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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일곱, 꿈을 접는 게임기획자가 마지막으로 징징대고 갑니다.
게시물ID : gametalk_218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표고양이
추천 : 21
조회수 : 1072회
댓글수 : 69개
등록시간 : 2014/10/29 19:16:31
"하긴, 요즘 이 바닥 꼬라지 보면... 좋은 선택일지도. ㅎㅎ"
 
한참 동안 자판 모양의 인디케이터를 떠올리던 메신저는
걸린 시간에 비해 한참이나 짧은 문장을 뱉어냈다.
5년 전, 처음 이 업계에 '입사 지원'을 하며 처음 본 그는 
내 선택에 대해 그렇게, 메마른 웃음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
 
2010년 1월. 나는 두 번째로 '수습 사원'이 되었다.

아니, 2004년의 첫 번째 '수습 사원'은
엄밀히 말해서 '교육 기간'이었고
한달 후, 교육 종료와 함께 정식 임용되었기에
실질적으로 나는 사회에 나온 지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수습 사원'이 되었던 거다.
 
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2009년의 나는 영업관리직이었다. 영업관리팀 대리.
점차로 전산화가 진행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일들이 수기로 진행되는 것이 
더 당연하던 경직된 조직이었기에, 낭비되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 몇 달. 무의미한 반복작업에 진이 빠지자
꾸역꾸역 모든 일들을 엑셀로 서식화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왜 전임자들이 엑셀 서식을
만들어두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일간,주간,월간 결과치만을 수정하며 숫자 몇 개만
쳐넣으면 내 업무의 절반이 완료되었다.
 
난 도대체 왜 여기 앉아 있을까?
하루종일 내가 하는 생각은 그거였다.
 
아무나, 솔직히 숫자만 제대로 가르친
원숭이를 데려다 앉혀 놔도
내 업무의 절반은 해 낼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제대로 마모시켜 가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2010년 1월. 나는 게임 기획자가 되었다. 
아니, '수습'게임 기획자.
 
연봉은 진짜 딱 절반. 
그리고 점심 식대 자기 부담.
아니, 진짜로.
연봉이 절반이 되니 점심 식대마저 부담되더라구.
 
...
 
근데, 재미있었다.
 
자려고 누워 있다가, 좋은, 아니 좋을 거 같은
생각이 떠올라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 그날따라 분위기를 타 버려서
문서가 술술 막 써 지는 거라,
'일이 잘 풀리는 게 기분좋아서' 
이걸 도중에 그만두기 싫어서 야근을 했다.
 
작업자들이 '괜찮을 거 같은데요? 해 보죠.' 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프로그래머가 '그때 그거 붙여서
빌드 올렸으니 확인해보세요' 라는 말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 아이디어가 구현되어서 
돌아가고 있는 게 기분 좋았다.
 
내가 생각한 게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걸
내가 또 주물럭주물럭 건드려 볼 수 있고,
또 더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핫식스를 들이켜가며 고민해보고.
 
재미있었다.
 
...
 
첫 번째 회사에서는 FPS를 만들었다.

투자자의 성화로 (모든 기획자들이 컨텐츠 로드맵도
안 짜놓은 상태라고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오픈을 했다가 
금세 컨텐츠 고갈 (그리고 다른 게임 내/외부의 문제)로
홀라당 말아먹었고,

절치부심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 게임을 판매했지만
판매금은 모두 투자자가 회수해갔다.
두 곳의 로컬 라이브 서비스를 하면서도 투자 여력은 커녕
생존을 계속 걱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투자자의 결정이 있자마자 몇 달도 안 되어 회사는, 그리고
라이브로 서비스하고 있던 게임조차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다.
브라질에서 우리 게임을 서비스하던 퍼블리셔는
과연 유저들에게 뭐라고 공지했을까?
 
두 번째 회사는 나름 대기업이었다. ...게임회사가 아닌 대기업. 
장난감에 들어갈, 혹은 장난감에 같이 붙여 팔거나
장난감 판매를 견인할 '어플'을 만들라고 했다. 게임이 아니라.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긴 한데,
업무시간의 반을 들여 지시사항- 어플을 기획했고
나머지 절반의 업무시간에 나는 '게임'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 기획서는 포트폴리오가 되어
내 이력서, 입사지원서에 첨부되었고, 그렇게 나는
세 번째 회사로 잽싸게 갈아탔다.
 
세 번째 회사는, 게임을 안 하는 사람들마저
아니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도 아는 외국계 기업의 
계열사 스튜디오였다.
온갖 복지가 진짜 속된말로 '쩔었다'.
우리 여기서 오래오래 해먹자고 사람들과 다짐했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올 스톱되고
2015년 개봉 예정인 유명 영화 IP 기반의 게임을 제작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프로젝트 홀드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애정하는 IP인지라 신나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했다. 
정확히는 게임 부분만.
 
5월에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채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중 몇몇은 남은 열정으로 모여 스타트업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도 거기에 합류했다.
 
급여도 없고. 엄밀히 말해서 '고용' 상태도 아니기에
동생 회사의, 얼굴도 모르는 사장님은 
열심히 내 의료보험을 내 주고 계신다.
 
***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전 회사의 사업본부장이 연락을 했다. 돌아와라.

...

첫 회사에서 야근과 핫식스에 쩔어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가산 디지털단지 앞에 찾아와, 고기를 굽다가
부스스한 내 꼬라지를 보고는 돌아오라 말하던 그에게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꿈은 잠잘 때 꾸는 것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그 말을 듣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 말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돌아와라, 그만하면 충분하지?"
 
***
 
이상한 곳이었다. 누구 하나, 게으른 사람은 없었다.
영업관리직에 있던 내가 엑셀 숫자 몇몇개를 바꾸고
검정색, 빨강색 숫자 몇 개를 써 올려 받아가던 급여의
절반 남짓한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배의 열정과 애정을 쏟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최근 보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 활약하는 인물들보다
더 격렬하고, 더 활기차고, 더 열정적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런데 말이지. 우리는 왜, 회사 어디 다니냐는 질문에
'IT...' 라고 말을 흐리게 되는 걸까?
 
우리는 왜,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해요? 라는
후배들의 질문에 '하지 마요' 라고 대답하게 되지?
 
우리는 왜 우리 일이 TV에 나오면 항상 분노하게 될까?
 
아니 왜?
 
왜 우리는 마약상이 되고, 애들을 짐승의 뇌로 만드는
악마들이 되고, 외국으로 튈 생각만 하는 매국노가 되고
한류니 문화수출이니 하는 얘기가 나올 때 마다
걸그룹들의 가슴골과 허벅지 뒤에 숨어야만 했을까?
 
그래서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투자자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얇은 모가지를 가져야만 했지?
 
그래서 왜, 우리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뚝딱 원하는 '어플'을 만들어내는 기술자여야만 했지?
 
왜 디즈니는 우리나라에서 게임사업 못해먹겠다고 때려쳤을까?
 
그래서 나는 왜?
 
나는 왜, "돌아와라, 그만하면 충분하지?" 라는 질문에 
그리도 순순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을까?
 
***
 
아직도 나는 이 일이 재미있다.
 
지난 주까지 진행하던 스타트업 프로젝트의
백그라운드 설정과 시놉시스 작성은 정말 재미있었다.
자려고 누워서도 그 생각이었고
아침에 출근하면서도 아이폰으로 관련 자료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퇴근 안해? 라는 말을 아직도 자주 듣는다.
'이것만 완료하고요.' 라는 대답, 저번주에도 두번쯤 했던가?  
 
그런데 나는 왜?
 
***
 
참 이상하다. 결국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5년간, 이 업계에서 굴러다니며 내가
무엇을 했노라고 남들에게 보여 줄 게 아무것도 없다.
 
첫 회사에서 오픈한 FPS 게임은 한국 서비스는
종료한 지 오래고,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서비스도 뭐
회사 자체가 사라진 마당인데, 있는 게 더 이상하겠지.
유툽 뒤져보면 동영상 몇 개는 올라와 있긴 하더라만.

두 번째 회사부터는 결국 완료 한 프로젝트가 없네?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핫식스 부어넣어 지샜던 그 밤들은
대체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월급도 안 나오던 회사에서 심의료 받아가던 애들은
지들 뱃속의 어느 지방세포에 내 열정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을까?
'경쟁과 도전이 없는' '게임'을 만들라고 종용하던
여성가족부는 알고 있을까?
능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외국으로 뜬 기획자들은 알고 있을까?
자기 자식들이 무슨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고 말하던 아줌마들은 알고 있을까?
 
***
 
"잡을 수가 없네요."
학교 선후배로 17년을 가까이 지낸, 그리고
게임 업계 선배로써 나를 항상 도와주었던
'친구'는 그 말만을 반복했다.
 
왜 모르랴.
17년이라는 시간은 참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

"하긴, 요즘 이 바닥 꼬라지 보면... 좋은 선택일지도. ㅎㅎ"
 
미안하다고, 게임 업계에서 도망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자
첫 회사에서 같이 고생하던 기획자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의 웃음이, 그의 자조가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
 
이것은 서른 둘에도 철이 덜 들어, 꿈을 찾던 어린아이의 투정이고
서른 일곱에 꿈을 접은, 참 늦게 아저씨가 된 아저씨의 자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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