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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글.
게시물ID : humorbest_220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ppyBear™
추천 : 134
조회수 : 2416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12/21 19:48:02
원본글 작성시간 : 2008/12/21 16:17:46
이정희 의원의 블로그입니다. http://blog.daum.net/jhleeco/



국회의장석 옆에 선 제게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이 와서 팔을 잡아끕니다. 힘에 못 이겨 끌려가면서 버티고 소리치는 제게, 사법연수원 동기 여성의원이 타이르듯 말합니다. “정희야, 너 원래 이러지 않았잖아.” “연수원 나온 사람이 이러면 안 되잖니, 이게 뭐니.” 끌려 내려오는 내내, 참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그 목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본회의장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눈앞이 노랗더군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모르게 맨발로 쓰러질 만큼 몸부림쳤습니다. 머리 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야유 소리가 흩어집니다. “서커스장이냐, 어디서 쑈를 하냐”, “아직도 길바닥 버릇이냐”.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이 일으켜주겠다고 손을 내밉니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한나라당 공천받은, 기륭전자 문제 해결하겠다고 나섰던 의원입니다. 순간 감정이 복받쳤습니다. 당신은 왜 국회의원 되었냐고, 비정규직 전환기금 하면 되는데 왜 안하냐고,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잊어버렸냐고, 돈이 그렇게 아깝냐고 소리치다 울컥했습니다. 사회주의적 예산. 이것이 비정규직 전환기금에 대해 한나라당이 붙인 꼬리표입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발언대에 서서 손펼침막을 들었습니다. 1분, 2분, 시간이 흐르자 다시 야유가 쏟아집니다. “사진 다 찍었잖아”, “안보여, 더 높이 들어.” 이게 모욕이구나, 싶습니다. 본회의장 밖으로 나가는데 다시 뜨거운 것이 속에서 치솟습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12월 12일, 지난 금요일 밤 국회에서 그 일이 있은 뒤로 한동안 몸져누웠습니다. 직후부터 갈비뼈 아래가 아팠는데 하루 밤 자면 낫겠지 했지요. 다음 날 한의원에서 복부인대가 늘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월요일 오전까지 꼬박, 몸살로 열이 불같이 올라 앓고는 오후부터 다시 속이 뒤집어져서 몹시 부대꼈어요. 그리고는 화요일 좀 바쁘더니만 쓰러져버렸습니다. 하루 병원에 있다가 어제 밤 퇴원했습니다. 절대 안정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쓰러진 것만큼은 알려지지 않았으면 했는데, 뜻하지 않게 알려져서 많은 분들을 걱정시켰습니다. 급기야 어제 밤 인터넷 한겨레에는 ‘혹한의 민주노동당’이라는 제목으로 강대표님은 의원직 상실형 구형받고 저는 쓰러졌다는 기사까지 났더군요.

그 기사를 보니 차마 그냥 누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 구형으로 걱정 많은데 심난해 할 당원들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아침 무작정 다시 나와 한미FTA 일방상정을 강행하는 외통위에 하루 종일 가서 지켜보았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장은 발동한 적도 없다는 경호권을 빙자해서, 또는 회의가 열릴 때 회의장에서만 발동할 수 있는 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을 내세워 아침 7시부터 회의장에 들어가 야당 의원들은 외통위 간사와 위원들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오후 2시가 되자 한나라당 의원들끼리만 한미FTA 상정시키고 5분만에 뒷문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경위들 시켜 바리케이트 쳐가며 위법행위를 저지른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에 정말 분개했습니다. 한미FTA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것은 토론의 대상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요. 하지만, 오늘 한나라당 의원들은 거대여당 힘만 믿고 절차도 어겨가며 공공연히 무효인 의결을 감행했습니다. 없는 힘 짜내서 지켜보던 저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딱 한 마디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걱정하신 당원 여러분, 네티즌 여러분,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왜 아팠는지 곰곰 짚어보다 그 이유를 알았고, 앞으로는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 크게 아팠던 이유,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삶으로부터 이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강을 건너온 며칠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부터 늘, 가장 낮아지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러지 못했더라구요. 저와 같은 환경 속에 살아온 의원들한테 개같이 끌려다니면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몸도 아팠지만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사흘 꼬박 앓으면서 비로소,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어떤 자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길바닥에서 하던 버릇”이라고 비아냥댔지만, 저는 길바닥에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살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덕에 사법시험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고 엘리트 부장판사, 부장검사님들의 품위 가득한 사법연수원을 다녔습니다. 그분들은 이제 대법관이며 법원장에 대검 간부가 되어계십니다. 은행장과 건설사 대표이사들과 고위 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과, 때로는 직업 없이도 먹고 사는 재벌가 2세가 제 의뢰인이었습니다. 늘 깔끔한 태도로 깍듯하게 고상하게 지냈습니다. 아무리 인권을 위해 일해도, 고상함을 유지할 수 있는 법정이 제 일터였습니다. 

있는 법을 적용하는 변호사로서 때로 냉정하게 “안 되는 사건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잘라내 버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아버지 병원비 대려고 얻어 쓴 고리사채에 묶여 10여년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다가 범죄까지 이르러 결국 징역 살고 나온 의뢰인 얼굴이 요즘 자꾸 어른거렸습니다. 이제 제가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예산 조금만 떼어내면 되는데, 그 얼굴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8월부터,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루도 잊지 못했습니다. 힘들다 힘들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경제상황에서, 막상 무지막지한 특권층 감세법안과 서민과 비정규직은 나몰라라 하는 예산안 통과를 눈앞에 두니 그 얼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몹시 답답했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 되어 새삼 절실해진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치욕스런 대우를 받으면서, 이제 그 고상한 생활은 내 것이 아니구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길은 이런 것이구나, 길바닥에 뒹굴고 모욕도 삼키며 오체투지하듯 낮게 낮게 세상을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구나 비로소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 다시는 쓰러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집권하기 전까지는, 새 세상을 만들 때까지는. 

열흘 남짓, 격동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한나라당의 독주로 국회는 마치 전쟁통 같습니다. 남은 날들도 그러하겠지요. 홍준표 원내대표가 선언한 대로, 올 연말은 전쟁의 연속입니다. 남은 4년 내내 그러지 않으려면 주저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맞설 수밖에요. 

걱정해주신 여러분, 고맙고 죄송합니다. 몸 아프지 않겠습니다. 몸 아끼지도 않겠습니다. 보내주시는 힘 다 받아서 귀하게 쓰겠습니다. 더는 걱정하시지 않도록, 잘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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