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dc 힛갤「 버들치를 위한 방생 소나타 」 글 두개로 나뉘어져 올라온 것을 묶어서 올립니다 .
──────────────────────────────────────────────────────────── 현재 이사와서 살고 있는 동네엔 조그만 개천이 하나 흐른다. 이름은 성북천(또는 안암천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더라). 서울에서 흔히 보이는 도심하천들과 다를 바 없는, 조그맣고 더러운 하천이지만 다른 도심하천들과 다를 바 없이, 상당히 많은 수의 버들치(그리고 붕어와 잉어)가 살고 있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근데 어느 날 길을 지나다니다 보니 개천 옆에 이런 말이 적힌 표지판이 있더라. "성북천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 표지판이 붙은 뒤로 한 달쯤 지난 오늘. 유난히 추운 날씨에 개천이 얼지 않았을까 해서 개천 쪽을 바라보니, 이게 웬걸. 하천은 전혀 얼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 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위 사진처럼, 하천에 물이라곤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하천 가장자리의 콘크리트 제방까지 물이 꽉 차 있었는데. 그저 지금은 조그만 웅덩이 한둘이 남고, 하천 가운데엔 붉은 깃발만 꽃혀 있고. 그러다 문득 예전에 봤던 표지판이 생각났다. "성북천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
아마도 자연형 하천 조성 공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상류쪽에서 흘러오던 물을 막아 하천에 물을 통하지 않게 한 듯하다. 하천의 물이 완전히 말라붙은걸 보면 그 목적은 쉽게 달성한 듯. 하지만 그렇다면 버들치들은?! 그 많던 버들치들은 어디로 갔을까. 해서 보니 다리의 기둥 부분 패인 곳에 아직 웅덩이가 조금 남아있더라. 고기들이 무사한지 보기 위해 다리 위쪽으로 가서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본 웅덩이엔, 고여있는 물보다 더 많아보이는 수의 버들치(와 붕어, 잉어)들이 산소가 부족해서 수면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지. 저대로 두면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전멸할 것이라는건 불보듯 뻔한 일. 구해줘야 된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거 원 어지간히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보니 쉽게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가 자가용이라도 있다면 통속에 슥슥 건져서 넣은 뒤에 차타고 슥 청계천에 가서 놔주고 올텐데, 이거 뭐 가진거라곤 두 다리뿐이고. 몸은 피곤하고. 그래서 결국 보고만 있다가 용두동에서 클리너새우나 한마리 데리고 왔다. 다녀오는 길에 써놨긴 하더라. "하천의 물고기들은 공사 전에 상류로 옮겨두겠습니다" 라고. 근데 보니 이미 공사하고 있던데. 고기들은 옮겨주긴 커녕 조그만 웅덩이에서 헐떡대고 있던데. 만일 여름이었다면 이미 다 죽었겠지. 증발속도도 빨라서 물도 지금보다 더 적었을테고, 수온이 높아지면서 용존산소량은 더 줄었을테고, 고기들의 신진대사가 지금보다 활발해서 산소도 부족하고 물도 금방 오염되었을 테니까. 그러곤 집에 와서 클리너새우를 물맞댐해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영 찝찝하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토종어 키우는 사람이고, 그런걸 떠나서도 가만 두면 곧 죽을 생명이 수천마린데, 그냥 가만 두고 있자니 영 꿈자리가 사나울거같다. 그래서 결국 울 아줌마를 소환해서 도움을 요청한 뒤, 족대와 채집통을 들고 개천으로 향했다.
이거 뭐 성북동 비둘기도 아니고, 성북천 버들치들이 떼거지로 모여있다. 그래도 구하겠다고 온 길인데, 그런걸 알 리 없는 녀석들은 그저 혼비백산하며 구석만 찾더라. 사진으로만 봐도 무섭도록 많은데,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한 10배정도 무서워 보인다. 하지만 쟤들이 더 무섭겠지.
채집통에 물부터 채워넣은 후, 족대로 아주 슬그머니 한번 뒤져봤다. 근데도 고기가 저만큼. 어림짐작으로 한번에 100여마리정도 떠진 것 같다. 죄다 채집통에 집어넣었다.
한번은 족대에서 채집통으로 옮기다가 실수로 바닥에 확 부어버렸다. 빨리 다시 집어다 넣어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몇마리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다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이지. 불쌍한 녀석들. 구해준다고 나선게 괜히 죽이기만 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족대질 한번에 잉어까지 몇마리 건졌다. 생전 족대질하다가 족대에 걸린 고기가 무거워서 바닥에 내려놔보긴 처음.
저 정도만 건지고 족대질은 그만두었다. 현재만 해도 채집통은 포화상태고, 어림짐작으로 이미 건진 개체수만 1000마리는 넘어보였고, 그 이상은 나도 건사할 자신이 없었고 일단 이 정도 개체수만 줄여주어도 용존산소량엔 여유가 좀 생겨서 남은 녀석들도 꽤나 버틸 수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고. 저 통, 보기보다 큰 통이다. 아마 실제 용량은 15~20리터정도? 거기에 물보다 고기가 많게 채웠으니 뭐.
일단 집에 데려온 후, 두개 통에 나눠 담았다. 오늘 당장 다른 하천에 방류하기엔 시간도 늦었고, 여력도 없고 해서 집에 데려온 뒤 욕조에서 하루동안 놓아 두었다가 방류해 주기로 했는데, 그렇게 되면 하룻동안 씻질 못하다보니 일단 여유를 두기 위해 씻을 동안만 두개 통에 나눠 둔 뒤 에어레이션을 하는 중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욕조에 고기를 옮겨주는 중이다. 윗 사진의 큼직한 녀석은 잉어. 아랫 사진의 큼직한 녀석은 붕어. 그리고 나머지 자잘한 녀석들은 죄다 버들치. 이번에 보인 어종은 버들치, 잉어, 붕어, 참붕어, 미꾸라지였는데, 그중 버들치가 거의 99%를 차지하고 나머지 종들이 아주 약간의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도심하천의 왕자, 버들치.
바글바글하게 몰려있는 버들치.
옮기는 과정에 5마리가 사망했다. 불쌍한 녀석들. 모습만 보면 아직도 멀쩡한 것 같은데.
모두 다 옮겨준 뒤의 모습. 이것도 장관이라면 장관이다. 보너스로 버들치 군영 동영상.
[클릭/새창] 결국 쉽지 않게 마음먹고 쉽지 않게 일을 끝냈다. 아직 직접 놓아주는 단계가 남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오늘보다는 쉽겠지. 솔직히 말해서 이게 뭔 난리인가 싶다. 자연형 하천 공사가 자연을 죽이다니. 하천이란 겉보기에는 그저 물이 흐르는 곳이고, 그렇게 물만 흐르면 고기들도 다 쉽게 잘 살겠거니 싶겠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다. 하천 바닥의 모래 곳곳엔 물을 맑게 해주는 박테리아들이 모여있고, 그 모래 위엔 수초가 살면서 박테리아들이 미처 정화시키지 못한 질산염 등을 제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천의 환경을 바탕으로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다시 이 물고기들을 먹는 물오리나 백로들이 하천을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면 이 박테리아들이 죽게 되고, 수초들도 마찬가지로 죽게 되며, 물고기는 당연히 살지 못하게 된다. 자연형 하천 공사라는 명목 하에 짧게는 수십년에서 길게는 수천년에 이르러 만들어진 생태계가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공사 어디에 자연이 있겠는가. 故 백남준씨가 건멸치를 편지봉투에 넣어 "물고기를 위한 방생 소나타"를 연주한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살아있는 버들치를 통해 "버들치를 위한 방생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도 꽤나 유쾌한 일이었다. 나 말고 다른 토종어를 사랑하는 분들, 또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분들도 이 음악을 같이 합주한다면 더 유쾌한 음악이 되지 않을까. 물론 몸은 좀 피곤하고, 옷은 좀 더러워질지도 모르지만.
──────────────────────────────────────────────────────────── 위의 내용까지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6733 아래 내용부터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6735 ──────────────────────────────────────────────────────────── 아, 어제도 참 많이 고생했다. 하지만 오늘도 일이 있다. 건져다 놨으면 풀어주기도 해야 하는 법. 오늘은 방류를 해야했다. 일단 계획으로는, 방류지점은 청계천 황학교 일대. 교통수단은 택시. 운반수단은 탐어용 채집통+10리터 이상급 락앤락통. 단거리이므로 휴대용 기포기는 생략하고, 최대한 빨리 도착해 방류한다는 계획이었다. 방류지점은 청계천과 성북천 상류 가운데에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청계천으로 정했다. 현재 30센티급의 잉어를 포함한 잉어와 붕어 등의 대형 어류들과 약 1000여마리의 버들치를 풀기엔 성북천 상류의 유량이 너무 적다는게 결정적인 이유. 반면 청계천의 경우는 언제나 마르지 않는 유량을 자랑하니, 개체수를 감안해서 당연히 청계천으로 정했다. 거참,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이명박이 자연을 위해 한가지 도움을 주는구나. 본래 한 하천에서 잡은 개체를 다른 하천에 방류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경우는 워낙에 규모가 작은 하천이면서 청계천의 지류인 하천이기 때문에, 유전적인 부분에서도 별 문제가 없을거라 판단했고, 이미 많은 버들치들이 생존하고 있는 하천 (아마 그 버들치들도 성북천 내지 정릉천에서 내려온 녀석들로 추정)이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의 문제도 없을거라 판단했다. 정확한 포인트인 황학교 일대는 우선, 다수의 버들치가 서식하는 지역이며, 성북천-청계천 합류지점과 가깝고, 또한 우리집에서도 가장 가까운 위치라는 이유로 결정했다. 교통수단은 내가 자가용이 없고, 집에서 황학교 일대로 가는 버스가 없으며, 또한 두명이 타면 버스나 택시나 요금은 그게 그거라는 이유로 결정했다. 물론 고기들을 넣은 통이 매우 무겁다는 것도 한 몫을 했고. 운반수단은 뭐, 평소 탐어 다닐때 들고 다니던 통을 쓰는게 가장 편한데, 그것 하나만으로는 너무 비좁을 듯해서 락앤락통 하나를 추가했다. 물론 넣어보니 저것도 너무 비좁긴 하더라. 그래도 택시로 5분남짓인 거리라 낙오개체는 거의 없을것이라 판단했다. 이렇게 계획을 짜고 오늘도 빡시게 한번 굴러볼란다.
최대한으로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욕조로 이동 후 2회 50% 환수를 했고, 기포기를 이용해 에어레이션을 해 주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낙오개체가 있었다. 총 20마리정도가 낙오했는데, 전체 수를 감안하면 높은 생존률이지만 그래도 죽는 녀석들을 보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이동을 위해 고기들을 옮기는 중. 우선 덩치 큰 잉어들부터 옮기기로 했다.
우선 잉어 한마리.
잉어 두마리.
잉어 여덟마리.
그리고 수면에서 아우성치는 버들치 떼.
옷갈아입는 중에 에어레이션을 좀 해주고, 준비가 끝나는대로 출발!
지나는 길에 다리 밑 웅덩이를 보니, 밤새 추운 날씨에 물이 얼어 잔뜩 죽어있었다. 사진에서 얼음 속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죄다 배뒤집고 죽은 버들치들. 내가 하루만 게으름 피웠어도 물통 안의 녀석들도 같은 신세였겠지.
오리도 망연자실. "이게 뭐 ㅇ 미?". 참고로 오리가 서 있는 지점은 하천 한가운데. 그렇게 다리를 지나 큰길로 나갔고, 운좋게 바로 택시를 탈 수가 있었다. 고기들을 트렁크에 넣고 택시에 탄 뒤 황학동 이마트 부근까지 가달라고 하니 기사아저씨가 영 말이 없더라. 너무 단거리라 기분이 안좋으셨나? 그래도 기본요금은 넘겨서 택시비는 2500원. 황학교 밑으로 내려와서 방류 시작. 사실 내려가는 계단이 어딘지 찾질 못해서 한바퀴 삥 돌다가 내려갈 수 있었다. 락앤락통에 담긴 녀석들을 방류하는 모습. 정신 못차리고 뒤집힌 녀석들도 꽤 있었는데, 용존산소량 풍부한 물로 가니 곧 정신차리고 구석에 박히더라.
그리고 채집통의 녀석들을 방류. 뒷면에서 사진을 찍어서 포스가 좀 딸리지만, 앞에서 볼 때는 가히 6.25때 중공군이 남진하는 듯한 포스가 느껴졌다.
방류한 직후엔 가까운 돌틈에 몸을 붙이고 휴식을 하더라. 저 사진에서 까만건 잉어요, 갈색은 버들치라. 저렇게 구석구석 파고들어 있다가 기운을 차리고 나서는 하나둘씩 군영을 이루어 하천 곳곳으로 흩어졌다.
조금 떨어져서 본 모습. 무슨 낙엽들이 쌓인 것 같다.
방류를 마친 청계천의 모습. 내가 미숙한 관계로 용궁으로 보낸 몇녀석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씁쓸하지만, 그래도 청계천에서 헤엄치는 버들치들을 보니 기분이 좀 시원해진다. 이 녀석들중 청계천에서 잘 적응해 살아가는 녀석들도 있을거고, 더 나은 곳을 찾아 정릉천이나 중랑천으로 가는 녀석들도 있을거고, 공사가 끝난 뒤에 다시 성북천으로 돌아가는 녀석들도 있겠지. 미처 구하지 못해 죽어간 녀석들이 더 많긴 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녀석들이 다시 성북천으로 돌아와 죽은 녀석들의 자리를 대신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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