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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후기 "역사란 무엇인가" (스포주의)
게시물ID : movie_215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보랏빛일몰
추천 : 1
조회수 : 239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2/23 19:31:39
 
 
  박진우 및 그의 친구들이 가진 독서모임에는 여러 책들이 오고 갔다. 그 중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는 책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E.H.카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필자가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배울 무렵 첫 수업은 역사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이었다. E.H.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강변했다.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조사한 선사시대를 넘어 역사시대에 들어서서 과거에 사관을 비롯한 역사가가 남긴 기록에 의해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토대로  역사를 해석해나갔다. 다음은 한 영화 교양 서적의 일부로 영화의 역사성에 관해 서술한 부분이다.
 
영화는 과거를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어떤 관점에 의해 창의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영화는 사실보다는 열의와 통찰, 인식과 느낌을 다루는 것이며, 사건들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과거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보여주는 데에 관심이 있는 매체이다. 영화는 과거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근사치의 적당한 인물, 상황, 영상, 은유를 창조해 낸다. 이러한 노력의 성패는 화면이 자료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와는 별 관계가 없다. 단지 영화가 의미 있고 유용한 역사를 얼마나 훌륭히 창조해 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영화 [읽기], 영화 진흥 위원회 교재 편찬 위원회,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p 110.)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 '화려한 휴가'와 매한가지로 '변호인'은 사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감독의 어느 정도 변용과 창조 과정이 있었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마냥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변형을 통해 내러티브와 메시지를 응축시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리라 확신한다.  
  이번에는 역사학자 E.H.카의 다른 언행을 뒤쫓아가보자. 그가 했던 명언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단연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를 뽑겠다. 이 명언으로 좀 더 감독의 메시지를 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역사를 이루어냄을 말하고 있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시대 상황에 대입시켜보자. 먼저 눈여겨봐야할 점은 차동영 경찰이 박진우에게 너의 사상이 무어냐고 묻자 박진우가 '실존주의'라고 답한 부분이다. 실존주의가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산업 사회에 따른 인간 소외 ② 세계 1, 2차 대전 ③ 전체 주의의 대두'가 그것이다. 6.25 전쟁의 발발 이유 중 하는 미소의 냉전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교착화를 이루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반공을 위해 메카시즘이라는 칼을 뽑아든다. 영화 재판 배경이나 과정에서 지독하게 빨갱이로 대표되는 메카시즘의 잣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힐난하며 괴롭힌다. 더군다나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옮아가는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지독한 병은 산업화로 그 정당성을 갈구했고 획일화와 전체주의로 일반 시민들을 억압해 나갔다. 이러한 점에서 그 본질적 맥락이 유사하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군의관의 증언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폭압적인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서 역설적으로 군인 신분으로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마치 국정원 댓글 개입에서 부당한 행태를 고발한 권은희 수사과장이나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상황을 낱낱이 밝힌 언론인 손석희로 그 소실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세번째로, 영화 후반부에 나온 송우석 변호사가 형사에게 말하는 대사에 주목해보라. 그는 현 정권(노태우 군사정권)은 추모회도 무서워하는 정권이라고 말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역시 '안녕하십니까'라는 안암에서 시작된 대학생의 대자보에 혹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은퇴한 신부의 한 발언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다. 이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필자가 대학교에 입학 후 들은 강연 중 '한국 문학과 미술'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확고해주는 소스가 나왔다. 문학편에서는 태극 사상과 경일(庚日)에 따른 말복에 대해 간략히 배웠다. 주요 골자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며 시작은 또 다른 끝이다.'와 '어떤 것이 가장 극성을 부리는 시점은 그것에 대척점을 이루는 또 다른 것이 발생하는 시점이다.'로 순환의 원리[이치]를 파악해가는 것이다. 미술편에서도 역시 빙켈만의 미술사관을 통해 순환이라는 속성을 가진 인류 역사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글쓰기 교양에서 감상한 영화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의 내러티브 중 하나가 지난 과거를 곱씹어보며 현재를 바라보는 점이었다.
  영화 '변호인'의 시대적 배경이나 현 정치 상황에서 무언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두개의 수업 내용에서 공통점을 추출해보면 그 맥락을 보며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고 표한 E.H.카의 명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다시 말해, 영화의 메시지는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를 읽어보라는 말이 아닐까.
 
 
  필자는 한 때 학자의 길을 꿈꾸어왔다. 지리, 역사, 천문, 물리 등 관심 있어하는 부분들은 모조리 섭렵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능력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피해의식과 부유하는 정체성 그리고 세상에 대한 원망 등으로 엇나가며 지나갔다. 그렇게 질곡 속에서 세월을 흘러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고3 입시 시즌에 들어서 추락하는 모의고사 성적을 숨겨둔 채 지방대이지만 아웃풋이 좋다고 소문난 국립대 어떤 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 입학한 이유는 그 학과가 졸업 후 공무원이나 기업체 방면으로 취업이 타과에 비해 수월하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도 방황은 현재진행형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속을 쏜살같이 달리는 기분을 도려낼 수 도 없었다. 선배들이 주는 얼차려에 분노했고 썩어가는 정치에 대해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의사를 표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방관할 뿐, 침묵을 지킬 뿐 억눌린 감정을 비겁하게 삼키고 말았다. 영화 '변호인' 초반부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등기 및 세무 관련으로 많은 돈을 벌듯 필자도 자본주의의 열매를 먹으려고 죽어가는 대의를 짓밟은 채 속물 근성만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러다 영화 '변호인'이 보고 나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즉, 지나온 발자국인 과거를 들여다보며 더 나은 오늘과 미래를 가꾸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듯 하다.
  
 
  필자는 영화를 관람한 후 관객들의 해석이 각기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해석과 비평이 가치 있거나 없거나로 단순히 매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온 인류가 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면 똑같은 영화를 볼 때 최소 70억 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거니와 1년 후, 10년 후에 되어 감상할 때 다르게 접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배우들의 연기를 배경으로 작가와 감독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고 한다. 물론 사실적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다른 부분도 있다. 이 점을 염두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파악해 나간다면 더욱 뜻 깊은 영화 감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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