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녀들을 물리친 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2152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73
조회수 : 36552회
댓글수 : 5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07/29 19:37:12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7/29 14:56:55
옵션
  • 창작글
누구나 그러겠지만 나는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거는 것도 별로 좋지 않고 나만의 공간인 집에 무단으로 방문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하게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과의 일화를 풀어보려 한다.
 
1. 나를 보고 인상이 선하다는 분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내게 가장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은 친구도, 선배도 그리고 여자친구도 아닌 버스정류장의 그들이었다.
신입생 시절 대중교통을 제대로 탑승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녀 둘이서 내게로 접근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 나쁘게 커플이다. 게다가 흰색 티셔츠를 마치 둘이 커플티처럼 입고 있어서 더 경계심이 들었다.
남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여성이 내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인상이 참 선해 보이시네요. 얼굴에 복을 타고 태어나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가 돈복은 타고 태어나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저 돈 없어요."
 
"저희는 물건 파는 사람이 아니고요. 학생에게 천운이 있는데 그걸 알려주려는 사람이에요."
 
"제가 지금 천운보다 급한 게 면목동 가는 건데, 혹시 여기서 면목동 가는 버스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뭐가 그리 좋은지 뒤의 남자는 계속 웃고 있고, 여자는 '이 자식 호락호락한 촌놈이 아니었군.'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집에 가시는 길인가 보구나. 잠시 시간을 내서 저희랑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학생 눈빛에서 기가.."
그다음 뭐라고 계속 말했는데 그들만의 전문용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제가 지금 집에 빨리 가야 해서 면목동까지 같이 가주시면서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급하셔도, 잠시 30분 정도만 시간 내주시면 되거든요. 아니면 커피라도 한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급하다니까요. 그렇게 도와주시고 싶으시면 같이 면목동까지 가면서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결국 그녀는 남자와 속닥이더니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다가와 내게 말했다.
 
"아쉽네요. 저희가 면목동까지 갈 수는 없고..."
 
"그럼 갈 길 가세요. 저도 집에 가야 해요."
 
그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물론 아직도 내게 합정역 앞에서 저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2. 토익 누나
약관의 신입생 시절 동기들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라면서 토익 학습지를 파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구매한 뒤
(그들의 수법은 마치 학교 교재인 것처럼 사기 쳐서 팔았다고 들었다.)
취소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를 했다. 그중 일부는 부모님께 말씀도 못 드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았던 친구도 있었다.
많았다. 다행히 나는 돈이 없어 보였는지 아니면 영어 잘하게 생겨서 그런지 내게로 다가와 내 미래를 걱정해주는 선배는 없었다.
 
내가 복학한 24살이 되던 해, 몸은 예비역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신입생이었다.
마치 에버랜드에 처음 놀러 온 용포의 어떤 여인처럼 신기하게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등교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정한 정장을 입은 여인(엄청나게 예뻤음)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신입생이신가요?"
 
신.입.생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신선하고 황홀한, 마치 제세동기의 출력을 가장 세게 한 뒤 심장에 직접 마사지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갓 제대한 예비역인 나를 신입생으로 봐주다니..
 
"네 신입생 맞습니다만.."
 
"아.. 저는 작년에 졸업한 선배인데,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그럼요. 말씀하세요."
 
"그럼 우리 저기 벤치, 아니 시간 되면 커피 한잔 할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도 있고."
 
"네 누나. 가시죠." 내가 앞장섰다.
 
내 24 인생에 나와 염색체가 다른 여자 사람이 커피를 먼저 마시자고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분명 토익 누나가 맞지만, 그녀의 외모에 끌려
따라갔다. 따라간 커피숍에는 몇 명의 토익 형아, 토익 누나들이 코흘리개 신입생들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 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키는 커피와 같은 것으로 시켰다. 그녀는 빠르게 본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저기 대학 작년에 졸업했으면 24살이시죠?"
 
"응? 으..응 24살인데.."
 
"사실 나도 24살인데, 신입생도 아니고 그쪽이 예뻐서 따라 왔거든요. 내가 토익 교재 하나 살 테니까. 나랑 사귀어 주세요."
 
순간 그녀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저랑 사귀어주면 내 친구들도 내가 때려서라도 하나씩 다 사게 만들 테니까 우리 사귀어요."
 
그녀는 당황의 단계를 넘어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한 토익 형아들과 낯선 아저씨들 손에 이끌려
커피숍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나는 쫓겨 나면서 외쳤다.
 
"전화번호라도 알려 주던가아아아아! 나는 포기 못해애애애애"
 
그리고 수업받으러 강의실로 룰루랄라~ 하며 깡충깡충 뛰어 갔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쯤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다가 실수로 나를 추억하면 소주가 생각나겠지..
 
3. 종교인들
지금 사는 집은 입구부터 최첨단 무인 감시 시스템으로 함부로 집에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지만, 결혼 전 내가 살던 자취방은 매주 주말이면
좋은 말씀 전하러 온 아주머니, 절에서 만든 물건을 팔러 오는 스님인지 그냥 대머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장사꾼들 등이 찾아 왔다.
그런 분들이 올 때마다 매번 거절하거나 무시했었다.
 
불타는 금요일 소주와 고량주로 오장육부가 광란의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어김없이 토요일 아침부터 내 자취방이 예루살렘도 아닌데 신도들의
(기독교 모독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의 증인이겠지요.) 방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오전에만 2팀이 나의 자취방으로 순례
왔다. 그 날 나는 한 번만 더 내 방문을 두들기고 초인종을 눌러댄다면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과 장렬히 싸운 오스만 튀르크의 전사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띵똥 띵똥" 또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댔다.
 
"누구세요?"
문구멍으로 바라보니 아주머니 두 분과 학생처럼 보이는 여성 3인조였다.
 
"아.. 실례합니다. 잠시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실례라니요."
나는 마치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반찬을 잔뜩 싸들고 오실 때처럼 아주 반갑게 문을 열어 드렸고, 공손하게 인사드렸다.
 
"들어 오세요. 어서 들어 오세요."
 
세 여인은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하는 표정으로 약간 당황한 듯했다.
 
"아. 여기서 말씀 잠시 드려도..."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인데, 들어 오셔서 편하게 말씀하세요." 라고 말하며 리더로 보이는 앞에 있는 아주머니를 손을 잡고 집안으로 모셨다.
그러자 뒤에 있던 두 여인도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문을 이중으로 철컹 철컹 잠갔을 때, 뒤에 따라 들어온 두 여인의
표정이 점점 싸늘히 질려갔다.
 
"아 편하게 아무 데나 앉으세요."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이 결코 깨끗하고 아늑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 야구단의 전리품인 야구 배트가 방 한가운데 있었고, 그녀들에게 가장
두려웠을 거라 생각되는 건, 방 한쪽에 어제 함께 술 마시고 술이 덜 깨 좀비처럼 하늘로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친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로 오셨죠?
 
"아.. 그게.." 리더인 아주머니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셨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어젯밤 먹다 만 생수와 맥주 몇 캔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집에 오신 분들인데 제대로
접대해 드리고 싶었다. 이건 진심이었다.
 
"저기 친구분도 주무시고 계신 데 다음에 찾아오겠습니다."
 
"저기 지금 말씀 안 하실 거면, 다시는 오시지 마세요. 다른 분들한테도 꼭 말씀 전해주시고요. 저는 관심 없는데 왜 매주 토요일이면
저를 괴롭히세요. 지금 제가 이렇게 행동하니까 무서우시죠? 저도 아주머니 같은 분들 오면 화도 나고 무서워요."
 
"네.. 네 알았어요."
 
그 뒤로 좋은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결말이면 나도 좋을 텐데, 안 오긴 개뿔, 매주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출처 저는 유머처럼 쓴 글인데, 내용이 불편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제가 먼저 그분들을 괴롭힌 건 아니었습니다.

싫다고 하는데 남을 괴롭히거나, 순진한 사람에게 사기치면서 살면 안되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