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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건 알것
게시물ID : history_30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임스핀치
추천 : 2
조회수 : 643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1/11/14 19:07:49
우리나라의 일본이나 중국같은 무술, 무사 집단? 
이런 지식인 질문을 봤습니다. 그 아래 만족스런 답변이 단 한개도 없더라고요.

답변들이 홍길동이나 임꺽정, 심지어 일지매까지 거론되면서 그런개 문파니 뭐니 하던데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거기다 홍길동은 혼자서 활동했고 18년동안 안잡혀서 허균이 채용한 것 뿐이었죠.

질문 자체는 신선조와 비교될것이 화랑도 밖에 없는것 같다는 것과 중국과 일본처럼 문파같은것이 조선에 있었느냐는것이었는데

신선조가 하던일은 치안유지 및 수비로 특별한 것이 아니며 이런 무력집단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신선조가 하던일은 오히려 도병마사나 조선 말의 군사 기밀을 맡아보던 군국기무처, 군에 관한 행정을 담당하던 군무아문과 비슷했으며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잘생긴 낭도만을 뽑는 화랑과는 비교할 수 없죠.

특히 조선시대 왕실의 호위를 맡은 말을 탄 무관들로 이루어진 금군상청(또는 금군청. 영조때 용호영으로 이름이 바뀌었죠.)은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로 나뉘는는데 이중 내금위는 700명의 기사 가운데 100명씩으로 된 세 부대가 여기에 딸릴 정도로 큰 조직이었습니다.

용호영이란 것도 아마 별개로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헛갈리는데, 제가 알기로 임금의 가마 곁을 따라 모시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또 수도의 경비와 군사훈련을 맡은것으로 가장 유명한 훈련도감이 속한 오군영은 훈련도감 뿐 아니라 여러 진의 군무를 맡았다가 영조때는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았던 총융청, 수도를 지키던 금위영 등이 있습니다. 오군영은 그 외에도 수어청과 어영청도 속해있었지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이 세 기관을 삼군문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또 장용영은 정조때 중국의 십팔기에여섯가지 무예를 더해 무예이십사반을 만들어 익힌것으로 유명하죠.
얼마전에 무사 백동수 란 드라마 나오던데 빡치더군요.
그게 왜 사극인지? 대체 역사 드라마라고 하던가..
거기다 낭선나올땐 오올 했지만 '이게 낭선이란거다!' 하고 외칠때 손발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설마 무관들이 그걸 모를까. 

이 이외에도 백제의 왕 직속무력집단인 사자평, 신라의 공주를 호위하던 시위부 등 조금만 조사하면 알수있는 것들이 많이있습니다.

가르치는 기관으로는 성균관은 뭐 유명하니 다들 아실것이고
경당은 고구려 때 각 지방에 베푼 사학으로 평민층의 미혼 남성들에게 문무를 가르쳤고
태학은 고구려의 국립 교육 기관이었죠. 고려때 국자감의 한 분과의 이름도 태학이었습니다.
또 조선때는 향사례라고 각 마을마다 일년에 가을과 봄, 이렇게 두번씩 활쏘기대회를 했으며 이를 통해 뛰어난 사람들을 천거했었습니다.

답변에 일본 인자와 같은 백영단,흑영단같은게 있다는데 이건 뻥같고요.. 오히려 도화서 사람들이 스파이일을 했죠. 애초에 일본에 인자는 영화에나오는 까리한애들이 아니라 천한직종이었고 암살같은것도 창부에게 정력제와 돈을 쥐어주어 복상사를 유도한다던가 용병 비스무리 한 거라던가 어찌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랄까. 이건 그냥 겸이지만 의외로 포도청이 뭔지 모른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단지 탐관오리의 관청이라고만 생각한다던가 . 물론 오유인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포도청은 범죄자를 다스리던 관아였습니다.
비슷하게 임금의 명령을 받아 죄인을 다스리던 관아는 의금부입니다.

고려때 여섯개의 중앙관청과 조선때 여석새의 중앙관청 모두 육조 라고 했었는데 고려 때는 전조, 의조, 민조, 병조, 형조, 공조 였고 조선때는 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 였습니다.
병조는 군사관련 일,형조는 법률, 소송, 형벌, 노예 관련의 일, 공조는 산림, 수리, 교통, 건축, 야금, 질그릇과 같은 공예품 제작, 도량형 관리따위의 일을 맡았으며 이조는 벼슬아치를 임명하고 공훈, 봉작등의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조는 고려때 이부, 상서이부, 선관, 전리사로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호구, 조세, 돈과 같은 경제에 대한 일을 맡았던 호조도 고려때 상서호부, 판도사, 호부 등으로 바뀌었었습니다.

또 참고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들중 하나가 부군당이라고 각 관아에서 신령을 모시는 집이 있다는 것이죠.

또 겸사겸사 무술도 적을께요;;
태껸은 송덕기옹께서 말슴하신대로 보통 깡패나 한량들이 배우는 실전무술이었습니다.
원래 수박을 국가에서 가르쳤지만 중국의 십팔기중 권법이 들어오며 수박은 민간중심으로 쓰이게되고 그것에 발기술이 추가되어 태껸이 된거죠.
중국이나 일본의 건 조선에서 사람들끼리 칼같은거 들고 수련한다하면 역적치부해서 적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빨리 통일이 되야 더 자세히 알 수 잇을텐데.
..얼마전에 낭송대회에 제가 나갔었는데 주제가 통일에 관한 시였습니다. 그때 통일부 장관도 오고 통일 교육 동영상도 틀어줬는데 이것 뭐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빡치던데요.. 대회 내내 열받아서 빨리 나가고 싶었습니다. 통일부 장관 맙소사 가망이 없어. 아버지께서 그 세대때는 전쟁을 겪어 북한에 대해 않좋을 생각을 가지고있을수 있으니 이해하라 하셨지만 , 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통일부 장관으로 시켜야 하는것 아닌가요?

글이 딴길로 샜내요. 

제가 잘못 알고 잇는거나 새로이 가르쳐줄게 있으신분 댓글로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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