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조선의 국모이던 국쌍이던
상관없이 단 한가지 그녀의 죽음이 가진 의의를 되새겨 보면
"조선을 병탄하고자 사활을 건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라는 어찌보년 단순한 진리를 한반도 민중에게 각인시켜 준 것입니다.
조선의 개항기 조선을 둘러싼 수많은 열강중에
조선을 상대로 교섭한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청나라,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등과
전혀다른 국가는 단 하나 일본입니다.
청나라는 열강의 침탈 와중에 과거 중국중심의 외번 내번의
체제를 중심으로 국가를 보전하기에 바빴고
러시아는 영국,미국이 장악안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만주 상권을 중심으로 한반도 안정과 부수적인 이권을 노렸을 뿐이고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등은 이미 중국 상권에 올인한 상황이죠
단 하나 일본만
근대화와 제국주의 편입을 위해 식민지가 다급했던 상황이고
고무라 외상의 말 처럼 한반도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진헹한 순간 부터
일본이 국가의 존망과 연계해 사활을 걸고 식민지화에 매진한 유일한 대상이 한반도 입니다
명성황후는 일본이 1876년 개항 이후 흑룡회를 비롯해
정치적 공식노선 , 상인회, 민간인 등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조선의 관료를 포섭하고 내각을 친일 내각화 시켜 식민지화에
용이하도록 조성한 것에 대한 큰 장애 요소이자 방해물이었기에 제거한 것이죠
이는 갑오개혁에서 보듯 총리를 비롯한 내각 다수를 일본이 포섭하더라도
중앙집권체제인 조선의 특성상 왕권의 의지로 일본의 의도가 방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을 명성황후가 했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인 러시아의 간섭도
조선의 왕권의 의지만으로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방해물인 명성황후를 제거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고종황제의 의도치 않은 돌발 행동
아관파천으로 이어졌고
당시 세계관에서 초유의 사태
즉 한 국가의 왕실과 최고 통수권자가
일국의 공사관에 피신하게 되는 상황
아관파천의 정국에서
러시아는 기존에 고수한 한반도 정책
만주상권 보호 및 중국 상권 진출에 대한 안정화 방안으로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원론적인 대안을 일본에 제시하였을 뿐입니다.
"니시 - 고무라 협정" = 한반도 내에서 러시아 일본 양국 모두 철수하며 중립을 지킨다.
명성황후의 죽음으로
한반도 침탈의 야욕을 지닌 국가는 청나라도 러시아도 아닌
오직 단 하나 바로 일본임을 조선은 인식하게 되었고
조선에 잔재한 친일 내각을 숙청하며
유일한 보루인 왕권을 중심으로 국가의 개혁에 매진하게 됩니다
"광무개혁"
대한제국이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죠
명성황후의 시해는 한반도 역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과거 김옥균이 그러했던 것 처럼 일본을 한반도 개혁의
스승으로 본 시각을 근본 부터 고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배제된 한반도에서 근대화가 필요하고
또한 절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대한제국은 단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간섭이 없어진
단 7년간 의회계설, 사법제도 창설, 초등교육 실시. 우체국, 경철제도 창성
근대회사 창립, 은행 설립 다양한 개혁을 이뤘죠
문제는 대한제국의 이러한 근대화 속도에 초조해 한
일본이 선제공격으로 러일전쟁을 개전하며
러시아가 패배하고
동북아시아에서 더이상 일본을 견제할 주변국이 사라진 시점에
일본은 재빠르게 한반도를 병탄하며
식민지화를 이뤘습니다.
명성황후의 시해의 의의를 말하자면
그녀가 국쌍이던 국모던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한반도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협이
바로 일본임을 20세기 한반도 역사에서 만천하에 알렸고
지금 우리 공화국 체제 대한민국의 전신인
대한제국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