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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
게시물ID : lovestory_37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heep
추천 : 2
조회수 : 72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1/05 19:33:07
1851년 경북 현풍군에서 부친 하규와 경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문석봉 선생은

어렸을때부터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였고 25세에 중국의 금릉으로 건너가 3년간

한의학을 수학하고, 32세 때인 1882년에는 조운리가 되었습니다.

 

첫 관리생활을 시작한 후 세곡을 조운선으로 운반하던 중 전라도지역의 기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로 인하여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1893년 5월 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경복궁5위장에 특제되었으며, 

그해 12월 진잡 현감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11월 양호소모사의 직에 임명되어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의병을 일으켜 '토왜'하려 한다는 고발로 인해 공주부에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일본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공주부 관병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는데

사실상, 이는 의병투쟁의 계획 준비단계였습니다.

 

 

 

1895년 6월, 석방된 문석봉 선생은 8월 명성황후의 시해소식을 듣고 국모의 복수를 위해

송근수, 신응조 등 지역유림 대표자들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을 일으켜 흉적을 토벌하고자 하였고,

이는 지역의 유학자들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유성장터에서 부대를 편성한 후 회덕현을 급습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300여 명의 의병을 부장하여 10월 28일, 공주를 향해 진격하였으나 관군의 공격에 패산하였습니다.

 

패산 후 선생은 중군 오형덕 등과 함께 경상도 고령 초계등지에서 재봉기를

준비하였으나 고령현감의 고변으로 체포되고 말았고,

옥고를 치르면서 몸디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봉기를 시도하는 등

문석봉 선생의 의병투쟁에 대한 의지는 뜨거웠습니다.

 

 

 

1896년 4월 선생은 서울에 들어와 정계의 요로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이어 원주로 내려가

'도지휘'가 되어 각도 의병장들에게 통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선생은 병에 걸려 8월 12일 현풍으로 귀환하였으며, 

결국 11월 19일 밤에 46세의 일기로 병사하고 말아 거의의 목표를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석봉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출처] [독립운동가 문석봉] 2011년 11월의 독립운동가 '문석봉 선생' (대한민국을 지킨 독립영웅 '이달의 독립운동가' 공식 까페) |작성자 독립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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