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전쯤 세이클럽 귀신방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에 취해살던 어느가을 오후, 밭에서 일을 하던 차림의 농부 한명과 아들쯤으로 보이는 말끔한 차림의 젊은이가 내 진료실을 찾았다.
시골 진료실은 오후5시만되도 거의 파장인 분위기인데 그시간에 내원한 두사람..
농부차림의 그 아저씨는 수더분한 외모랑은 다르게 말을 참 많이도 하셨다.
밭에서 일을 끝내갈 무렵, 저쪽 커브길 모퉁이에서 쾅 하고 큰소리가 들려 무슨일이 생겼는가싶어 가보니 화물트럭한대가 차선을 넘어 마주오던 승용차를 들이박아서 경찰이오고 앰브란스가 오고... 화물차운전사는 멀쩡한데 그 승용차운전사는 머리에큰부상을 입어서 자기랑 다른 사람들이 꺼냈는데 숨은 붙어있었는데...아마도 죽은거같다고.. 한시간반정도 전의 일인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더 두근거리고 답답하고..처음본 교통사고현장이 자꾸 머리속에 맴돌고 그 운전자의 모습이 떠오르고 등등....
같이온 아들쯤되보이는 젊은이는 말많은 그농부와는 달리 그냥 담담한 얼굴에 그냥 살짝 미소만 머금은 약간은 수줍어 하는 모습....
그 농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침을 놔주고 청심환을 한개 들려줘 보내고 나도 집에 갈땐 운전을 좀 조심해야지 다짐해보고...
.... 몇일후 다시 내 진료실을 찾은 그 농부... 그날 침맞고 청심환 한개 먹고 많이 덜해졌다고..그래도 오늘 한번 더 침을 맞아야겠다고...
그분이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때 "오늘은 아드님이랑 같이 안오셨네요?" 여쭸더니..
아들은 무슨 아들....우리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댕기고있는데 열흘쯤 남은 추석때나 올텐데...이러면서 가셨음...
간호사에게 "어 그때같이온 젊은이가 그럼 아들아닌가?"되물었더니 우리 간호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 저 아저씨 그날 혼자서 오셨는데 누구 말씀하시는건가요?"이러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