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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 짧은 글(16)
게시물ID : readers_219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5
조회수 : 2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03 02:02:42
*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장면을 써보라.(셰익스피어의 비극, 멕베스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

순식간에 눈 앞에 불똥이 튀었다.
망막에 비치는 상이 형태를 잃고 흐느적거린다.
왼쪽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충격이 아랫배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구토감과 함께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라곤, 오직 서로 뒤엉켜 물어 뜯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검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둘러싼 것들을 둘러 보았다.
야만족이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썼다던 가면을 뒤집어 쓴 젊은 눈동자가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시선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와 같은 젊은 눈동자, 젊은 심장, 젊은 핏줄들이 자가복제를 마친 세포들처럼 일률적인 동작으로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하지 않은 것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머리통을 울리는 이명이 모든 소리를 앗아갔지만, 난 들을 수 있었다.
우리도 그들도 소리지르고 있었다.
검지 않은 세포는 검은 세포들을 향해 몸을 던지고, 검은 세포들은 가면과 방패로 온 몸을 단단히 둘러싸고 파도처럼 부딪혀 오는 성난 생명들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분노와 실망과 공포가 제각기 다른 색깔의 자취를 남기며, 폭죽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주변보다 무릎 한 개는 낮은 높이에 선 나는 모든 걸 안다.
우리와 검은 세포들이 싸우는 것은 분명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이리라.
그러나 온 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마치 시간이 더디게 흐르기 시작한 듯 느껴지는 이 순간에야 말로 나는 진실로 알 수 있었다.
파쇄기에 흘러드는 통나무처럼, 우리가 부딪히고 부딪혀 종국에 어떤 것이 누구의 조각인지 알 수 없게 되더라도 다른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비에 젖은 콘크리트 바닥에 흩뿌려진 우리들을 내려다 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썩어 문드러져 시큼한 빗물을 타고 그들의 뿌리까지 흘러들어갈 가망이 없다.
그것은 거무죽죽한 갑옷을 입은 검은 세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파멸은 그 누구도 살찌울 수 없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소리지르고, 제 몸을 찢고, 결국엔 무릎을 꿇은 다음에야 여전히 붉기만 한 황무지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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