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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연가(戀歌)
게시물ID : seafishing_21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봄여름가을.
추천 : 5
조회수 : 12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21 12:37:14
따사로운 햇살만큼 적당히 나태해진 오후의 부산 청사포에 눅진한 바닷바람이 살랑거렸다. 한켠에 아무렇게나 적재된 통발과 어망이 있는 주차장을 지나자 성벽처럼 축조된 방파제가 이어졌고 외항 쪽으로 파랑의 완충용 테트라포트가 서로 깍지를 끼고 어깨동무를 한 채 방파제를 감싸안았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집어등을 장착한 어선이 요란한 엔진 소음을 냈고 내항에 물살을 일으켜 굼실굼실 출항하며 선미로 흰 포말을 자꾸만 게워냈다.
 
한적한 포구의 무료함에 까닭모르게 이끌려 알 수 없는 야릇한 열정에 이어 간단한 문의로 낚시점에서 학꽁치 뜰낚 채비와 크릴 한 통을 구입했다. 우럭과 광어와 갈치를 낚기 위해 루어낚시를 시도한 적이 있어 바다낚시가 그리 생소하지 않았지만 생미끼는 처음이라 낯설었다. 내항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꾼들의 살림망을 힐끔힐끔 들여다보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노인 낚시꾼 곁 방파제 끝 T포트가 시작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만수선 아래로 따개비와 홍합과 해초가 다닥다닥 뒤엉켜있었다.
 
민장대 찌낚을 하는 노인의 챔질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록 골수 바다꾼들이 잡어로 여기는 작은 물고기라도 "노인정 친구들 갖다주면 반찬감으로 아주 좋아한다"고 환하게 웃으며 쉽게 보아 넘기기엔 예리하면서 절도 있는 동작과, 몇가지 물음에 간단한 핵심의 겸손한 답변에는 품위와 나이만큼한 인격이 배어 있어 그 노익장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간단한 지도로 낯선 제자가 연신 제법 굵은 볼락과 메가리(전갱이)와 수족관에 넣어도 손색없을 노오란 줄돔과 연초록 어린 벵에돔을 낚아내자 노인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졌다.
 
어느새 낚시꾼이 늘었고, 무슨 고기를 잡았는지 궁금해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순례가 늘었고, 내가 잡은 물고기가 커보였는지 슬금슬금 내 영역을 침범하며 아까 그 자리로 각주구검 하던 주부 조사의 물고기 조리법 해설에 이어 삼발이(T포트)에서 낚시하다 떨어져 다쳤다는 시동생 얘기가 능청맞았고, 밤낚시를 예비하느라 두툼한 옷을 입고 갯바위 장화를 신고 절벅거리던 떠벌이꾼이 밉지 않았고, 통점 유무가 확인되지 않았어도 낚은 고기를 얼른 꺼내지 않고 퍼덕이는 손맛을 눈을 감고 음미하는 한 중년이 탐욕스러웠고, 나도 이렇게 재미를 들이다가는 중장비를 뭉텅 구입하고는 소설 <미늘>의 한전무처럼 추자도 푸랭이섬에서 대물 감생이(감성돔)를 낚으며 모기에 엉덩이를 물리지 않으려고 물속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항쪽 방파제에 어선이 접안 할 때 상처나지 말라고 박아둔 반원통형 고무판이 들물에 공명관 역할을 했는지 북유럽의 극광에서나 날 것 같은 반향으로 신비로웠다. 바다의 호흡 소리였다. 첫경험의 짜릿함에 고무되는 바람에 시나브로 어둠이 내렸어도 낙조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듯싶다. 고개를 바다 밖으로 돌리니 갯바위 위 해송숲 솔모롱이 너머 어촌의 밤이 밝았고 조개구이와 회를 판매하는 식당과 가로등이 휘황하게 점등되었다. 서편 공제선 노을이 붉게 타들어갔다. 그제서야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배고플 개 두 마리와 설핏 부는 바람에도 떨어지는 허약한 가을잎 그득한 마당이 떠올랐다.
 
 
내사진 321.jpg
부산 기장 : 사진 한종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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