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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시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역사와 유사역사의 길라잡이)
게시물ID : history_217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경천당
추천 : 5
조회수 : 66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25 12: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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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환빠, 일빠 등 유사역사학과 거리두기
 엄청난 분량과 치밀한 논리의 연명상소문이 올라왔죠. 그리고 바보님의 토론제의가 무산되면서 자연스럽게 유사역사학은 퇴출되었습니다. 참으로 잘 된 일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됨으로써 역사게시판에서는 더 좋은 토론, 다양한 역사 단편과 의견개진을 통해 역게다운 발전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역사학은 음지에서 마치 유사역사학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뭔가 떡밥을 던지겠지요. 떡밥 자체로 본다면 사실, 팩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팩트 혹은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것을 있는 것이라고 할 뿐이죠. 예를 들어 여기에 사람의 시체와 살인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것은 여기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수많은 죽음의 종류 중에 하나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띄느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독살이다.(=배후가 있다.) 반정의 시작이다."같은 해석말입니다. 유사역사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러한 사실과 해석(주장)을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떡밥에 어떻게 낚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 관건일 겁니다. 정답은 사실과 해석(주장)을 명백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료에 대해서 역사학의 엄정한 해석에 기대는 것입니다.  
 아래 게시물인 "칠지도"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백제의 것이고, 일본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실을 주장으로 작위적으로 연결하면 '백제가 일본을 지배(제후국이라 칭)했다'뭐 이런 식의 유사역사가 탄생하는 겁니다. 문명의 전파 혹은 문화의 전파 , 서로 간의 영향력 혹은 서로 간의 외교관계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음에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조선만 봐도 중국측의 기록에서는 끊임없이 제후국의 칭호(왕)으로 격하시키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해도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인가?(중국이 조선을 지배했는가?)라는 물음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2. 내가 쓰는 신화시대란 말의 뜻
유사역사 신봉자들이 가장 많이 활약을 하는 역사 시대는 고대입니다. 대륙백제설, 고구려구만리설(?), 대륙신라설(?), 화북지방 한사군설(?), 환국연방설(?), 고조선-홍산문화설등의 떡밥이 대표적입니다. 주로 삼국시대에 집중됩니다. 이 시기는 선역사시대입니다.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기이죠. 왜냐하면 이 시기에 작성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하나도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의 정통적인 역사서로 인정받는 "삼국사기"조차도 고려시대의 저작물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지으면서 참고했다고 하는 옛날의 기록문헌이 우리에게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즉 고려시대의 관점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기록물입니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상상력에 의존해야하는 해석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가설)이 고고학적 발굴과 사료 간의 교차검증 등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습니다.
 저는 국문학전공을 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선역사시대(선사시대)라는 말보다는 신화시대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신화시대란 흔히 역사시대와 구분되는 말로 쓰입니다. 역사시대 이전을 선역사시대 혹은 신화시대라고 하지요. 신화시대라는 말은 결국 모든 역사적 기록들이 "신화"라는 형식으로 쓰여졌다.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이러한 신화시대의 각종 구전 형식들 역시 역사학의 사료가 됩니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선택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구비전승자료들이 바로 사료가 되지는 않습니다. 면밀한 역사적 검토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역사로 인정 받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조선(=단군신화)이지요.

3. 고대와 관련해 환빠가 되지 않는 방법.
 모든 신화는 사실이 아닙니다. 상징으로 파악하셔야 합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북쪽 어느 지역에서 이동해 내려왔다는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사실 말타고 대규모 부족을 이끌고 바다 건너왔을 리는 없잖아요 지도상으로 파악해보면 한반도 북부지역 모두(만주, 몽골, 연해주, 퉁구스지역 전체)가 됩니다만 이것을 경로로 특정하고 고조선(혹은 환국)의 강역권으로 파악하는 순간 유사역사가 됩니다. 유사역사까지 가지 않는 정당한 추론은 단군신화에서 천손계는 "북방 유목부족의 일파"정도일 겁니다.

 여기서 유사역사의 허구성이 나타납니다. 환국(혹은 고조선 혹은 삼국)강역을 완전히 근대적 국경선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만약 환족(천손계)가 북방 유목부족의 일파라면 국가(혹은 민족)의 개념(강역권)을 국경선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유목민의 관점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농경민족의 국토 개념과 유목민족의 국토 개념의 충돌 말입니다.
 유목에서 땅의 개념(국토, 국경선, 강역권)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어디든 풀이 있고 물이 있으면서 경쟁부족을 격퇴하면 거기가 자기 땅입니다. 그러나 풀이 없다면 그 곳을 버리고 가버립니다. 풀을 찾아서요. 우리가 아는 민족, 부족의 개념에서 강역권을 접근하시면 안되는 명백한 이유입니다.
 유물 역시 마찬가지죠. 유목민들은 유목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교역에 종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떠한 유물이 발굴되었다고 한들 농경적으로 해석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우리집에 1센트 동전이 10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미국땅인가의 하는 점입니다.(기본적으로 "비파형 청동기, 고인돌 유적=고조선(환국) 강역권인가?"의 문제)
 유사역사의 가장 핵심적인 논리적 모순은 바로 이런 개념의 충돌에서 발생합니다.
 
아......이거 결론을 내긴 해야하는데......어떻게 지을지....ㅡ_ㅜ  

5. 결론은 그래서 더더욱 고대사에 관하여서는 엄정한 역사학적인 해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아마도 몇몇 논문, 전문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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