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원인 샐러리맨과 1,000억원을 받는 재벌 총수의 소득세율이 같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비현실적인 국내 소득세 과세구간을 세분화하고 최고 세율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996년 정해진 소득세율 체계가 15년간 그대로 유지되면서 그 사이 급격히 늘어난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과세구간 신설과 함께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일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7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세율 체계는 96년 이후 '넓은 세원(稅源), 낮은 세율'을 취지로 4단계 세율구간의 뼈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과표기준 1,200만원 이하는 세율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8,800만원 초과는 35%를 적용 중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과세대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96년 과표 최고구간(8,000만원 초과) 대상은 1만명 정도였지만, 지난해 최고구간(8,800만원 초과)에 해당되는 소득 최상위층(통상 연봉 1억원 이상)은 27만9,523명(국세청 국감자료)으로 28배나 치솟았다. 연봉과 이자, 배당, 부동산 임대소득 등을 합한 종합소득금액이 5억원을 넘는 고소득자(2009년 현재 9,558명)도 1만명에 육박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으로 명목임금이 뛰면서 어느새 소득세 최고구간으로 올라선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연봉 1억원이 조금 넘는 대기업 부장급과 연간 소득이 수천 억원에 이르는 재벌 총수와 같은 세율을 적용 받는 데 대한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10년 전 웬만한 대기업 사장에게나 적용되던 소득세율이 지금은 부장급까지 아우르면서 이제는 '회장이나 부장이나 세율이 같다'는 자조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금의 소득세 구조는 세금의 기본 역할인 소득재분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조세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3.2%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6.5~10.9%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40%대 세율을 적용하는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과표 1억2,000만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40%의 소득세를 매기면 연간 1조5,000억원 이상 세수가 늘어난다"고 제안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재의 소득세 체계는 지난 15년 간의 임금 및 물가상승, 소득 양극화 등 사회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실에 맞게 과세구간과 세율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