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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살고 싶어졌는데...
게시물ID : gomin_21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살고싶다...
추천 : 14
조회수 : 46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08/03/14 18:01:55
학력 미달로 인하여 받은 공익 판정.
그리고 너무나 늦게 시작된 공익 생활.
양어머니와 배다른 형제.
보이지 않는 갈등. 차별. 
한 순간도 잠을 제대로 자본적이 없었고,
출근할수 있는 곳까지 갈 차비가 없어서,
미리 일어나서 일부러 걸어다녔다.
밥 먹는 점심시간, 밥 값도 모자라서, 1시간을 밖에서 있다가 들어왔다.
어쩌다가 한번씩 공무원들이 사주면, 행복했었고,
내가 그렇게 출퇴근 하고 먹거나 굶는다는걸 가족에게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서,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 가방끈 늘리고 싶어서,
갖은 눈치 받아가면서 이면지에 전년도 기출문제 프린트해가면서 공부했고,
고졸 검정을 패스했다.
A4용지 한장의 졸업증명서.
허무했지만 그래도 내가 뭔가를 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복무이탈.
참지 못한 하찮은 인내심.
그리고 전화로 받는 죽음협박.
주민번호 도용 당해서 생긴 미성년자때의 할부물건 구입..
나는 모르는 일인데 나보고 내란다.
법률구조공단 소비자 보호원에서 내용증명 하라고해서 그대로 했더니,
전화와서 죽인단다.
애들 푼단다.
겁났다.
도망갔다.
공익 이제 일년 남았는데, 그래도 몇시간 알바해서,
조금더 먹고 고시원에서 혼자 잠을 잘수가 있었는데,
도망갈수 밖에 없었다.현실이 싫었다. 죽도록 싫었다.....

아무에게도 내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그냥 일자리 구한다고만 했다.
막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등본이 필요하지 않는 일만 찾다보니,
적자만 커졌다.
없는돈에 그나마 벌리는돈도 쓰이는곳이 많아졌다.

살아있음이 싫어서 죽음을 생각하며 도망치며 살았는데,
공익근무 분할복무가 된단다.
살수 있는 빛이 보이는것 같았다..
07년 10월 자로 가능해졌단다.
12월에 들었다.
살고 싶어져서, 자수 결심을 하고 집이랑 통화를 했더니 어머니가 치매란다.
집에 들어오지 말란다.
날 못알아 보는데다가 환경이 바뀌면 병세가 악화 된단다.
할말이 없었다.

두달간의 구치소 생활.
경찰서라고는 면허증 갱신때 가본게 처음인데.
처음으로 전과가 생긴것이다....

출소 하는날 아무도 없었다.
나오자마자 병무청에 전화하고 상담하고,
공익근무 담당자랑 이야기를 했다.
일단 나오란다.
그런데 잘곳이 없다.
여전히 난 집에 갈수가 없다.
두렵다.
다시 도망치기는 죽어도 싫은데,
그런데..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지금은...
잘곳이라도 있으면 일자리라도 구해볼텐데..
전화 해보면 숙식되는곳은 시간이 풀이고, 조건이 좋은곳은 숙식이 안된다..
힘들고 배고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건 미래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밤은 어디서 보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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