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공중파에서 모습을 드러낸지 벌써 10년이 더 되고 500회가 지난 이 시점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한도전이 10년동안 예능판에서 호령하는 동안에 폐지된 예능프로그램만 수십개가 넘을 것입니다.
그만큼 무한도전이 한국 예능에서 갖는 상징성이라던가 지위는 말할 수 없이 크고 높습니다.
그러한 전무후무한 대한민국의 대표 프로그램에서 심지어 김태호 피디보다도 오랫동안 무한도전을 지켜온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국민MC 유재석입니다.
무한도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가 무한도전에 기여한 바는 실로 헤아릴수 없을 지경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재석이란 MC가 있기까지 그가 단지 웃기는 재주뿐만 아니라 지금도 받들어지는 부분인 포용력과 인자함만이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본인이 대중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는 그러한 잔인한 현실속에서 단연 유재석은 대국민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그 동안 매우 오랫동안 롱런해왔습니다.
이러한 롱런의 비결에 단지 포용력과 배려, 인자함만이 그를 뒷받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무한도전 이전의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의 장악력과 통솔력을 확인해보도록 하면,
과거 2004년도쯤으로 기억합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큰 반향과 반응을 일으켰던 김제동과 더불어 유재석은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에서 투엠씨를 맡게 됩니다.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유재석과 김제동은 매주 나오는 고정이었고 그 외에 3~4명정도 게스트가 참여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이러한 체제안에서 유재석은 게스트에게는 물론 포용력과 배려를 가하며 그들이 녹화하는 동안 최대한의 능력치를 발휘하도록 분위기를 마련하였지만 김제동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행권이 달린 사안에 대해서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주도권경쟁을 벌입니다.
가령 쟁반 노래방 특성상 찬스 카드나 찬스 아이템을 뽑는 과정에서 본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김제동과 늘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였죠.
치열한 사투끝에 결국은 유재석이 진행에 대한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었고 이는 유재석의 진행에 따라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내는 알고리즘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죠.
이 과정에서 진행에 대한 주도권을 권력이라 표현하기는 그렇습니다만 "무릇 권력이란 아비와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재석의 진행에 대한 주도권 획득은 아마 제작진 입장에서도 시청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게,
결국 이는 프로그램의 흐름을 원활히 이끄는 역할을 마련했으며 이로 인해 김제동의 롤도 확실해졌다고 봅니다. 당시 유재석의 역할분담으로 인하여 김제동과의 쓸데없는 진행 마찰은 줄어들었고 또한 유재석이 진행하는 사이 김제동은 게스트들의 토크에 집중하며 프로그램의 질적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김제동은 떠오르는 방송인으로 프로그램 안팎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찰나에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유재석에게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지금도 호형호제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이 중에 하나로 발전한 것을 고려해보면 유재석이란 인물은 인간관계에서도 상당한 매력을 발휘했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재석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의외로 파벌적인 면을 보유한 인물입니다.
예능에서 유라인, 강라인, 규라인, 구라인등 어떠한 절대적이고 대체불변한 인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경규와 김구라를 제외하고는 유재석과 강호동은 대놓고 라인 선전을 예능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죠.
특히 게스트들이 유재석과 같이 하고 싶어하는 멘트를 던지면 그는 늘 능구렁이 같이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본인이 먼저 흥미나 매력을 느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만)
그가 의외로 파벌적인 면을 보였던게 과거 무한도전의 시작한 때를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에서 김태호 피디의 합류로 야외에서 스튜디오로 넘어 오고 난 다음에 일입니다.
그 때 무한도전의 멤버로는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노홍철, 정형돈이었는데 당시 유재석은 제법 정형돈의 멘트에는 차갑게 대했었고 하하의 멘트에는 따뜻하게 응했습니다.
당시 정형돈은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러한 프레임을 씌운 사람이 유재석과 하하였습니다. 특히 하하는 상상플러스에서 이휘재가 정형돈에게 했던 것마냥 다른 사람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멘트를 잘라먹으며 행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유재석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믿고 할 수 있었습니다.
유재석이 그러한 행동에 동조했다는 것이 아니라 유재석이 정형돈에 비해 하하에 대한 예능감을 믿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물론 정형돈은 당시에 멘트에도 안정감을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녹화에 임했기에 유재석은 그를 다시 예능적 재세동기를 부여해 예능감을 높이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하하를 통해 정형돈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유재석은 과거 X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하하와 좋은 호흡을 보였고 모든 상황극, 예능적 상황에서 적어도 평타는 쳤던 하하였으며 그와의 과거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던 상황에서 정형돈보다는 하하에게 저울추를 많이 기울였습니다.
즉 유재석은 프로그램 초반 누군가를 따돌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면박이나 약간의 수치심을 주는 측면을 활용함으로써 프로그램에서의 입지와 우위를 다지고 프로그램에서 재미를 뽑아내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형돈 뿐 아니라 나중에 합류한 길도 이에 해당하는데 길의 입냄새라든지 놀러와에서 길의 캐릭터였던 이간길을 초반에 활용함으로써 본인의 입지도 다지고 프로그램의 재미도 자아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영입한 양세형도 지금은 본인의 예능감으로 충분히 프로그램에 기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만약 과거 정형돈이나 길과 같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면 유재석은 아마도 과거의 본인의 방식을 되풀이 하여 프로그램을 풀어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봅니다.
위 얘기에 덧붙여서 이제 유재석과 박명수 콤비는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를 마지막으로 마침표 찍을 것입니다.
최근에 타로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유재석에게 있어 박명수는 더이상 과거의 정형돈에게 면박주던 하하처럼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타로점에서 드러나듯이 유재석은 본업은 등안시하고 EDM에 빠져있는 박명수에 대해 불편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었고 그의 예능에서의 에너지 레벨을 더 이상 신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무한도전의 2인자로는 박명수가 몇년을 군림하였지만 이제는 그 포커스가 정준하나 다른 멤버에게
넘어간 실정입니다.
또한 해피투게더에서도 유재석은 예능적 기대감을 박명수보다는 전현무나 조세호에게 더 기대하고 있고 물론 농담이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박명수를 출연료루팡이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년같으면 원래 슈가맨의 유희열 자리도 박명수나 그 동안 유재석과 숱한 케미를 이뤘던 인물이 섭외가 되었겠지만 유재석은 제2의 해피투게더로 만들지 않고 음악적 조예가 깊으면서도 예능감이 있고 유재석과 잠시나마 훌륭한 케미를 이뤄냈던 유희열을 택했는데 그의 예능적 안목은 정말 뛰어남을 증명해냈습니다.
이러한 감각은 이경규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나를 돌아봐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경규도 박명수는 무한도전이 그의 마지막 예능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현재 최고의 MC인 유재석씨 또한 이러한 이경규씨의 생각과 일치했다는 점에서 역시 최고끼리는 통하는 게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은 유재석이란 인물이 이렇게 예능계에서 롱런할 수 있는 원동력에는 물론 포용력과 배려, 인자함이 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이면에 보이지 않는 본인이 행하는 알력(진행에 대한 주도권)과 비난받지는 않을 정도의 파벌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거기에 이경규가 갖는 예능적인 감각까지 보유했으니 유재석은 애초에 무한도전 초기 슬로건이었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가 아닌 약육강식의 예능체제에서 가장 최상위 포식자같은 존재입니다.
더불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김구라의 독한 멘트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행동을 몸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보통의 대중들이 유재석에게 갖는 배려와 인자함에 대한 환상과는 달리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완전한 절대자를 대하는 느낌이 들며 생각에 있어 온도차를 더욱더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