할 틈도 없이 "그게 유사사학. 그러니 너는 유사사학자" 라며 비웃고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답변]
 
1) 댓글 가운데서 '1952년 8월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려시대의 연구 : 특히 도참사상의 발전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인문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네... 52년에 박사따셨어요. 그 전까지는 학위 없었고요'
-> 이는 1952년에야 박사를 땄으니 그 이전은 사학자로 볼 수 없다란 의미 같습니다. 그럼 진단학회나 국사대관은 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역사학회를 설립하고 역사서를 저술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박사 학위를 딴 1952년 이후로만 얘기해야 된다면...그 이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 땅에 사학자가 아무도 없었겠습니다.
 
2) 댓글 가운데서 '그러니까 해방 전에 이병도 교수가 무슨 식민사학적 업적을 남겼습니까? 조선사요? 그거 단순한 사료 모음집인데요? 사가의 주장이 가미된게 아닙니다'
-> 그렇다면 조선사편수회는 식민사학을 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데, 왜 사료 모음집을 낸 것인가요? 사료 모음집이 식민사학과 관련없다면 조선사편수회는 어째서 하라는 식민사학은 안하고 수십 권에 달하는 사료 모음집을 발행한 것인가요?
 
3) 댓글 가운데서 진단학회의 목록을 적은 뒤 '이게 이병도가 진단학회서 활동한 내역입니다. 여기 어디에 식민사관이 있습니까? 어디 말씀해 보시죠?'
-> 당시 이교수는 조선사편수회에 적을 두고 있던 때입니다. 따라서 진단학회에서 이교수가 식민사학에 반대하거나 저항한 활동을 제시해야 식민사학과 연관이 없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이미 조선사편수회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그의 식민사학 활동을 찾아내라고 하는 건 불필요한 행위 같습니다. 그리고 진단학회가 문을 닫은 뒤로도 이교수는 여전히 조선사편수회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4) 댓글 가운데서 '해가람님 제가 뭔말 하는지도 헷갈리세요? 학위가 중요한게 아니고 당대에 어떤 명망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고 한거잖습니까;; 지금 제가 하는 비유를 못알아 먹으신겁니까?'
-> 당대에 어떤 명망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면, 명망 없는 사람은 식민사학해도 상관없다는 뜻입니까?
 
5) 댓글 가운데서 '이분 국사대관 읽어 보지도 않고 가져온게 확실하네요. 지금 식민사학 연구로 국사대관 제시했어ㅋㅋㅋ'
-> 국사대관은 식민사학 연구로 제시한 것이 아니고, 위의 박사 학위 관련해서 나온 얘기입니다. 박사 학위가 없으니 사학자도 아닌 게 되는데, 어째서 국사대관이라는 역사서를 펴냈고 이를 후세에서 인용하냐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6) 댓글 가운데서 '그런데 그 식민사학의 연구 성과는 없고 민족주의적인 연구만 있는데요?'
-> 민족주의적인 연구는 해방 전인가요, 후인가요? 해방 후라면 당연히 누가 드러내놓고 식민사학 합니까?
 
7) 댓글 가운데서 '조금만 생각해도 이병도가 그 녀석들 자료셔틀, 해석셔틀이였을건 뻔하거늘 ㅋㅋㅋ 차라리 이병도가 식민사관을 만드는데 몸빵으로 동참했다고 비난을 하세요 ㅋㅋㅋ'
->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식민사관을 만드는데 몸빵으로 동참했다고 비난하는 행위. 지금 연명상소안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 만으로도 유사사학에 걸립니다. 이게 어떻게 유사사학입니까?! 바로 이 부분을 저는 지적하며 해당 사항을 수정해야 된다고 거듭 말해왔던 것입니다.
 
8) 댓글 가운데서 '당시에 조선사편수회는 대놓고 '우리는 역사 왜곡할꺼다' 라고 광고한바 없습니다. 다만 그 면면을 보고서 짐작은 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짤막한 추측물 가지고서 이병도가 지금까지 연구한 각종 민족주의적 연구는 다 무시해도 좋습니까?'
-> 그러나 오늘날에는 조선사편수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 줄 알며 따라서 여기서 일했던 이교수의 식민사학 여부를 논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개개인의 견해를 유사사학으로 몰아 말도 못꺼내게 금지시키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저는 이교수의 민족주의적 연구 성과를 무시해도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9) 댓글 가운데서 '해가람님의 논리라면 마하트마 간디는 독립운동을 한적이 없습니다 ㅋㅋㅋ 영국에서 공부하고 변호사 활동까지 한데다가 영국군 소속으로 전쟁에 나가서 인도사람을 전쟁터로 보낸사람인데 간디는? ㅋㅋㅋ 간디에 댈래야 대기도 힘든 이병도가 간디같은 사람과 동급이란걸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ㅋㅋㅋ'
-> 마하트마는 영국의 식민지인이었으나, 다시 그 지배에 저항하여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인도를 독립시킨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이교수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은 했으나, 다시 일제에 저항해 민족사학을 펼치면서 독립운동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10) 댓글 가운데서 '맨델은 천주교 사제인데 천주교는 공식적으로 당시에 창조설을 주장했으니 멘델은 창조설자 입니까? 멘델이 한 유전론에 대한 연구는 다 무시해도 좋습니까?'
-> 이는 신앙과 학문의 문제입니다. 학문 내의 문제, 그러니까 이교수처럼 식민사학 단체와 그 구성원으로써 사학자가 식민사학을 했는지 안했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부류가 다릅니다. 이교수가 종교인으로써 교단에 반하여 식민사학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11) 댓글 가운데서 '이병도는 친일파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촉탁으로 일한 건 바로 그가 '친일파' 라는 근거 중 하나이고 그로 인해 그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비난의 형태가 결코 식민사학이다 로 귀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가람님은 친일파 = 식민사관 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하고 계십니다'
-> 제 주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교수가 식민사학자이다 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교수가 식민사학자인지 아닌지를 논쟁하는 것은 형편 상 당연하며 또한 그렇게 보고 비난할 여지가 충분한데, 이 행위 자체를 유사사학으로 몰아 아예 금지시키려는 연명상소안은 수정돼야 한다가 제 정확한 주장입니다. 제 글들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12) 댓글 가운데서 '개인의 연구 성과와 그 활동은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만일 활동을 이유로 그 연구 전체를 비하하고 근거없이 부정한다면 화학비료의 창시자 프란츠 하버는 어찌해야 합니까? 반대로 연구가 악용된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평가 해야 합니까? 그냥 간단한 정리이고 명제입니다. 이병도는 친일파이다. 이병도는 식민사학자는 아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 프란츠 하버는 그의 연구가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는지의 문제이지 그가 그러한 연구를 했는지 안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교수가 식민사학을 했는지 안했는 지가 초점이지, 이교수의 연구가 좋은 것이었는지 나쁜 것이었는지를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도 그렇습니다.그의 업적이 남들에 의해 좋게 사용되었는지, 나쁘게 사용되었는지의 문제이지 그가 상대성 이론을 창안했는지 안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교수가 식민사학을 했는지 안했는 지가 초점이지, 이교수의 업적이 남들에 의해 좋게 사용되었는지 나쁘게 사용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닙니다.
 
13) 댓글 가운데서 '아직도 친일 = 식민사관이라고 생각되세요? 식민사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친일을 할 수 있어요. 친일파들은 모두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역사학자들입니까?'
-> 문제는 사학자가 식민사학을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에 들어가 친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사학자라도 다른 분야에 들어가 친일을 했다면 결코 식민사학 운운 할 일은 없겠죠. 그런데 사학자가 다른 기관도 아니고 식민사학을 위한 조선사편수회에서 친일을 했는데, 식민사학 운운도 하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14) 댓글 가운데서 '불함문화권을 주장한 최남선은 그럼 독립운동가 입니까? 조선을 당파성을 가진 나라로 평가한 신채호는 친일파 입니까?'
->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려면 독립운동을 해야 독립운동가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친일파는 친일 경력이 있어야 친일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뭐...독립운동가나 친일파에 대한 제 개념이 틀렸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활동과 경력으로써 논해야 할 일을 학설로써 따지려 드는 건, 오히려 친일사학자 = 식민사학자라는 등식을 성립시킵니다.
 
15) 댓글 가운데서 '게이나 레즈비언 중에서 주변의 인식이나 본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이성이랑 결혼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근본이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이성과 가정을 가지거나 애를 낳을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이면서도 이성과 결혼합니다. 님의 생각으론 있을수가 없는 일이죠 ㅋㅋㅋ'
-> 논리가 이상합니다. 정리하자면 동성애자는 자신들이 평범한 이성애자라고 보이기 위해 이성과 결혼한다는 뜻인데, 이 비유대로라면 이교수는 본래 민족사학자이나 자신을 식민사학자로 보이기 위해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다는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교수를 식민사학자라 여기고 비난한다면 이는 이교수가 의도한 그대로이니 오히려 제대로 평가한 것인데, 어째서 유사사학으로 몰려야 합니까?
 
제가 형편 상 역게에 상주할 수가 없어 오늘은 답변을 기다리지 말아 주세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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