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번입니다. 검정색 남방에 바지는 회색 운동복. 키가 168㎝. 아주 큽니다. 168㎝. 긴 생머리. 이마와 오른쪽 광대에 여드름이 있습니다. 왼쪽 목 뒤에 점이 있고요. 특징은 치열이 고르지 않습니다.”“볼 오른쪽에 점이 있나요?”“우리 아이예요. 우리 아이 맞아요.”어머니는 안도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부러움을 샀다. 한 실종자 어머니는 “우리 애도 빨리 찾아야 하는데. 아이를 한번이라도 안아줘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세월호 침몰 엿새째인 4월21일 밤 12시가 다 된 시각, 희망의 끈을 놓은 이들이 많았다. 침몰 닷새째인 4월20일까지 생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이들을 살려달라”며 청와대로 향하다가 경찰의 벽에 막혀 돌아와야 했다. 실종자 가족 김 아무개씨는 “대통령이 포기하고, 총리가 외면하는데 구조가 제대로 될 리 없다”라고 말했다. | | |
ⓒ시사IN 이명익 |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입니다. 확인하세요.” 해경 과학수사대 수사관의 지시대로 실종자 가족들이 움직였다. 가족들은 시신이 안치된 천막으로 몰려갔다. 어머니들이 부축을 받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비명·절규, 그 모든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통곡하고, 가슴을 치고, 숨이 넘어가고…. 가족이 울고 의사가 울었다. 경비를 서는 경찰도 울고 있었다. 살아남은 죄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4월23일 새벽, 실종자 가족 대부분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다. 난민수용소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였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떠난 자리다. 체육관 밖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구호물품이 가득 쌓여 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새벽 2시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대부분은 수색작업을 중계하는 화면과 뉴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체육관 바닥 한구석에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아이가 수학여행 간 형을 기다리고 있다. 아빠를 안고 뽀뽀하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애교를 부린다. 한 자원봉사자가 청소하다가 밝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쏟았다.4월23일 오전 9시. 진도 팽목항은 실종자 가족, 기자, 그보다 훨씬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는 고위 공직자와 경찰도 많았다. 선크림을 짙게 바른 한 간부 공무원은 부하 직원 셋을 데리고 분주히 지나다녔다. 사복을 입은 한 경찰 간부는 “이런 데서는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해. 우리는 못 만난 거야”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경찰의 임무는 신속한 구조를 돕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 |
ⓒ시사IN 이명익 사고 지역에서 수습된 시신들이 팽목항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고 있다. |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가족대책본부 앞에 사망자 현황판이 들어섰다. 쪽잠을 자다 깬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오열이 터진다. 잠시 후 가족들은 아이들을 확인하려고 임시 안치소로 갔다. 남겨진 가족들은 팽목항에 있는 천막으로 돌아가거나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우리 아기가 저쪽에서 배를 타고 올 거예요.” 물끄러미 바다만 바라보던 젊은 엄마. 망부석이 된 것처럼 미동도 없다. 엄마는 끝내 바다에 대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실신했다. 팽목항에서 국가의 맨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사고 원인조차 밝히지 못했다. 심지어 사고인지 사건인지도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리더도 없고, 대응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장을 살인자로 지목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청와대는 “재난 상황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면서 도망가버렸고, 안전행정부는 “해상 재난은 잘 모르겠다”라면서 빠져나갔다. 해양수산부와 해경 그리고 해군은 눈치 보기 바쁘다. 공무원들은 가족들을 피해 도망가기 바빴다. 책임을 미루는 사이, 구조는 미뤄지고 갈등은 커져만 갔다.정부는 물살이 약한 소조기를 맞아 4월24일까지 집중 수색작업을 펼칠 계획이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24일 구조대원 726명,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의 장비가 집중 투입됐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사고 현장에서 구조를 돕던 한 선장은 “현장에는 배 20여 척과 헬기 한두 대가 떠 있다”라고 말했다. | | |
ⓒ시사IN 이명익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
바닷속에서도 갈등이 있다. 민간업체 잠수사는 해경과 싸우다가 일부는 사고 현장을 떠났다. 민간업체 잠수사 김 아무개씨는 “많은 민간 잠수사들이 구조에 나서겠다고 몰려왔다. 하지만 해경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언딘)’ 소속 외에 다른 잠수사들은 투입을 막아서 돌아가야만 했다. 6일 동안 투입된 민간 잠수사는 서너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잠수사 이 아무개씨는 “잠수사들이 장비 사용료와 인건비 등 이권 때문에 다투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돈을 더 들여서라도 빨리 구조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4월24일 밤 ‘언딘’ 소속 한 잠수사는 “현재 잠수하고 있는 사람은 13명이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가 아는 것은 750명이다. 그런데 13명뿐이라니 말이 되느냐”라고 격분했다.실종자 가족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닷속에 잡혀 있는 죄인이어서 ‘살려달라’고 무조건 빌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를 대신해 오징어잡이 배인 채낚기 어선을 불러 불을 밝힌 것도 실종자 가족이었고, 잠수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바지선을 구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실종자 가족들이었다. 실종자 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유경근씨는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예은이의 아빠다. 유씨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구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휴대전화에 담긴 예은이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어제(4월22일) 나온 아이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잠수사가 일러주었다. 아이들 가운데 손가락이 골절된 유해가 많았는데 죽을 때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 | |
ⓒ시사IN 이명익 |
그는 정부가 초기 구조에 나서지 못한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했다. “거의 매일 바다에 나갔는데 사고 당일인 4월16일 저녁 바다가 가장 평화로웠다. 그런데 보트로 현장 주위만 돌 뿐 단 한 사람의 잠수부도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경의 한 관계자는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구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희생자 대부분이 10대이다. 4월23일 오후, 싸늘히 식은 조카의 시신을 안고서 김 아무개씨는 “다행히도 조카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4월25일 아침, 유경근씨도 딸의 시신을 찾았다. 유씨에게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유씨는 “다행히 예은이를 찾았다. 쌍둥이 언니가 ‘그동안 못되게 군 게 미안하다’며 꼭 데리고 와달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두에서, 천막에서, 길가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소리 죽여 우는 가족의 흐느낌을 들었다. 팽목항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이 그렇게 미안했다.미국의 진보운동가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은 평상시에 힘을 가진 권력들을 패닉에 빠뜨린다. 비상사태는 권력의 무능과 그들이 운영하는 제도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폭로한다. 그러나 재난 속에서 시민들은 아낌없이 자기를 내어주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라고 썼다. 대통령이 ‘살인과 다름없다’며 선장의 책임을 말하고, 언론이 희생양을 찾을 때 시민들은 ‘꽃’을 피웠다. 팽목항에서는 자원봉사의 손길이 넘쳐 봉사 자제를 당부할 정도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직장인 자원봉사자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해에게도 바다에게도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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