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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 Down
게시물ID : readers_21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밥천국만세
추천 : 3
조회수 : 29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9/03 14: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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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었다. 헤어짐을 겪어도 1주일, 길어야 1달이면 내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랑 때문에 아픔을 겪었으니 사랑으로 치료하고자 또 다른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 마음이 식어서 떠나보냈건, 나를 향한 마음이 식어서 떠났건 별다른 미련은 없었다. 그저 인연이 아니었었나 보다. 예뻤었는데 아쉽다. 이 정도면 오래 사귀었지 뭘. 등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그녀와 처음 만난 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다. 나는 잘나가는 뷔페의 주방알바였고, 그녀는 홀 알바였다.
처음에는 일을 배워야 했고, 주방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워야 했기에 홀 사람들에게까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 정도 일이 능숙해지고 주방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고 나니, 가까이에서 일을 하지만 별다른 교류가 없던 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은 칼에, 불에, 뜨거운 기름에 위험성이 있다 보니 대부분이 남자였고, 홀은 손님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직원이고,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직원이다 보니 대부분이 예쁘장한 여자들이었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짧은 커트 머리에 보이시한 여성이었지만, 아쉽게도 홀 알바중 에서는 그런 스타일이 없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듯 안 한 듯 엷은 화장을 하고, 터질듯한 볼살을 가진 얼굴에 뚱뚱 아니, 뚱뚱과 통통의 경계에 있는 듯한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여자직원들하고는 까르르 거리며 잘 놀았지만, 남자직원들하고는 별로 어울리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남자들이 특별히 멀리한다거나 이런 느낌은 없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만 먹어. 다이어트 해야지! , 역시 힘이 세네! 등의 그녀의 통통한 몸을 겨냥한 발언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바보처럼 헤헤헤 웃기만 할 뿐,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안쓰러워서였을까? 아니면 나도 놀리고 싶어서였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 그녀에게 눈이 갔다. 딱히 말을 건다든가 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다가도, 쉬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근처에 그녀가 있다면 어느새 내 눈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니 그녀의 모습이 익숙해져서였을까? 어느 새부턴가 그녀의 터질듯한 볼살도, 두꺼운 팔뚝 살도, 뒤뚱뒤뚱 걷는듯한 그녀의 걸음걸이도 귀여워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굉장히 귀여워 보였다.
 

실수를 해서 손님에게 면박을 당할 땐 조리하고 있는 음식을 집어치우고 홀로 나가 도와주고 싶었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있을 땐 대신 들어주고 싶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각종 쓰레기를 홀이 치우는 우리 뷔페의 특성상 그녀가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다른 여자 홀 직원이 쓰레기를 버릴 때처럼 응당 도와주러 와야 할 남자 홀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끙끙대며 그 많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주방직원이고 뭐고 홀로 전향해 그녀의 옆에서 항상 도와주고 싶었고, 퇴근길에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와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 마음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난 쉽사리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주변에서 바라볼 시선들을 의식을 했기에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우리 둘 사이가 중요한 거지.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렇게 용기가 나지 않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바라봤을 때 그녀가 웃고 있다면 나도 행복했고, 상사에게 혼나 훌쩍거리고 있다면 나도 울적했고, 드물게 화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나도 왠지 분노가 끓어올랐다. 직접적으로 그녀와 희로애락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몰래 쳐다보면서 간접적으로 나 혼자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찌질하게 혼자 바라보기만 한 지, 3달이 되던 날. 홀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9살이었던 그녀는 수능 공부를 할 기간에도, 수능 날에도 빠짐없이 알바를 나오더니, 이제 수능이 끝나고 모두가 알바를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그 타이밍에 돌연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홀 매니저님은 어차피 들어올 알바생들은 많으니 그렇게 하라고 했고, 그녀가 앞으로 출근할 날은 이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알바를 그만둔다면 앞으로 절대 다시 볼 수 없을 테니 그 전에 붙잡고 연락처를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지금껏 같이 일하면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연락처를 물어보면 혹여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출근날은 다가오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그녀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는 정말 한심하게도 그때까지도 어떡하지? 일단 붙잡을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물어보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녀가 당황해할지도 모르니까 문을 열고 나가면 나도 따라 나가서 조용하게 이야기할까?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하지? 이렇게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저질렀어야 했었는데 말이다.
 

내가 혼자 머릿속으로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떠난 것이다. 바보같이 생각만 하다가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그녀는 이미 떠나갔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무력감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위험한 주방에서 정신을 놓고 있으니 다치는 것은 당연지사. 손가락을 베였고, 주변에선 괜찮아? 약 바르자. 라고 나를 불러댔으나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멍청이, 겁쟁이, 용기도 없는 놈. 끝없이 자학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었다. 몇 달간 내 심장을 뛰게 하였던 그녀를 다신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만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떻게 집에 도착한 지도 모르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저녁 차렸으니 나오라고 했지만 말없이 돌아누웠다.
 

그러다 갑자기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홀 직원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나와 친한 주방에서 일하는 형은 홀 여직원과 사귀는 사이였었다.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며 형 여자친구에게 부탁해서 번호 좀 알려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형은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했고, 몇 분 뒤 그녀의 번호를 알게 되었다.
 

정말 꿈같았다. 막다른 길인 줄 알았지만, 그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길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번호를 알기 전까진 아주 좁은 길이라도 남아있다면, 넘어지고 찢기는 상처를 안고서라도 달려가겠다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 안에 숨어있던 겁쟁이가 다시 튀어나왔다.
 

막상 번호를 알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스러워졌다. 매장에서 말 한마디 안 나눠봤는데 갑자기 연락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나를 알고는 있을까?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그러던 중 번호를 알려준 형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그런데 번호는 왜 물어본 거야? 너 걔 좋아하냐? ' 그렇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 나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 답장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단 날 밝혀야 했으니 주방직원 누구누구인데 아시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안다고 대답했다. 난 적지 않게 놀랐었다. 날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를 가진 듯 벅차올랐다. 난 용기를 내어 할 이야기가 있는데 내일 잠깐 뵐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난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답장이 오기까지의 그 시간 동안 초조히 핸드폰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깐 생각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고 대답이 왔고, 난 날아갈 듯한 기분을 억누르며 만날 장소를 그녀에게 보냈다.
 

다음 날, 난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내 올라간 입꼬리를 보더니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지만 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일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사실은 지금 만들고 있는 요리건, 손님이건 다 때려치우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따라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흘렀다. 30분쯤 지났겠거니 하고 시계를 보면 10분이 지나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2개나 했으니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거라 생각하고 시계를 쳐다보면 예상한 시간보다 반밖에 지나있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난 퇴근 시간이 되기 한참 전부터 내가 끝마쳐야 할 모든 일을 미리 끝내놓고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고, 마침내 시계는 퇴근시각을 가리켰다.
 

주방직원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뒤로하고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다니는 버스가 많이 다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신호등이 고장이 났는지 버스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고 내 초조함이 극에 달할 때가 돼서야 겨우 버스 1대가 나타났다.
 

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 그녀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하나도 정해놓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지금껏 날 괴롭히던 내 안에 있던 겁쟁이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버스만은 내 마음을 아는지 달리고 달려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약속장소로 가보니 아직 그녀는 도착해있지 않았다.
 

막상 도착하고 나니 너무 떨려왔다. 지금 당장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도 몰랐다. 서 있을까? 앉아있을까? 핸드폰할까? 아냐 그러다 그녀가 오는 걸 모르면 어떡해. 노래 들을까? 떨리는데 음료수 하나 사 먹을까? ... 내가 원래 어떻게 하고 있었지?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나? 원래 손을 어디에 뒀더라?
 

그렇게 내 몸과 말도 안 되는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어두웠고,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벌떡 일어나 있었다.
 

난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도 내 존재를 느낀 듯 날 바라보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우리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난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의아함이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감도 안 잡힌다는 표정.
 

난 피어오르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그녀의 앞에 걸어가 섰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끌어안았다.
 

" 좋아해. "
 

그녀와 나의 키 차이는 20cm가 넘었다. 내 가슴에 그녀의 얼굴이 폭 잠겼다. 그녀는 내 품에서 빠져나갈 생각도 잊은 채, 얼굴에 놀라움이 번진 채로 날 올려다보았다.
 

내 나이 22, 그녀 나이 19살 때의 일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날 호감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했었는데, 그날 밤 내가 보여준 진심이 담긴 말과 행동에 얼떨결에 수락했다고 한다.
 

난 지금껏 감춰온 내 마음을 마음껏 발산하며 열과 성을 다해 내 사랑을 표현하였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잘 맞춰주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매장에 찾아왔었다. 그때 홀이건 주방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우리 사이를 알게 되었고, 모두들 놀라워했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한 형은 조심스럽게 원래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봤고, 난 이 형이 말하는 그런 스타일의 뜻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 그냥 그녀가 좋은 거라고. 그녀가 다른 스타일이었다면 그 스타일을 좋아했을 거라고.
 

다들 조금은 당황해하면서도 우리 사랑을 응원해주었고, 우린 그 응원에 힘입어 더욱 달콤한 사랑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아직 학생 신분 이었기에 하교 시간에 맞추어 내가 학교로 찾아갔었고, 우리는 매일같이 데이트를 즐겼다.
 

같이 손잡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그녀의 복스럽게 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그녀가 평소 답답할 때마다 자주 간다던 타로 집에 가서 타로점도 보고, 그녀가 자주 산책한다던 거리도 같이 걸었다. 그냥 무엇을 함께하던 행복했다.
 

그러다 나는 그동안 알바로 번 돈이 꽤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표를 예약했고, 그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의 데이트는 또 새로웠다. 서울의 유명한 데이트코스들도 한 바퀴 돌고, 맛집들도 가보고, 내가 대학 시절 살았던 동네도 데려갔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도 데려갔다. 이런 취향의 음악을 좋아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즐겁게 공연을 관람해주었다.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북적거리는 서울의 거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우리는 의자를 최대한 뒤로 눕히고 같이 누워 손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들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나니 애매한 시각의 새벽이었다. 이대로 들어가긴 너무 아쉬운 마음에 카페라든지 들어갈 만한 곳이 없나 돌아다녀 봤지만, 이런 작은 소도시에는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그녀와 나는 차도,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모가 1주일간 집을 비워서 내가 이모 집을 봐야 한다고 말이다.
 

난 당장 그녀와 이모 집으로 향했다. 난 지금까지도 그녀와 함께한 그 밤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이 점점 깊어갈 무렵, 위기는 찾아왔다. 입대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그래도 난 상근이었기에 그녀에게 훈련소 기간만 참아달라고 말했고, 그녀는 그 정도는 당연히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난 2달 남짓한 연애 기간을 뒤로하고 머리를 까까머리로 만들고 훈련소에 입소했다.
 

 

 

악몽과도 같던 훈련소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그녀는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난 그 선물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이별이란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남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훈련소 생활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내가 보낸 손편지는 수십 통인 것에 비해, 내가 받은 편지는 인터넷 편지 20장 남짓한 게 전부였다. 전화를 걸면 시큰둥한 반응이 느껴졌으나, 나는 대학진학 때문에 바빠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애써 불안한 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온 건 그녀의 차가운 이별 선고였다. 나는 이럴 수는 없다고 이유를 물어보며 매달렸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오빠랑 헤어지려는 이유는 미안해서 그런 거야. 처음부터 호감이라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오빠와 만남을 이어나갔지만, 그 감정은 사랑으로 변하지 않고 끝까지 호감으로만 남아있었어. 오빠가 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것에 비해 내 마음은 가식이 조금 섞여 있는 게 너무 미안해. 이런 식으로 내가 오빠를 붙잡고 있느니 차라리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게 놔주는 게 오빠를 향한 길이라고 생각해. 이런 이기적인 날 용서해줘. 미안해 오빠.'
 

그렇게 우린 헤어졌고, 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난 너무 아팠지만, 이번 사랑도 이전 사랑과 마찬가지로 조금 있으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길어야 1달이면 아픔이 가시고 마음으로 완전히 떠나보냈던 이전과 달리 2, 3달이 지나도 그녀는 여전히 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내 행동도 많이 달라졌다. 그녀가 좋아한다던 타로를 공부하기 위해 타로와 해설서를 구매해 공부를 했고, 그녀가 나에게 소개해준 노래, 노래방에서 불러준 노래 등을 전부 외워서 부를 수 있게 되었고, 그녀가 좋아하던 돈가스집은 내 단골집이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식, 가수, 영화 등 모두 기억이 생생하고, 그녀와 자주 걷던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녀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와 함께한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은 아직 내 핸드폰 앨범에서 숨 쉬고 있었고, 그녀의 전화번호는 지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잘살고 있을까? 아직 날 잊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녀의 SNS 속 사진과 상태 메시지는 매일같이 확인했었고, 이제 내 이상형은 통통한 여자가 되었다. 길에서 통통한 여자를 볼 때마다 혹시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확인하는 건 일상 속 흔한 일이 되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장소들을 지나칠 때마다 혹시나 그녀가 있지는 않을까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지나가게 되었고, 그녀도 내 SNS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확인할까 싶어 그녀만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말들을 적어두었다. 다시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그런 행동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었고, 얼마 전이 그녀의 생일이었었다.
 

지금도 그녀의 SNS 사진을 볼 때면 옆에 있는 그 남자는 누군지 괜히 질투하게 되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볼 때면 괜스레 나까지 행복해진다. 무언가 뜻이 있는 듯한 상태 메시지를 볼 때면 나를 향한 말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고, 아침에 눈을 뜰 때면 그녀에게 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7개월이 지났지만, 엊그제 헤어진 것처럼 그녀와의 추억들이 항상 새록새록 하다.
 

그리고 지금의 난 그녀의 생일을 기념하며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글로 옮겨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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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보다는 채찍을 더 감사히 받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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