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가급적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 짧은 글쓰기(5)
게시물ID : readers_21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2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9/10 01:10:00
* 네 살짜리 아이가 어둠을 무서워 한다.
그 아이의 두려움에 관해 써보라.
아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당신의 말과 행동도 이야기에 넣어라.


나는 한밤 중에 옆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흐느끼는 소리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반복되는.
그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촌형의 아들인 종민이를 데리고 온 후 매일 밤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촌형은 지금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경기도 북부의 어느 야산,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작고 여린 아이를 품에 안았다.
사촌형은 잠시 한국을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는 않았지만, 그의 현실감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간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분에 걸맞지 않은 어떤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일테지.
사촌형 내외는 자기 아들을 나에게 맡기고 가면서 언제 다시 만날 지 기약할 수 없는 피붙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지금 가지 않으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을 뿐인 듯 했다.

낡은 소형차의 후미등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곤히 잠든 아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게 했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온 지 벌써 세 달이 되어간다.
바꿔 말하면 세 달 동안 매일같이 훌쩍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을 바로 옆에서 재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아이가 아니라 그 누구도 내 곁에서 재우고 싶지 않았다.
가끔 나 스스로도 정말 매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거의 100일이 다 되어가는 동안 꼬맹이의 훌쩍거림에 시달린 나는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편히 자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종민이 자고 있는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천정에 달린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열린 문 틈새로 기어든 거실등의 불빛이 싸구려 스폰지 매트와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이불 뭉치를 비췄다.
흐느끼는 소리가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마치 딸국질을 하는 듯한 끅끅거리는 소리가 이불 속에서 맴돌았다.

"자니...?"

대답은 없었고, 끅끅거리는 소리 역시 그대로였다. 그러나 끅끅거리는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매트 옆으로 가 앉았다. 아마 내가 종민이의 부모였다면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불을 뒤집어 쓴 아이 옆에 앉아서 말을 거는 게 고작이었다.

"종민이 우니?"

끅끅거리는 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가끔 콧물을 삼키는 듯한 소리만 들렸다.

"종민이 왜 울어...? 귀신 나왔어?"

그러나 종민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이불을 살며시 들춰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종민은 이제 울지 않고 있었다.

나는 네 살짜리 아이가 밤마다 흐느끼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도 아니거니와, 아이였을 때는 울어본 적도 별로 없다.
종민이 왜 우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직접 듣는 수 밖에 없었다.

"종민아 왜 그래?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아이는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정말로 부모가 보고 싶은 걸까? 헤어지던 순간을 회상해 보면 사촌형 내외가 아이에게 아주 살가운 부모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갈까? 이제 안 울고 잘 거야?"

차마 옆에 와서 자겠느냐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제 돌아가도 되냐는 말에 '으...'하는 웅얼거림이 되돌아 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석달 동안이나 밤마다 훌쩍이지는 않을 것이다.

"얘기해봐, 삼촌이 들어줄게."

그제서야 종민은 베개에 파묻었던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짓고는 입술만 달싹거렸다. 아마 한 마디만 꺼내면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아이가 다시 울면 늦은 시간에 이웃에 민폐일 거라는 알량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종민이 입을 열었다.

"삼촌도 가요?"

나는 아이의 질문이 뜻하는 바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나와, 아니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냐, 삼촌은 아무 데도 안 가. 왜 삼촌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또 한 동안 종민은 말이 없었다. 나는 아이가 바라볼 내 표정이 어떨지 생각해봤다. 평상시에도 무표정하기로 소문난 나다.

"자고 일어나니까 아빠랑 엄마가 없었어요..."

아이는 자고 일어나면 내가 사라질까 두려워한 것 같았다.
종민을 처음 데리고 온 다음 날 아침에 아이가 대성통곡했던 것이 기억났다.

"자고 일어나면 삼촌이 없을까봐 걱정돼?"
"응... 근데 밤이 되면 자야 돼요..."

아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종민은 흐느끼기 시작하며 계속 말했다.

"방에 불을 끄면... 어두우면... 자야 되는데... 아침에 삼촌이 없을까봐..."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 내가 걱정한 것만큼 엉엉 울지는 않았다.
소리죽여 우는 종민의 모습에서 측은함을 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희한하다고 느낄 정도로.

하여튼 아이는 밤과 어둠을 이별의 전조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 때문에 밤마다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울음을 삼켰던 것이다.

내가 종민의 생각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어둠과 이별을 연관지어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혼자가 된다는 사실에 눈물짓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막연한 불안감을 이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와는 별개로 아이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피붙이로서의 정을 느끼는 것도,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누가 됐든 두려움에 떨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을 곱씹으며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종민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어머니들이 흔히 자장가를 부를 때 하듯 토닥였다. 그리고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온화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불안에 떠는 어린 아이를 달래려면 어떤 얘기를 해줘야만 할까? 상대는 아이다. 직장동료에게 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금 해야만 하는 것은 아이가 또 다시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거 때문에 맨날 울었구나? 종민아, 삼촌 얘기 잘 들어봐. 우리 종민이가 삼촌 집에 온 지 얼마나 됐지?"

"세 밤 넘었어요..."

"그치? 엄청 많이 지났지? 근데 한 번이라도 삼촌이 아침에 없었던 적 있어?"

"...아니요..."

"그럼 앞으로도 쭉 삼촌은 종민이랑 같이 있지 않을까?"

아이는 말이 없었다.
그런 말로는 부족했던 걸까?
아이의 가슴을 토닥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삼촌은 여기가 집이라서 다른 데 아무 데도 안 가. 나중에 종민이 엄마랑 아빠 오면 여기로 와서 종민이 만나야 되니까, 삼촌은 어디 안 갈거야."

아직도 아이는 말이 없다.
하지만 훌쩍거림은 조금 잦아든 듯 했다.

"그리고 삼촌 없으면 종민이 밥은 누가 주고 아이스크림은 누가 사줘? 삼촌 없으면 종민이 배고파서 어떻게 해? 삼촌은 종민이 배고픈 거 싫어. 그러니까 종민이 맛있는 거 사주려면 어디 못 가지."

훌쩍거림이 그쳤다.

아이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사촌형에게서 잠든 아이를 건네 받았을 때처럼 안아주면 불안감이 사라질 거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지껏 그 누구도 내 경계선 안에 받아들여본 적 없는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아이의 옆에 몸을 뉘었다.
팔베개를 해주지도, 그렇다고 안아주지도 못하는 나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은 아이의 곁을 지켜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한쪽 팔을 괴고, 조용히 발끝을 쳐다보는 종민을 내려다 봤다.

"오늘은 삼촌도 여기서 잘 거야. 그리고-"
 
나는 말을 삼켰다.
그래도 될까?
사실 내가 지켜온 많은 것들과는 다른 방향이겠지만... 그렇게 행동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삼촌 방에서 같이 자자. 도망가는지 안 도망가는지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응..."

"그럼 이제 자자. 삼촌은 또 내일 회사에 가서 돈 많이 벌어와야돼. 그래야 종민이랑 맛있는 거 많이 먹지."

나는 팔을 펴고 종민의 옆에 누웠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아이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베개와 이불이 없어 불편했지만, 방을 나가는 순간 아이가 다시 깨어날까 싶어 그만 두었다.
눈을 감으니 쌔근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밀려드는 졸음에 항복하기 직전, 앞으로도 많은 것이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
한 번에 못 쓰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나누어 썼습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출처 글쓰기 좋은 질문 642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