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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카에 대한 추억
게시물ID : lovestory_379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로께
추천 : 0
조회수 : 112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11/12 15:27:41
무척 오래전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근처에 문방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문방구옆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평상같은 넓찍한 공간이 있었다.

보통 거기에서 친구들과 과자를 먹거나 문방구에서 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데 문방구는 아주머니가 보기 때문에 평소엔 보기힘든 문방구 아저씨가

평상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무엇인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얼마뒤 문방구엔 건전지와 모터로 움직이는 미니카가 진열되었고 곧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그제서야 그때 아저씨가 조립하던게 미니카트랙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니카의 인기는 대단했다.

쉬는 시간에 미니카얘기를 하지않는 남자애들은 거의 없었다.

모터가 앞에 있는게 좋다느니 뒤에 있는게 좋다느니 다투는 애들도 있었고

어떤 모델이 더 빠른가 얘기하는 아이, 바퀴가 어떻다느니 장식이 어떻다느니 사방이 미니카 얘기 뿐이였다.

자기 친구의 미니카가 제일 빠르다고 하는놈과 형 친구 미니카가 제일 빠르다고 하는놈이 싸우기도 했지만

사실 미니카를 가지고 있는 녀석은 별로 없었다.

그럴만도 한게 미니카는 오천원이나 하는 비싼 장난감이였기 때문이다.

칠백원에서 천원정도하는 아카데미 짝퉁 프라모델도 큰맘먹고 사던 나에게 오천원은 어마어마한 거금이였다.

그래서 매일 학교가 끝나면 문방구옆 미니카트랙에서 미니카경주를 한참동안 구경만하다 집에 오곤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미니카를 가지고 싶었다.

학교 끝나고 미니카 경주를 한참동안 구경하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확 열어제끼고 엄마를 보는순간 크게 외쳤다.

"엄마 나 미니카 사게 오천원만 줘!"

나는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기위해 배추를 절구던 중이였다.

김장이라든지 명절때 아무튼 돈이 많이 나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아빠한테 바가지를 긁던 엄마아니던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엄마는 나를 힐끗 보더니 배추를 고무다라이에 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절군배추가 날아오거나 젖은 고무장갑으로 귀싸대기 맞겠구나 싶었다.

엄마는 한쪽 고무장갑을 벗더니 앞치마에 손을 넣고 말했다.

"오천원이면 되니?"

나는 모기만한 소리로

"네"

라고 대답했다. 이게 왠일이야!. 

엄마한테 오천원을 받자마자 가방도 벗지않고 바로 문방구로 달려갔다.


진열장엔 수십개의 미니카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어느것이 더 빠를까. 어느것이 더 멋진가.

고민하고 고민하다 한시간여 만에 문방구 아줌마의 눈총에 등이 뜨겁게 달아오르고서야 미니카 한개를 겨우 골라 샀다.

집에 오자마자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심장이 쿵쾅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방안을 한참 팔짝팔짝 뛰어다닌 후에야 어렵지만 조립을 할 수 있었다.

미니카는 완성했지만 건전지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다음날 엄마가 건전지를 주었다. 집안에서 미니카를 달리게하고 나는 또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문방구옆 미니카트랙은 언제나 발디딜틈 없을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뭔가 본격적인 공구상자를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있었다.

그애들의 미니카는 정말 믿기힘들 정도의 속도로 말그대로 트랙을 날아다녔다.

그 애들은 건전지 종류가 어떻다느니 모터가 어떻다느니 뭔가 어려운 말들을 했고 무지 멋있어 보였다.

내 미니카는 걔네들에 비해 당연히 느린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트랙에서 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문방구옆 트랙은 언제나 만원이였고 어느정도 수준이 안되면 낄 기회조차 없었다.


토요일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미니카를 꺼내 방에서 놀고있는데 엄마가 와서 말했다.

"넌 그거 가지고 문방구에서 안노니?"

"거기 사람많아서 낄틈이 없어요."

생각해보니 토요일 낮엔 미니카 죽돌이들도 밥먹으러 집으로 가기 때문에 한가했었다.

"지금이라면 아마 사람 없을거 같아요. 한번 가볼래요."

집안 장판위에서는 무지하게 빠르게 느껴졌지만 과연 트랙에서는 어느정도의 속도가 나올지 궁금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밥을 후다닥 먹고 미니카를 들고 문방구를 향해 달려갔다.



미니카트랙옆엔 미니카죽돌이 3명뿐이였다. 죽돌이들은 공구상자를 열고 이리저리 미니카 튜닝에 열심이였다.

미니카트랙이 텅 비어 있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까.

나는 트랙 반대편에 앉아 내 미니카에 건전지를 넣고 스위치를 켰다. 바퀴가 미친듯이 회전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트랙에 미니카를 놓았다.


피비비비비빅


충격이였다.

내 미니카는 거의 제자리에서 버둥거리며 제대로 나아가질 못했다.

미니카 트랙이 미끄러워서인지 바퀴가 아무리 빠르게 돌아도 미니카는 거북이 마냥 기어가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미니카를 보고있는데 그순간 쇄액 소리를 내며 검은 물체가 번개같이 내 미니카에 쾅 하고 부딪혔다.

죽돌이의 미니카였다. 모터소리부터 다른 검은 그 미니카는 내 미니카의 엉덩이를 맹렬하게 밀어붙였다.

내 미니카는 덩치만 크고 무거웠고 병신처럼 빌빌대며 밀려갔다.

"야!"

고개를 들자 죽돌이중 한명이 짜증스럽게 쳐다봤다.

"꺼져!"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언른 내 미니카를 집어들었다.

장애물이 사라지자 검은색미니카는 총알처럼 트랙을 질주했다.

너무나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으로 가려고 돌아서는데


조금 떨어진 전봇대 옆에 엄마가 서있었다.


얼굴이 터질것 같았다. 머리속이 새하얗게 변한거 같았다.

엄마한테 달려가 손을 잡고 집으로 끌었다.

"집에선 무지 빨랐는데 저게 플라스틱이라 미끄러운가봐. 사실 건전지도 반쯤 쓴거라 힘도 별루 없었고."

나는 연신 뭐라고 횡설수설대며 엄마손을 잡고 걸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를 힐끔 올려다 봤지만 한낮의 햇살이 눈부셔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슬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뭔가 가슴이 꽉 조이는 기분이였다. 다음날이 되어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아빠구두를 닦고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이백원 가끔은 오백원. 조금씩 돈을 모으고 군것질도 꾹 참았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미니카가 빨라지는지 묻고 다녔다.

그렇게 한달쯤 후에 오천원을 모을 수 있었다.


오천원을 들고 문방구로 갔다. 진열된 미니카와 부속부품들을 둘러본뒤 사려고 마음먹었었던 블랙모터를 샀다.

집에 돌아와 미니카의 모터를 교체하고 스위치를 켰다. 바퀴가 쉬잉 하며 빠르게 회전했다.

나는 스위치를 끄고 미니카를 책상서랍 안쪽에 던져넣고 닫아버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애들에게 미니카에 대해 묻고 다녔고 그래서 많은것을 알았다.

오천원짜리 블랙모터보다 만원짜리 르망모터가 더 빠르고, 이만원짜리 블랙르망이라던가 그것은 더 빠르다고 했다.

바퀴도 종류별로 천차만별에 미니카 프레임도 더 튼튼하고 가벼운것으로 바꿔야 하고

건전지도 파워가 쎈걸 쓰려면 좋은것을 써야한다고 했다. 끝이 없는 이야기들.

그 뒤로 집에 올때 문방구옆 미니카 트랙에 가지 않았다. 책상 서랍에 처박아 놓은 미니카도 꺼내지 않았다.




몆달뒤엔가 평소엔 보기힘든 그 문방구 아저씨가 미니카 트랙을 분해하고 있었다. 미니카 트랙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문방구엔 미니카가 진열된 자리에 BB탄 총이 진열되었다. 어김없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동네골목마다 누구나 BB탄 총을 들고 놀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총을 쏴대었다.

학교에선 애들끼리 BB탄 총을 강하게 개조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어느 총이 더 파워가 쎄고 개조하기 좋은지 얘기했다.

돈 많은 놈은 M16을 들고다니고 손재주 많은 놈은 개조한 콜트 BB총을 들고 다녔다.

누가 더 파워가 센지 누가 더 멀리 나가는지 경쟁하고, 피가 나고 BB탄이 쪼개질 만큼 강하게 개조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그때 조금 어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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