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나라가 없어졌다.
당신이 살고 싶은 다른 나라의 대통령에게 왜 그곳에서 살고 싶은지 설명하는 편지를 써보라.
친애하는 미합중국 대통령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은 없어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았던 적이 있는 난민입니다.
평소에 재치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기에 가급적이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재밌고 즐거운 편지를 쓰고자 노력할 생각입니다만, 제가 사는 난민 수용소의 물이 끊긴 바람에 며칠 동안 발을 못 씻었습니다.
물론 물이 나온다고 해도 별로 씻을 생각은 없지만요.
어쨌든 지금은 발가락 사이가 너무 간지러워 원래 제가 가지고 있는 위트와 유머를 십 분의 일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저 미합중국의 드넓은 영토에 제가 발을 붙일 가로 세로 70 센티 정도의 공간을 할애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은 주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적어도 제가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서 늑대와 함께 춤을 추고 있을 때 우연찮게 거기를 지나던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직원에게 붙잡혀 다시 이 거지같은 수용소로 돌아오지 않을 정도의 안전장치를 원합니다.
또한 제가 국립공원에서 나무를 꺾어 만든 활과 화살로 코요테 몇 마리 잡는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저는 그 나라에 없는 인간이라고 치시면 됩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광활한 자연 안에서 제가 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기를 관리하는 인간들은 텐트 옆에 자라난 잡초도 함부로 못 뽑아먹게 합니다.
그에 비하면 미합중국은 굴러다니는 건초더미같은 건 주워 먹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텍사스 사막같은 곳은 한 낮에 벌거벗고 춤을 추고 오줌을 갈겨도 볼 사람조차 없을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제가 원하는 삶입니다!
억압당하고, 감시당하고, 배고프고, 기분이 더러운 건 망할 놈의 나라가 망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만약 이 나라가 망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미합중국의 이름모를 숲이나 강가에 가고 싶었겠지요.
저는 이 꽉 막힌 수용소에서 벗어나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제가 뭘 주워먹든 상관하지 않는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합중국이 거기에 가장 걸맞는 나라입니다!
(저를 데려가시기 전에 산에서 나는 풀이나 야생동물을 먹으면 안 되는 주가 어디인지만 살짝 알려주십시오.)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XX 어느 난민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