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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고기를 거의 먹지 못했다? 특히 소고기?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 검색을 좀 해보았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농업 중심 경제였기 때문에 농업 생산의 주요 자산인 소를 먹지 않았다.
위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당연히 앞에 말은 맞는 말이고요. 소를 먹지 못하게 나라에서 정책을 펼친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숙종대 쯤 인구수가 1600만 정도였는도 소 마리수는 100만마리정도 되었다고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금 인구수가 5000만, 소가 334만마리니까 비율이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소를 먹지 않아서 죽은소 끓여서 국물이나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아닙니다.
소를 많이 잡아 먹었다는 것은 다양한 소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제가 찾아본 것 몇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백성들이 소를 많이 도살하는 것을 걱정하는 부분이 자주 나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참화를 겪고 조선왕조에서 가장 살기 힘들었을 것 같은 선조때 (선조28년, 1595년, 정유재란 일어나기 2년전)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807002_004)
(전략) 그리고 농가의 소가 모두 탕진되어 밭갈이 할 때에 사람이 대신하여 멍에를 메고 있는 형편인데 경향(京鄕) 각지에서는 도살(屠殺)을 지금까지 중지하지 않고 있으니, 아, 이제 씨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차 어떻게 농사를 지어 백성들의 식량과 군량을 공급한단 말입니까. 만약 엄하게 금지하여 서로 고발하게 하고 각자 본율(本律)로써 상과 벌을 주어 목양(牧養)의 방법을 중히 여기게 하면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후략)
전쟁이 끝나서 소가 씨가 말랐는데도 있는 소를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ㄷㄷㄷ
그리고 선조 38년 (1605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808001_002)
"황주(黃州)·공주(公州)에서는 소를 도살하는 일이 매우 많아서 1개월에 도살하는 것이 거의 10여 두에 이르는데, 백성에게 쌀을 징수하여 소를 사서 쓰는 것을 정식(定式)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공주는 감사가 주재하고 있는 곳인데도 더욱 극심하다고 하니, 적발하여 징치(懲治)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 심희수가 선조에게 수해가 극심하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대체로 50∼60년 이래 경진년074) 의 수재가 크다고 하였으나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팔도의 피해 상황을 다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강원도의 명산(名山)도 무너졌다고 합니다. (하략)" 물난리가 나서 피해가 극심한데 사대부는 여전히 소를 잡아 먹더라...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광해군 즉위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012010_001)
한성부(漢城府)의 판윤 이시언(李時彦), 좌윤 변응성(邊應星)이 아뢰기를, "소와 말을 도살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 법전(法典)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기강이 한번 추락되자 금지할 수가 없게, 되어 심지어는 국상 초기에도 곳곳에서 도살을 감행하고 있으므로 늘 마음에 매우 통탄해 오다가...(후략)"
두번째, 송시열의 우암집의 내용입니다.
우암집의 내용 가운데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원문은 못찾겠으나 인용 기사는 좀 있더군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2250.html)
"오죽했으면 조선후기의 문신 송시열이 “우리나라 풍속은 우육을 상미로 삼았으며,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으로 아니 도우금지령이 아무리 내려도 돌보지 않는다”라고 한탄했을까."
그리고 같은 내용이 숙종실록(숙종9년)에도 있습니다. 송시열이 올린 상소문입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sa_10901028_001)
"우역(牛疫)이 있은 뒤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도 소 잡기를 그치지 아니합니다. 우리 나라의 풍속이 쇠고기를 가장 좋은 맛으로 여겨서 이를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같이 여깁니다. 비록 금지하는 명령이 있어도 오히려 이를 돌아보지도 않으니, 만약 금지하는 조목(條目)을 따로 만들어서 중외(中外)에 반포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실농(失農)이 한재(旱災)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후략)
세번째, 조선시대 연구자이신 교원대학교 김동진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인데요. (http://www.nocutnews.co.kr/news/4741048)
인터뷰 내용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전략)
◇ 정관용> 그럼 조선시대 백성들도 소고기를 많이 먹었어요?
◆ 김동진> 기록에 보면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 정관용> 양반만이 아니고?
◆ 김동진> 그런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김동진> 이미 16세기 때 묵제일기를 보면 이문건에게 소고기를 바치는 사람들을 제가 쭉 조사를 해 봤는데 백정은 당연히 잡는 축에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 농민들 중에서 다수가 이렇게 뇌물이든, 선물이든 여러 형태로 이문건에게 소고기를 바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문건이 부인이 병에 걸렸을 때 처방을 내리는데 처방의 내용이 소고기를 먹지 마라입니다. 저도 그것을 읽고서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어쨌든 얼마나 소고기를 많이 먹었는지.
◇ 정관용> 우리 머릿속에 잘못된 인식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군요. 우리는 소는 농사일을 해야 하는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농민들은 소는 1년에 한 번도 먹기 힘들다. 잔칫날이나 조금 먹어본다. 그래서 소고깃국 먹고 나면 기름기 못 먹던 사람이 먹어서 쫙쫙 설사를 한다. 이런 게 뇌리에 박혀있는데 그건 일제시대 후군요.
◆ 김동진>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유가 강조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역이 발생해서 일시적으로 30년 주기로.
◇ 정관용> 급감하니까.
◆ 김동진> 소가 없어졌을 때 절대로 소를 먹지 말라. 이런 강력한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게 역사적 기록에 나오는데 아마 일부 연구자들이 그런 기록을 중심으로 모아 놓으니까 조선시대에는 내내 소고기를 못 먹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그리고 아마 일제시대에 조선역사를 왜곡하면서 일부러 그런 걸 퍼트렸을 수도 있죠.
◆ 김동진> 그렇죠.
(후략)
어떻게 마무리할까요 ㄷㄷㄷ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