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0개사 명품핸드백 알고보니 Made in Korea
[동아일보 2006-04-26 03:11:08]
[동아일보]
“코리아에서 만들었다고요?”
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도나 카렌 뉴욕’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32세의 동양인이 자기네 회사 제품과 똑같이 생긴 핸드백을 들고 불쑥 찾아 왔기 때문이다.
당당한 이 동양인은 한국의 중소 가방업체 ‘시몬느’의 박은관(朴殷寬) 회장이었다.
당시 박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5주 걸려 만들 물량을 일주일 만에 해낼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도나 카렌 측 사람들은 귀가 솔깃했다. 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팅팀은 펄쩍 뛰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요? 우리 고객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보고 가방 하나에 700달러를 냅니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아요.”
박 회장은 우선 100개만 만들어 고객 반응을 살펴보자고 설득했다.
서울 명동의 핸드백 ‘장인’들이 만든 한국의 핸드백은 뉴욕 고급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듬해 도나 카렌은 핸드백 전체 물량의 60%를 시몬느에 맡겼다.
지난해 시몬느는 고급 핸드백 2억5000만 달러(약 2375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버버리, 코치, 마크제이콥스, 셀린느 등 30여 개 명품회사가 시몬느의 고객이다.
박 회장은 “직원 220명의 핸드백 제조 및 디자인 경력을 모두 합치면 2700년”이라며 “장인 정신으로 세계 최고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아시아 첫 명품 핸드백 생산 맡아
“봉제업? 그거 하면 막차 타는 거야.”
1987년 박 회장이 가방 제조업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 그러나 박 회장은 가방 제조업에서 ‘블루 오션’을 봤다.
그는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가방 제조업체에서 해외 영업을 총괄하며 명품의 위력을 실감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먼저 적장의 목을 베라.’
그래서 회사를 만들고 첫 타깃으로 정한 곳이 미국 최고 디자이너브랜드 도나 카렌이었다. 계획대로 ‘적장’이 넘어오자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등 다른 디자이너들도 먼저 연락해 왔다.
명품 회사가 고급 핸드백 생산을 맡긴 아시아 회사는 시몬느가 처음이었다.
단순 하청생산이 아니라 제조업체가 디자인을 제안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을 자청해 주목받았다.
2000년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명품업계의 ‘큰손’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그룹이 시몬느를 찾았다. 시몬느는 현재 셀린느, 로에베, 겐조 등 LVMH의 7개 브랜드 가방을 만들고 있다.
“요즘 이탈리아에선 45세 이하 ‘젊은’ 가방 기능장을 찾기 어렵대요. 가방 수요는 급성장하는데 유럽 제조 기반이 흔들리고 있어 생산기지를 아시아에서 찾더군요.”
아시아가 새로운 생산기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수천 개의 가방공장 중에서 고급 핸드백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 ‘메이드 인 차이나’ 가방도 알고 보면 시몬느의 중국 현지공장에서 만든 게 많다.
○명품의 조건
“원래 이탈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의 하청공장이었어요. 1960년대부터 탄탄한 제조 기반을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과 문화의 상품화로 세계적인 명품이 나온 거죠.”
박 회장은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글로벌 패션 회사로 도약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탈리아처럼 제조 인프라와 문화 파워를 적극적으로 키우면 다음 세대 정도에 세계적인 명품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의왕=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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