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가 백제이 요서 경유를 부정하면 이도학 교수도 유사역사학? 이냐는 게시글을 보고 씁니다"
백제의 요서 관련 문헌에 대한 학계입장은
1. 요서 영유부정설 - 부정설
2. 요서 경략설 - 절충설
3. 요서 공략설 - 긍정설
3가지이며 부정설이 다수설이고 경력설, 긍정설은 소수설입니다.
대륙백제를 주장하는 것은 그야 말로 사이비 유사역사고요
이도학 교수는 유사역사학이 아닙니다. 그냥 소수설을 주장하는 경우죠
1. 요서 영유 부정설은
백제의 요서점유 관련 문헌 기록이 남조의 작위 수여 관행에 따른
(남조의 작위 수여 관할지는 통치지역이 아닌 형식적인 지역명을 사용할 뿐이고 외번의 경우 요청한데로 수여함)
기록일 분 실제 점유한게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으로 남조 사서와 작위 관제에 대한 연구 결과물입니다.
더불어 남조 사서와 기록에 보이는 백제의 요서 관련 작위를 인정할 경우
함께 등장하는 한반도 남부의 작위를 받은 왜의 5왕 기록을 인정하는 꼴임으로 함게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오류가 됩니다.
보다 합리적인 해석이라 판단되어 학계의 다수설이 된 이유죠
2. 요서 경유설은
백제의 요서 지방관련 기록이 백제의 활발한 해상무역과 교역의 결과이며 상업활동 과정에서 설치 된
백제의 임시적인 관청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통일신라 시기 상업활동을 위해 산동지역에 설치 된 신라방 신라소의 사례로
백제의 요서 관련 기록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국사교과서에 채택됨으로써 사실상 가장 많이 알려진 학설입니다
학계에서는 남조 사서의 연구결과가 축적이 되며 소수설로 분류되며 국사교과서 기술에 대한 수정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3. 요서 공략설은
백제의 요서 관련 기록이 실질적인 군사적 지배에 따른 결과물로 파악한 경우입니다
이도학의 경우 광개토대왕과의 전투 과정의 결과물로
강종훈의 경우 부여 유민이 북위 정권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기록으로 평가합니다
예전 오유 역게에 강종훈의 논문 전편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강종훈 역시 논문에서 상상력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도학설과 함께 소수설로 분류됩니다.
4. 대륙백제설
그냥 일고의 가치가 없는 유사역사학입니다.
후연의 본거지 이자 마지막까지 북연이 저항한 요서지방에 영토를 장기간 영유한 다는 가설도 말이 안되고
산동 - 남연의 본거지, 절강,강소 - 남조의 본거지 등을 백제가 지배했다면
한국사 이전에 세계사의 수정이 필요하죠. 판타지의 영역입니다.
오유가 이도학 교수를 부정하고 유사역사학자로 모는가?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소수설을 주장하는 분이시고 개인적으로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에서
역사학이 지닐 수 있는 상상력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학문으로써 논증하기 위해 노력한 뛰어난 학자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딱딱하기 쉬운 역사분야에서 대중들이 백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많은 기여를 했고
저 역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지지는 받지 못하죠.
한국사에서 민족주의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관행은 오래된 바이고
한국사가 국사라는 이름으로 국정교과서가 되면서(국가가 1종의 국사를 강요하는 나라는 몇 안됩니다)
한때 그 목적이 민족사명의 고취로 활용 된 전례가 있기에
한국사를 민족사로 이해하는 경향이 한국에서 큽니다
한국사 교육의 관행과 대중매체에서 소비가 빠른 민족주의 고취 마케팅으로
전문적인 학술을 논하고자 하는 학계의 역사 관점과
민족주의 관점에서의 대중의 역사 관점이 괴리가 생길 수도 있죠.
오유 역게는 역사를 학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지향하며
역사에 관심 가지시는 분들이 호도된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도록
검증 된 역사적 사실을 논하고자 노력하는 공간입니다.
때문에 유사역사학은 당연히 배격을 하는 것이고
소수설 보다는 다수설을 주요 논거로 삼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구분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