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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FC
게시물ID : humorbest_219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헤르메스Ω
추천 : 34
조회수 : 1190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12/12 21:02:21
원본글 작성시간 : 2008/12/12 15:56:17
팬을 버리고 떠나? 그래서 우리가 팀을 만들었다
[한겨레] [뉴스 쏙] K3리그 '부천FC' 창단 첫해 흑자경영까지… 

K리그 에스케이가 버린 도시 부천, 팬들은 울고만 있지 않았다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앞장서 3억원 모아 출범한 3부 리그 팀 
밑바닥 성적에도 흥행은 따뜻했다…'꼴찌들의 반란'을 위해 

축구에서 팬은 12번째 선수다. 대한민국 축구에는 붉은악마라는 걸출한 12번째 선수가 있다. 선수들을 응원하던 이들 붉은악마가 축구단을 만들었다. 축구 3부 리그 부천에프시(FC) 1995의 구단주가 바로 붉은악마 출신이 주축이 된 축구팬들이다. 

올해 데뷔한 이 신생구단의 경영성적표는? 놀랍게도 흑자다. 프로축구 구단도 90%가 적자인데, 쟁쟁한 선수들도 없는 3부 리그 구단이 창단 첫해 흑자 운영을 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운영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왜 팬들이 구단까지 만든 걸까? 그렇게 팀을 만들 수도 있을까? 그리고 3부 리그는 또 뭔가? 

팬을 버리고 떠나? 그럼 우리가 만들지 

2006년, 부천 축구팬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부천 연고였던 프로팀 부천에스케이가 2006년 갑자기 연고지를 제주로 옮겨버린 것이다. 부천 팬들은 잠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오직 한 팀만 사랑한다'는 서포터스의 불문율을 깨고 철새처럼 다른 팀을 응원할 수도 없었다. 에스케이를 응원하던 서포터 모임 헤르메스가 모였다. 붉은악마 회장을 지냈던 기아자동차 직원 오중권(36)씨, 2002년 당시 붉은악마 대변인이었던 신동민(36)씨를 비롯해 정해춘·박기택·이희천·김형찬씨 등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결심했다. 떠난 팀에 구걸하느니 유럽처럼 차라리 팬들이 운영하는 축구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럼 어떤 팀을? 평범한 팬들이 구단을 만드는 것이니 프로팀 리그인 케이1 리그 팀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실업팀 리그인 케이2 리그를 한번 알아봤다. 당시 실업축구팀(케이2 리그) 창단 조건은 전업선수들로 구성해야 했기 때문에 최소 20억원이 필요했다. 축구전문가와 마케팅회사에 창단 관련 외주를 줬지만 이들도 몇 달 만에 포기했다. 축구단은 결국 꿈이려나 싶었다. 

그럴 즈음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초 3부 리그인 케이3 리그가 시작된 것이다. 축구협회를 만나고 온 담당자가 " 3부 리그는 팀 운영비 3억원 정도에 잔디든 흙이든 축구구장만 있으면 가능할 것 " 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태스크포스팀은 우선 구단주로 부천이 지역구인 배기선 당시 민주당 의원을 영입했다. 3억원이면 축구단 설립이 가능하다는 이들의 설득에 배 전 의원이 흔쾌히 구단주 자리를 받아들였다. 티에프팀은 기업후원 제안서를 쓰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고지 팀이 사라져 팬들이 축구단을 만든 것은 부천에프시1995가 국내 처음이다. 외국에선 드물지 않다. 영국의 에이에프시(AFC)윔블던, 일본 요코하마에프시(FC) 등이 모두 팬들이 만들었다. 이들 사례를 연구하며 구단을 후원할 방법을 찾아 머리를 맞댔다. 

3억원으로 축구단을-십시일반으로 팀 탄생 

기업이 축구단을 창단한다면 3억원은 푼돈이겠지만, 팬들에겐 큰돈이었다. 게다가 국내 거의 모든 축구단이 적자인 실정이고, 특히 3부 리그에선 중간에 부도로 사라지는 팀들도 나오고 있었다. 경영 측면에서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정식 직업선수들이 아니므로 선수들 연봉은 안 줘도 된다는 것뿐이었다. 돈을 벌어들일 구석은 뻔했다. 관중 입장료 수입과 구단 상품 판매다. 다른 구단들도 모두 해오고 있지만 크게 신통찮았던 분야다. 

그러다 보니 경영 방향도 뻔했다. 쓰는 돈을 줄이는 것이었다. 구단 직원 14명 가운데 유급직원은 정민(31) 운영팀장뿐이다. 연봉은 1600만원으로 책정했다. 헤르메스 출신으로 대학원에서 국제경제를 전공하던 정 팀장은 지난해 6월 창단 준비팀에서 상근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휴학하고 합류했다. 매표나 경기운영요원은 아르바이트나 자원봉사자로 충당했다. 자원봉사자라도 입장권을 자비로 사게 했다. 구단주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은 주중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 구단 운영에 참여하는 자원봉사로 한 해를 뛰었다. 

직장인, 자영업자, 변호사 등 직업이 다양한 이사들은 운영비로 연 20만원의 회비를 냈다. 하지만 실제 이사들이 쓴 돈은 적어도 1인당 1000만원 가량일 것이라고 한다. 이사진의 맏형 정해춘(50) 이사는 사무실 임대료를 도맡았다. 정 이사는 부천축구장에 살다시피 하는 축구광인 고등학생 아들을 잡으러 갔다가 덩달아 축구광이 된 사람이다. 정 이사의 회사인 덕산파이프는 연간 500만원에 부천경기장 입간판에 광고하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돈에 허덕이던 이들에게 무려 연간 2억원을 후원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났다. 후원을 자처한 기업은 바로 부천을 버리고 간 에스케이에너지였다. 태스크포스팀은 고심에 빠졌다. 팬들을 떠난 회사의 돈을 받을 수는 없다는 반발이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팬들에게 축구단을 돌려주는 한편 축구단을 보란듯이 성공적으로 운영해보기 위해서 이 회사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 이어 다음, 스포츠토토, 키카스포츠, 석수 앤 퓨리스 등 기업들도 후원을 약속했다. 후원계약이 이어지자 " 무슨 돈으로 축구단을 운영하겠냐 " 며 연고 협약에 난색을 표시하던 부천시와도 협약이 성사됐다. 

마침내 2007년 12월1일 부천에프시1995가 탄생했다. 이름에 들어간 1995는 부천 헤르메스가 처음 서포터스로 모인 해다. 이름에서부터 부천에프시가 기업이 아닌 팬들이 만든 축구단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부천에프시가 믿을 것은 축구라면 리그를 가리지 않고 사랑해줄 수 있는 진짜 축구팬들뿐이었다. 팬들에게 구단의 운명을 걸고 부천에프시는 올 3월 첫 시즌을 맞았다. 

축구 도시 부천 팬들, 기적으로 화답 

부천 축구팬들의 축구 사랑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유서가 깊다. 부천에프시의 서포터스인 헤르메스는 1995년 부천과 가까운 서울 양천구 목동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유공 코끼리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피시통신으로 연결된 이들은 당시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서포터스 개념을 도입했다. 치어리더와 요란한 확성기 대신 응원팀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박수와 함성만으로 팀을 응원했다. 이후 이런 응원문화가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서포터스 문화를 주도하던 멤버들이 1997년 국가대표 서포터스인 붉은악마 창립을 주도하게 된다. 헤르메스가 붉은악마 집행부를 배출한 것도 이런 이유다. 

에스케이는 이런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부천을 떠났다. 신동민 마케팅팀장은 " 당시 망연자실했던 서포터스들은 전화하면 모두 울기만 했다 " 고 회상한다. 그런 팬들이었으니 3부 리그나마 연고팀이 다시 등장한 것을 뜨겁게 반겼다. 올해 부천에프시는 홈경기 평균 189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케이3 리그 평균 관중 400명의 다섯배 가까운 숫자다. 5000원짜리 입장권 수익으로만 2900만원을 거뒀다. 부천에프시 올 시즌 전경기를 볼 수 있는 시즌권 5만원짜리가 300장 넘게 팔렸다. 지난 11월8일 지난해 우승팀인 서울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는 무려 7000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프로팀 경기에서도 드문 숫자였다. 

상품 판매도 기대 이상이었다. 유니폼과 티셔츠를 각각 400여장 판매해 14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머플러 모자 자동차 스티커 등도 1000만원 넘게 팔렸다. 지역기업의 후원도 잇따랐다. 부천시의 맥줏집, 학원, 인쇄소 등 자영업체 13곳이 5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후원했다. 

지난 11월30일, 부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2008년 부천에프시 시즌경과보고와 총회에서 오중권 국장은 상기된 목소리로 첫해 축구단 운영 실적을 보고했다. " 올해 구단의 수입은 3억2746만원이며 지출은 2억1694만원으로 세금과 갚아야 할 부채를 제외하면 8000만원 가량 흑자가 날 것 같습니다. " 순간 박수가 터졌다. 

진짜 승부는 내년-우리의 꿈은 승급 

첫해 흑자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올해 부천에프시는 7승7무15패로 3부 리그 15개팀 중 13위에 그쳤다. 선수들끼리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고, 승리수당이 적었던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부천에프시의 올해 승리수당은 선수당 10만원에 불과했다. 다른 팀의 경우 최대 60만원을 주는 팀도 있다고 한다. 부천에프시는 내년부터 승리수당을 올릴계획이다. 

이제 부천에프시의 목표는 곧 도입되는 승급제에서 상위 리그로 뛰어드는 것이다. 이미 외국에선 보편화한 제도다. 3부 리그에서 최상위팀이 되면 2부로 올라설 수 있다. 오 국장은 " 앞으로 계속 흑자를 내서 시민주를 발행해 시민구단이 된 뒤, 2부 리그 진출, 그리고 프로리그까지 진출하겠다 " 고 야심 차게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이보다도 이들에게 더 중요한 내년 소망이 있다. 정신없었던 올해보다 느긋하게 부천에프시 축구를 관전하는 것이다. 신 팀장은 " 올핸 이사들 대부분이 표 팔고 경기 진행 및 정리하느라 정작 축구를 즐기지 못했다 " 며 " 축구단 이사보다 헤르메스 회원으로 신나게 응원하면서 축구를 보고 싶다 " 고 말했다. 그들의 말 속에서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짙게 풍겨 나왔다. 

권은중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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