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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이 일본에 미친 영향
게시물ID : history_213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urelius
추천 : 11
조회수 : 278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06/14 20:43:13

크림전쟁(The Crimean War)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러시아 제국에 맞서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입니다. 물론 전쟁의 주 무대는 요즘에도 여러 정치적 문제로 시끄러운 크림반도였고 그래서 전쟁의 명칭도 크림전쟁이죠.





당시 러시아는 지중해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오스만 제국령이었던 발칸반도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약체화를 방관하면 러시아가 지나치게 강성해질 것을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아니 심지어 직접 전쟁에 뛰어들면서까지 러시아를 견제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저 머나먼 유럽에서 벌이전 전쟁은 극동아시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공격이 지중해와 크림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극동아시아에서도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의 바다를 호령하던 영국해군은 프랑스 함대와 연합하여 러시아 령 캄차카 반도를 공격했습니다. 


캄차카 반도



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 일본은 크림전쟁의 발발사실을 네덜란드 상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있었으며 일본 앞바다에 프랑스와 영국군합의 출현이 계속되자 극도로 불안해했습니다. 이미 그 전해에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을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통상조약을 거의 반 강제로 체결했던 상황이었기에 또 다시 서양의 군함들이 일본에 출몰하는 것은 분명 위협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이미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와의 교류는 1700년대부터 거슬러올라가고 이미 당대 일본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남하를 극도로 우려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영국에 대해서는 아편전쟁을 통해 잘 알게 되었는데, 영국이 동아시아의 최강국 중국을 단숨에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 막부 고위관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네덜란드 상관이나 미국의 페리제독은 틈만 나면 아편전쟁을 예시로 들면서 영국이 비도덕적이고 무자비한 나라라고 선전하였기에 (그래서 영국보다 자기네들과 먼저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 막부는 더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영국 극동함대의 제독 스털링은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Jamesstirling.jpg스털링 제독


그는 영국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일본의 중립을 보장받고자 온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중립국이 되는 경우, 작전 중 영국 함대가 필요할 때 일본 항구에서 일정기간 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일본의 항구가 러시아 함대의 보호막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요구했습니다. 사실 이쯤되면 그냥 중립이 아니라 영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중립을 요구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영국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일본에 온 것입니다. (하지만 통역관이 실력부족으로 그의 위압적인 요구사항들은 일본 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영화친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군사적 필요에 의해 일본에 접근한 것이었기 때문에 요코하마나 오사카 같은 경제도시가 아니라 쌩뚱맞게 하코다테가 개항된 것입니다. (나가사키는 모든 개항조약의 기본이니 패스..)



하지만 일영화친조약은 미국과의 조약과는 다르게 일본측에서 먼제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세부내용을 협의한 조약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자국 항구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전투를 벌이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자 하였습니다. 고래 싸움에서 새우등 터지는 상황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일영화친조약에는 일본 항구에 들어온 영국선박은 일본의 법규를 따른다고 명시하는 조항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만약 영국이 일본의 항구에서 일본인들이 보기에 법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이들을 추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영국은 전시상태였고, 주 전장에서 군함을 더 빼오는 것이 불가능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당시 세계최강국 영국은 자국이 아쉬운 상황이어서 일본에게 꽤 유리한 조약을 허락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영불연합함대의 추격에 쫓기고 있던 러시아 제독 푸티아틴도 자국의 함대를 이끌고 일본 시모다에 도착하여 은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안좋은 건지 운명인건지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 그의 함대는 쓰나미에 휩쓸려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함대를 다시 건조하였고 서양범선 건조의 노하우를 막부에게 고스란히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비교적 수세적 입장에서 일본과의 조약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일러화친조약을 맺게 됩니다. 


위 상황을 요약하자면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크림전쟁으로 말미암아 일본은 영국과 러시아라는 당대 두 강대국과 상대적으로 온건한 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크림전쟁과 동아시아, 어떻게보면 서로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두 지역이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보면, 역시 역사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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