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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뒤 돌아본다.
게시물ID : readers_21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군바리230
추천 : 4
조회수 : 3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07 21: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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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뒤 돌아본다
  
홑이불을 파고드는 새벽녘 한기에 놀라 잠에서 깬다. 여름이 끝나가나 싶었더니 어느덧 가을이 되었나보다. 반팔티를 꺼내려다 내려놓고 긴팔티를 찾으며 이리도 시간에 무심했었나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제각기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또한 톱니의 한축이라며 삐걱대며 열심히 움직였다. 이런 나에게 계절의 변화는 그저 살갗에 닿는 온도일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리도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예전 서로 빈지갑을 뒤지고 빈병을 팔아 얻은 소주 한 병으로 잔디밭에 드러누워 얼굴이 붉게 밝혔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생의 소신이라며 정원도 채 차지 않은 국문학과의 인문학부 통합을 반대하며 대자보도 여럿 써 붙이기도 했다. 그런 놈이 대단하다며 치켜세운 선배들과 후배들의 떠밀림에 학과 회장이란 감투도 써보고, 나 잘난 맛에 대낮에 술병을 굴리며 시간을 보냈다. 후배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주머니 속 동전만큼 작은 것으로도 행복하며 웃었다. 그때만 해도 견고히 움직이는 시계의 무브먼트 속에 내가 설자리는 없어 보였다.
 
허나 장남의 명함은 나에게 단 하나의 길만을 비추었고 대학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허망하게도 자신만을 힘들게 했다. 때 묻은 습작노트와 구겨진 자존심은 차곡차곡 종이 상자에 봉인되어 장롱 위로 향했다. 그리곤 남들처럼 내 자신에 기름칠을 하며 세상의 변두리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았다.
 
30살이 어느덧 코앞이다. 내 결혼 자금이라며 만들었던 통장은 그 잔고만큼이나 가벼워 열어보기가 겁이 나고, 함께 잔디밭을 뒹굴던 친구들의 청첩장이 하나 둘씩 스팸사서함에 쌓여있지만 그 이름 속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쉽다. 이렇게 아등바등 했지만 보잘 것 없는 내 위치가 아쉬운게 아니다. 가을이 되기 전 피었을 해바라기 한 송이 보지 못하고, 여름이 되기 전 피었을 민들레 한 송이 보지 못한 내 자신이 아쉽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여동생들과 벚꽃 한번 보러가지 못한 내 자신이 아쉽다. 어머니는 벌써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는 나이가 되셨고, 그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체 앞만 보고 있던 내 자신이 아쉽다.
 
어머니께 가을 국화 한아름 사들고 얼굴이라도 뵈어야겠다. 동생들에게 고생했다며 카톡이라도 남겨야겠다. 졸업사진첩을 뒤져 가물거리는 녀석들에게 결혼 축하한다고 전화라도 해야겠다. 뒤돌아보면 아쉬움 가득한 삶이었지만 앞날을 후회 할 순 없지 않냐며 자조 섞인 담배 연기를 뿜어본다. 겨우 15년의 가을이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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