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둘러보다 보면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일본과 참 비교를 많이 당합니다.
아니 뭐 비교를 당할 만은 하지요. 지리상으로 가까운 일본과 붙어 있고...
1년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수만 백 편에 육박하니까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그 중 하나가 복지 문제죠.
일본 애니메이터는 처우가 좋고, 반면 한국 애니메이터는 좋지 않다는 말인데...이 말은 틀렸습니다.
왜냐면 양국 다 시궁창이거든요.
일본 매드하우스에서 일하는 김현태 씨의 인터뷰가 예전에 뜬 적이 있었죠. 거기서 김현태 씨도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 통계상으로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이 애니업계에 득실득실 널려있다고...
제대로 월급 받아가며 복지를 누리는 곳는 스튜디오 지브리 딱 한 군데밖에 없는 거죠.
그게 2012년, 불과 2년 전의 이야기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방향을 논하는 문제입니다.
이거 참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논쟁인데...
애니메이션 마니아라고 자칭하는 분들을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식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특수성 떄문인데, 사실 1년에 100편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을 쏟아내는 나라가 일본 외에 있나요? 없죠.
만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잡지에 일정 기간 연재해서 그걸 단행본으로 묶어 파는 방식의 시스템이 일본 외에 있나요? 없죠.
한국과 대만을 예시로 드는 분이 있을까봐 말씀드리는데 한국이랑 대만은 일본 출판만화에 비하면 그냥 시망 수준입니다.
한 마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의 만화, 더 나아가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런 것들은 그냥 일본이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얼마 전에 '나는 친구가 적다'라는 라이트 노벨이 누계부수 600만부가 넘었다고 합니다. 대단하죠. 그런 게 일본 외의 국가에서 가능할 것 같나요?)
시장의 규모 차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일본보다 더 큰 미국 시장에서도 일본과 같은 형태의 산업이 발달하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웹상에서 자주 화제가 되는 고연령층 타겟의 애니메이션은 '제작위원회'라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제작위원회는 일종의 리스크 회피를 위한 분산투자로서, 철저하게 스폰서 입장에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제작 방식입니다.
제작위원회를 구성해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 해도, 그걸 만든 제작사가 돈 많이 벌 것 같나요? 그럴 것 같은데 아닙니다.
실제로 돈 많이 가져가는 건 스폰서뿐이고 제작사는 '원청'으로서 별로 가져가는 이득이 없습니다.
왜 없나면, 제작사는 제작위원회로부터 고정된 단가를 일단 받습니다.
그 단가에서 직원들 월급 뺍니다. 감독 월급 빼고, 스태프들 월급 빼고, 이거 빼고 저거 빼고...
그럼 남은 게 별로 없어요.
애초에 단가를 많이 주면 될 것 같은데 별로 안 줍니다. ㅋㅋ
그리고 그 상태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방식이 십수년째 굴러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특이한 것이지,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다른 나라가 도입할 만한 롤모델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EBS에서 8명의 한국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데...
부디 생산성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름의 굴레가 한국 애니메이션계를 너무 옥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