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공은 대만을 정복하자마자 민생안정과 인심 얻기에 나섰다. 당시 대만에는 중국본토에서 이주한 중국인 외에도 대만 원주민이 되는 가오산(高山 : 고산족이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고산' 이 한자로 풀이되는데로 정말 고산지대에 사는 원주민인지 아니면 그냥 '고산'이란 족인지는 모르겠다)족이 있었는데 정성공은 그들과의 화의를 꾀한 것이다. 본래 대만의 원주민들은 본래 중국인들을 싫어했다. 중국의 역대왕조들에 의해 늘상 지배받아왔던 탓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륙의 주인으로 부상한 청 제국이 역대 중국 통일왕조들의 전례처럼 행여나 그 대만까지 지배하려 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정성공을 경계하는데에 한 몫하고 있었다. 물론 만주족의 청과 한족의 정성공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들 입장에 있어선 그 놈이 그 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공은 자신이 청나라가 아닌 명나라의 신하임을 밝히고 청이나 서양과 같이 대만을 집어삼키려는 음흉한 속내는 없으며, 오히려 함께 그들에 맞서 대항하자는 제안을 건넸던 것이다. 정성공의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정성공의 정성과 진심에 원주민들은 정성공 일행이 기존의 중국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더욱 나아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함께 연합하여 청에 대항하는 운명공동체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대만은 완전히 중국 세력권으로 들게 된다. 앞서 말했듯 정성공의 통치 이전의 대만은 중국의 관심 밖에 있었으며 미개척지였다. 하지만 이후 정성공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대만은 개발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정성공은 이 업적으로 대만 개척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대만에서 장제스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인물 투톱으로 손꼽히고 있다. 허나 이 정성공도 1662년 말, 39세의 나이로 급사한다. 대만에서의 네덜란드 세력을 내쫓은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 명성과 위세에 비해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병사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병사보다는 타살이나 자살이 유력하다는 얘기도 있다(솔직히 자살은 아닌 것 같다. 그 양반이 뭔 이유로 자살하겠는가). 정성공이 원체 대단했던 인물인지라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였다.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그럴 듯한 설은 청의 암살설이다. 당시 정황을 따져보자면 제일 그럼직한 설이다. 정성공은 청 조정을 꽤나 골머리 썩게하던 반군 지도자였다. 이것만봐도 충분히 암설설이 제기될 만 하다. 게다가 정성공의 죽음에 관한 기록도 이 암살설을 뒷받침 해준다. '약사발을 마시고는 한동안이나 가슴을 붙잡고 발을 구르며 괴로워 했다.' 사서에 기록된 구절이다. 한마디로 독살당했다는 얘기다. 허나 이것 역시 이후 청에 의해 기록된 역사서인지라 그리 믿을 만한게 못된다. 또 다른 설이 있는데 이것 역시 청의 사주에 의한 것이지만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정성공은 군율을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정성공에 대한 앙심을 품는 자도 생기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청에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매수하고 사주하여 정성공을 죽이게 했다는 설이다. 그 외로도 여러가지 설이있다. 그 형제에게 죽이게 했다는 등, 뭐 어쨌다는 등이 있지만 그 모든 설에서 공통된 점은 바로 배후에 청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성공의 사당에 있는 정성공 상 여튼, 정성공의 사망소식을 접한 대만 원주민들은 크게 슬퍼하며 그를 위해 사당까지 지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후 청의 강희제도 그의 업적을 기려 '대남 연평군왕사'란 사당을 지었으니 그 업적을 국외에서도 인정받았던 셈이다. 한편으로는 정성공의 사망직후, 청 조정에서는 정성공에게 '개산성왕'이란 작위를 하사하는데 비록 적이었다고는 하나 청에서도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또다른 증거다. 아무튼, 시대를 풍미했던 정성공은 그렇게 죽고 이제 대만의 정씨정권을 이어받은 이는 정성공의 유언대로 정성공의 장남, 정경(鄭經)이었다. 하지만 정경의 계승을 마땅찮아 하는 이가 있었으니 정성공의 차남이자 정경의 동생이 되는 정습(鄭襲)이었다. 정경은 본래 정성공이 대만 정벌에 나섰을때 본래 정성공의 근거지였던 하문을 수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부음소식을 듣고는 유언에 따라 대만으로 돌아와 왕위에 오르려 했던 것인데 이때 정습이 방해에 나선다. 수하부장들을 사주하여 대만으로 오고 있는 정경을 도중에 죽이라 시킨 것이다. 허나 정경은 이미 동생의 그와같은 술수를 꿰뚫고 있었다. 오히려 역습을 감행해 정습의 수하들을 몰살하고 재빠르게 대만에 도착하여 정습도 죽여버렸다. 정성공이 죽자마자 정권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비록 그 규모는 작고 정치적 암투정도에 그쳤다고 하지만 뒷세대에게 계승된 정권이 불안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