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설 당일의 스펙터클한 일들.
그래서일까? 신경을 많이 써서였는지 오늘 일어나니 정신이 없었다. 몸은 천근만근. 정신은 멍. 일어나니 10시.
일어났더니 내 침대에서 발이 있는 곳에 걸터 앉아서 이마에 헤어롤을 하고 칸쵸를 먹으면서 날 바라보는 여자친구.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계속 자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내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열은 없는데 그냥 몸이 무거운 상태라고 결론을 내린 여자친구는 냉장고를 열어서 계란을 5개 꺼내서 계란찜을 준비했다.
난 샤워를 하기 위해서 이불 밖으로 나와서 들어가려는데 여자친구가 내 손을 보더니 손이 많이 텄다면서 한숨을 쉬며 씻고 나오면 손에
바세린이랑 핸드크림을 발라주겠다고 백에서 바세린과 핸드크림을 꺼냈다.
씻고 나오니 계란찜은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갔고 여자친구는 내 손을 잡더니 또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손이 트는 거지?"라는 말과 함께
쉴 때 병원에 가보자고 나에게 권했고 나는 별 저항없이 끄덕끄덕. 여자친구는 내 손에 바세린과 핸드크림을 바르고 비닐장갑으로 마무리했다.
나혼자산다에서 이선빈이 그렇게 하고 자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났던 나는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고 이참에 괜찮으면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비닐장갑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문득 시선을 싱크대의 상단으로 옮기니
저번에 여자친구랑 같이 주먹밥을 만들었을 때 썼던 그 비닐장갑이 몇 장 남아있었다.
그냥 괜스레 웃음이 나올 시점에 계란찜이 완성되었고 여자친구는 계란찜을 조그마한 상에 놓고 숟가락을 놓았다.
내가 숟가락을 잡으려고 하자 여자친구는 숟갈락을 낚아채서 계란찜을 떠서 나에게 먹여줄려고 했다. "아~~"
무슨 팔을 다친 것도 아닌데 그러냐고 하니 여자친구는 다시 또 "아~~~." 고집이 센 여자친구의 행동이 바뀌지 않을 것을 감지한 나는
순순히 입을 벌렸고 여자친구는 계란찜을 후후 불어서 내 입에 넣어줬다. 간도 적당하고 맛있었다. 내가 맛있어 하니까 여자친구는 굉장히
기분이 좋은지 뿌듯해 하는 표정을 지었고 내 머리를 쓰담쓰담. 다시 한 숟갈을 떠서 "아~~~." 또 냠냠하고 먹으니 여자친구는 또 머리를
쓰담쓰담.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니 계란찜을 받아먹는 것이 귀엽다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몸에 힘은 없었다. 하지만 오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다 먹고 또 양치를 한 나는 피곤해서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여자친구는 내 가슴팍에
기대고 노래를 흥얼흥얼. 노래는 성시경의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내가 추천해준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친구에 모습에 기분이 좋았던 나는
여자친구 머리를 쓰담쓰담. 여자친구는 내 볼을 손등으로 쓰담쓰담. 대체휴일인 내일의 데이트를 생각하니 나른하고 힘빠졌던 몸에서
조금은 기운이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