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은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인가. 지난 3월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은 "5년 안에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과학자들도 가까운 장래에 노벨과학상을 품겠다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정말로 기대를 가져도 좋은 것일까.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보면 단시일 내 수상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1901∼2011년 노벨과학상 수상 연구주제 및 추세 등을 분석한 한국연구재단은 28일 우리나라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15∼20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적어도 10년 안에 우리나라에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노벨상을 받기 5∼10년 전 관련 분야에서 권위있는 다른 과학상을 받았다. 매년 물리·화학·의학 등 6개 분야에 걸쳐 시상하는
이스라엘 울프상과 기초·임상 등 의학 연구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미국의 래스커상이 대표적이다.
1978년 제정된 울프상 과학분야 수상자 132명을 분석한 결과 30%인 39명은 평균 5년 후 노벨상을 받았다. 래스커상(1946년 제정)을 받은 287명 가운데 27.8%인 80명도 평균 5년 후 노벨상을 수상했다. 200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브람 헤르시코의 경우 2000년 래스커상, 2001년 울프상을 각각 받았다.
톰슨·로이터사가 논문 인용빈도 상위 0.1% 이내인 우수 논문 저술자에게 주는 '톰슨·로이터 인용상' 수상자와
노벨 재단 주최의 '노벨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과학자들도 10년 이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경우 2001년, 2005년 노벨심포지엄에 참가하고 2008년 톰슨·로이터 인용상을 받았다. 또 1999∼2011년 13회의 노벨상 가운데 9회가 노벨 심포지엄 참가자 중에서 나왔다.
이처럼 이들 상을 받거나 노벨 심포지엄에 참가한 과학자가 이후 노벨상을 받은 확률은 무려 90%에 달했다. 또 톰슨·로이터 인용상과 노벨 심포지엄에서 집중 조명된 연구 주제는 대부분 수년 뒤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울프상, 래스커상 등을 받은 한국 과학자는 단 한명도 없다.
연구재단은 이 같은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0년 내에 한국 과학자의 노벨과학상 수상 가능성을 매우 희박한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고려대 전승준 교수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정부가 먼 미래를 바라보고 다양한 분야에 지원해야 한다"면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환경과 단기적 실패를 용인해주는 연구지원 시스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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