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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걸린 사이다!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게시물ID : soda_22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BA_CPA
추천 : 22
조회수 : 6206회
댓글수 : 81개
등록시간 : 2015/11/18 18: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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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친인척과의 사이다 사연을 보고 글 하나 써 봅니다. 


머 어느 집안이든 형제가 많으면 돈 문제로 시끄럽지 않은 곳이 없더군요.

저희 아버지 형제끼리도 그러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4남1여 중 2째 이십니다. 숫자가 참 애매하죠? 
아시다시피 아버지 세대에 2째는 정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입장이셨죠. 

첫째는 맏이라고 해서 나중에 저의 조부모를 모실 것이고 나아가 제사까지 지낼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할아버지/할머니의 애정의 첫번째 대상이었습니다. 
(제 고향은 경상도에서 두번째로 보수적이라는 경주 입니다.)

셋째는.. 하.. 사고뭉치라서 언제느 다른 형제들이 고생을 했더랬습니다. 이혼을 했고 그 덕에 하나 있는 사촌동생은 고모네 집에서 얹혀살아야만 했죠. 삼촌은 변변한 직업이 없었어서 언제나 제 조부모와 형제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넷째는 남자 형제 중 막내라서 조부모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더랬습니다. 그 시절에 대학도 나왔고. 생활면에선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섯째인 고모 역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사촌동생을 키울만큼 헌신하였죠.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면, 사실 그 사촌동생을 할머니께선 우리 어머니, 즉 우리집에 맡기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고모가 맡았습니다. 사실 우리집엔 저와 제 동생까지 있어서 어머니가 거부를 했거든요. 기실 할머니의 딸이 키우는 것과 또 다른 며느리가 키우는 것은 결과가 어떻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탈이 나고 욕을 먹게 되어있는지라, 저희 어머니는 어떤 욕을 먹든 사촌동생을 키우는 것 만큼은 거부를 하였지요. 


이런 정도의 상황에서.. 저희 할머니는 저희 아버지를 꽤나 평등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아버지 형제들 중 아버지만 아이들 2명 두었는데, 그 이유로 세배돈을 저와 제 동생은 다른 사촌들의 그것에 1/2 를 나누어 받을 정도 였죠. 머 흔한 경주의 시골의 맞이 우대하는 시골 할머니였죠. 


그러다 15년 전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시나 돈 문제였는데요, 저의 증조부 즉 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저희 아버지 앞으로 주기로 했던 전답을, 저희 아버지의 동의 없이, 할머니가 팔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명의는 저희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 앞으로 되어있었고, 암묵적으로 때가 되면 저희 아버지 앞으로 돌리기로 한 거죠. 그런데 그 땅이 저희 아버지 동의 없이 팔려버린 거죠. 

당연히 분쟁이 생겼습니다. 

저희 아버지 입장에서는, 할머니가 암묵적으로 아버지의 땅, 그 마저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 가치가 적기도 했던 그 땅을 몰래 팔아버린 것에 화가 났으며, 그 대금 중 반도 안되는 금액을 받고 그만 덮어두자는 할머니의 발언에도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땅을 판 이유는 첫번째 아들 즉 저의 큰아버지가 사업차 돈이 필요했고, 큰아버지는 할머니를 꼬드겨 우리 아버지 땅을 팔게 하고는 반 이상의 대금을 갖고 간 거죠. 그런데 큰아버지의 주장은 법적으로 할아버지 앞으로 되어있는 땅이므로 할머니가 팔든 말든 우리 아버지가 관여할 일이 아니고, 대금의 반이라도 받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제가 정하진 않겠습니다. 


이 문제는 15년의 기간의 시작이 됩니다. 
다른 형제들은 사실 그 땅을 팔아 생긴 돈의 일부를 받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받은 돈은 반도 안되었던 것이죠. 
이 상황에서 당연히, 저희 아버지 VS 모든 다른 친가쪽 사람들 의 구도가 형성됩니다. 

그러던 중 전화 상으로 저희 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이에 언쟁 중, 큰 어머니가 제희 아버지께 "남자 새끼" 가 돈 가지고 쪼잔하다 라고 말하게 되고, 그 말에 흥분한 아버지는 "이 년" 이 머라하냐 고 말하게 됩니다. 더 한 막장으로 가는거죠. 

그 직후 설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할머니댁으로 가게 됩니다. 머 싸움은 예견된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가 할머니댁에 도착했을 때, 사촌형은 수능을 마치고 이제 성인이랍시고 삼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더랬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아버지와 큰아버지와의 다툼이 시작되고.. 

그걸 보고 있던 그 취한 사촌형이..

저희 아버지의 뺨을 때리게 됩니다.... 

저는 순간 눈이 돌아가서 사촌형에게 주먹을 날렸고, 제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난리가 났죠. 
(그런데 아직도 기억하는건 넷째 삼촌이 저에게 왜 사촌형을 때렸냐면서 제 뺨을 때렸다는 점입니다.. 사촌형의 행동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이 날 이후로 저는 막내삼촌도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날 이후 저희 가족과 나머지 친가쪽의 냉전이자 연락끊음이 시작됩니다. 
물론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공식적으로 친가쪽과 연락을 해야만 했지만요. 

덕분에, 네 덕분에, 지난 15년 간 최소한 제가 알기로는 친가쪽, 특히 할머니 문제로, 어머니가 우시거나, 아버지과 부부싸움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전엔 꼬이고 꼬인 친가 쪽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거든요.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였으니까요. 


지난 15년 간 사촌형은 저희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사죄하러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저희 부모님은 할머니댁에 명절에라도 갈 수 없다 하셨고
그런 저희 부모님을 할머니는 다른 친척들에게 욕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저와 제 동생을 포함해서요. 
저는 고려대 동생은 연세대를 나왔는데, 제가 대학을 들어갈 때 할머니는 멀리가서 그냥 죽어버리라고 했다더군요. 사촌형보다 좋은데 갔다고 (사촌형은 그냥 2년제). 어머니께서 나중에 그 말씀을 하시며 얼마나 서럽게 우시던지.. 

그 15년 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장례식만 참여하고 말았구요. 


그리고 작년... 문제의 큰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살이라고 하더군요. 

위에 쓴 대로, 지금껏 할머니를 살살 움직여서 사업자금을 빼내어가면서 살다가, 할아버지의 곳간과 형제들의 땅까지 다 팔고서도 빚을 갚지 못하여 결국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맞이의 제사가 중하다 하시던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선산을 팔아버린 이유로 묘장을 못하고 화장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문제의 사촌형은 고모부의 빽으로 시청에 기능직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그 마저도 벌이가 나빠 그만 뒀다하구요.


네 사이다는 아닙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합니다. 만일 15년 전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저희 어머니는 당하여 괴롭게 사셨을 것이고
저희 아버지 역시 중간에서 힘 드셨을것이고
저와 제 동생도 맘편히 공부하진 못했을 겁니다. 

큰아버지 빚 문제에 우리 집안까지 엮여야만 했을 테고, 저와 제 동생이 나이 좀 들어서는 저희 까지도 가만히 있을 수 는 없었을 텝니다. 어떤 식으로든 원조를 해야했겠지요.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앙금이 있는 상태로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말씀 하십니다. 
그게 남에게 눈물 흘리게 만든 자의 정당한 말로라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못할 말이지만 속 시원하고 고소하다고. 
15년 아니, 35년 동안의 지난 설움이 다 내려가는 것만 같다고. 


청량한 사이다는 아니지만, 똥물에 발을 하루라도 빨리 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벌 받을 자는 제손으로 자기 목을 조를 수 밖엔 없다는 것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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