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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착한 사람들이야"
게시물ID : baby_216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억개의별
추천 : 15
조회수 : 46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9/08 14:14:10
 
남자아이는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41개월,
다행히 어린이집 가는 걸 아주 즐거워 합니다.

하지만 사교적이고 오지랖 넓은 것과는 거리가 먼 엄마, 아빠를 닮아서인지
수줍음도 많고, 적응하는데 시간도 좀 걸리는 편이고, 낯가림도 꽤 있죠.
또 뭔가 낯선 상황이나 위협적인 상황이면 잘 대처를 못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어린이집에서 한 살 어린 동생이 장난으로 밀거나 깨물거나 하면,
자기가 힘이 훨씬 쎈데도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다가 울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거겠죠.
다른 사람도 아닌 제 유전자를 받은 탓이니 어쩌겠나 하면서
조금 더 크면 제가 그렇듯 이렇게도 불편한 사회생활이지만,
대강 잘 하는 척 흉내내면서 살아가겠거니 하면서 지켜보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맘이란 건 항상 조바심 덩어리,
아빠된 마음은 그러고도 마음이 안놓여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한 서너달 전의 일인 것 같은데
그날도 퇴근해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통해 종종 듣던 아이의 근황을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던 중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재혁이 아야 하게 하는 사람 없어요?"
"없어"
"요즘은 정준이 동생이 재혁이 깨물고 그런 일 없어?"
"없어"
"재민이 친구가 재혁이 툭툭 때리고 그러지는 않았나요?"
"아니"

지금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훌륭하신 분들이라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만, 
어린이집에서 일부 선생님들 이야기가 자꾸 나오던 때라 노파심에 그도 한 번 물어봅니다.

"선생님이 재혁이 아야 하게 하는 일은 없나요?"
"없어"

단답형으로 대답을 이어가던 아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가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는지 눈치를 챘다는건지
마지막 '없어'라는 대답 후에 잠깐 멈추었다가 곧이어 말을 하더군요.

"모두 다 착한 사람들이야"

레고블럭을 계속 하면서 무심한 듯이 툭 던지듯 하는 아이의 대답에서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 세살된 내 아들이 이런 생각과 말을 할 수 있다는데 놀랐고,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40개월도 안된 아이에게서 이미 내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배운 인생의 지혜 몇 가지는 꼭 전달해줘야겠다,
그러면 행복하게 사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거야 라는 생각으로 그런 내용들을 정리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조금은 다른 생각도 하나 머릿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
이미 아이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또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아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간과하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해야겠다는 점입니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만 제가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아이와 함께 제대로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울수록 정말 작은 하나의 독립된 우주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느끼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와 가장 가깝고 가장 많이 닮았지만,
분명히 나와는 다른 인격체이고 그에 걸맞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아이가 또 어떤 대화로 즐겁고 작은 충격을 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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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린이집 다니던 몇 달 전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올해부터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죠.
몇 달 지났다고 또 기억이 새롭네요.
 
 
출처 아이와 함께한 어느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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