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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냐? 죽이자는 것이냐?
게시물ID : humorbest_221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식...Ω
추천 : 50/8
조회수 : 1997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12/26 20:13:46
원본글 작성시간 : 2008/12/26 16:19:59
야후 블로그 펌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냐? 죽이자는 것이냐?  
 
 2008/12/25 오 전 8:38 | 잘난맛에 칼럼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 가운데 하나가 소비의 증가는 절대 생산의 증가를 추월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항상 소비의 증기는 생산의 증가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그로 인해 반드시 잉여가치의 하락이 온다는 것이다. 제품을 생산해도 사가는 사람이 없으니 생산자로서는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생산자로부터 연쇄적인 붕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경우 아닌가? 바로 대공황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대공황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에는 오히려 돈이 넘치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국과 프랑스 등이 빌려 쓴 돈에, 전쟁배상금에, 전시수요에 대한 대금에, 여기에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파괴를 복구하는데 들어가는 전후수요까지, 하여튼 당시 미국은 돈이 넘쳐서 문제지 돈이 없어 문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였다. 돈이 넘쳐 문제였다는 거시. 앞서 말한 그렇게 돈이 넘쳐 개나소나 생산에 투자하다 보니 잉여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경제 전체가 9.11로 쌍둥이 빌딩 무너지듯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이전부터도 예견되었던 것인데, 미국에서도 경기가 주기적으로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현상이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나빠지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생산의 증가만큼 소비의 증가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초과된 생산이 잉여가치를 떨어뜨리고 그것이 경제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여 경기를 위축시키더라는 것이었다. 다만 대공황의 경우는 워낙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의 규모가 어마어마했기에 그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커 미국경제를 아예 나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아마 여기서 또 감을 잡았겠지만 그래서 루즈벨트가 제안한 뉴딜이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잉된 생산과 그를 따라잡지 못하는 소비로 인한 잉여가치의 하락을 바로잡기 위해 생산을 제한하고 소비를 늘이는 것을 주안으로 둔 정책이었다. 말 그대로 이제껏 멋대로 하도록 풀어주었던 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여러 규제를 통해 지나치게 멋대로 하는 것을 자제시키는 한편, 정부가 주도하여 고용을 주도하고,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의 고용과 근로조건을 안정시키는 한편 사회보장을 강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소비할 여력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테네시 개발계획은 단지 그 가운데 하나로서 정부가 주도하여 고용을 일으킨다는 전체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고, 핵심은 이제까지 자유방임으로 내버려두었던 것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적절한 조절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당시 루즈벨트의 뉴딜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국정부조차도 정부가 개입하여 수요를 일으키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기업과 자본가들이 이를 반기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일시적으로 테네시강 개발계획 같은 토목공사를 일으켜 고용을 늘릴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항구적인 것이 될 수 없는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노동자의 고용이나 근로조건의 안정, 사회보장제도의 강화와 같은 것들에서는 기업과 자본가의 협력이 필수였는데, 정작 그들은 그렇게까지 해가며 노동자들에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기업과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반발로 말미암아 뉴딜은 거의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래서 2차세계대전에 대해 음모론이 난무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타이밍이 공교로웠으니까. 루즈벨트가 뉴딜의 실패를 인정하고 손 털었을 상황에 아주 때맞춰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유럽과 태평양에서 동시에 치러진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그토록 그들을 괴롭히던 잉여생산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하긴 2차세계대전 자체가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에도 책임이 일정부분 있다 할 터이니 전혀 공교로울 것도 없을 터이지만.


아무튼 요점은 뭐냐면 생산이 위축되었다고 경기가 나빠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빵공장이 문을 닫으면 집에서 빵을 구워서라도 내다 판다. 옷을 생산하는 기업이 죄다 망해 사라졌어도 집에서 바느질해서라도 옷을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남에게 팔 수도 있다. 단지 효율과 규모의 문제이지 생산이 부족하다고 그로 인해 경제 자체가 스톱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경제가 스톱되는 것은 수요의 부족에 의해서다. 정작 생산하더라도 그것을 사들일 여력이 없을 때, 기껏 생산해서 팔아봐야 그것이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될 때, 어쩔 수 없이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활동의 기본이기에 이익을 추구할 수 없는 경제는 멈춰버리고 만다. 그것이 대공황이었고 그것을 해결해보자는 노력이 뉴딜이고 케인즈주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넘쳐나는 잉여자금이 더 이상 갈 곳을 모르고 금융권을 떠돌다 막다른 골목에서 회수가능성조차 희박한 곳에 묻지마 투자를 한 결과가 아니던가. 지나칠 정도로 과잉되어 있던 자본시장이 결국 갈 곳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서 투자처를 찾아 헤매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같은 어처구니 없는 함정에 스스로 걸려 막대한 자본을 허공에 날린 탓 아니던가 말이다. 그로 인해 시장에 돈이 줄어들고, 그것이 다시 개인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심지어 세계의 시장이나 다름없던 미국에서조차 개인들이 소비할 여력이 없어 기업들이 차 한 대 팔면서 한 대를 끼워팔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경제위기는 생산이 부족하거나 해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과잉된 잉여자본이 갈 곳을 잃고 자폭해 버린 데다, 그로 인해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 수요 자체가 위축되워버린 것이 더 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기보다는 생산을 줄임으로써 위축된 소비로 인해 잉여가치가 더 이상 하락하는 것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고. 즉 지금의 문제 역시 얼마나 더 생산을 늘리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위축된 소비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느냐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는 워낙 빨갱이 때려잡는 것이 지상의 목표이다 보니 빨갱이가 주로 떠들어대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라든가, 고용보장,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와 같은 것은 빨갱이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므로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았던 탓일까?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그저 테네시강 개발계획과 그러한 토목공사를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일으켜 고용을 늘리고 그들에게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소비를 늘렸다 정도마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도 그렇게 배웠으니 아마 이전 세대에서도 그리 다르게 배우지는 않았을 터이니.

그래서 경제위기라고 하니까 고작 한다는 소리가 허리띠 졸라매자는 것이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하니까 노동자의 임금은 동결하고,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깎고, 비정규직을 늘여 고용의 불안을 증대시키고, 사회보장예산도 줄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공기업 직원부터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그러면서 한국식 뉴딜이라고 내세운 것이 4대강 정비사업이다. 테네시강 개발계획을 본받아 토목사업을 통해 고용을 일으키겠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열심히 삽질해서 일당 벌어 허리띠 졸라매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바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 경제대통령 모씨의 경제정책의 핵심이 이것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한국의 영원한 모델이며 선배이며 우상인 일본의 경우도 10년의 장기불황에 뉴딜 하겠다면서 열심히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했었다. 멀쩡한 고속도로 옆에 고속도로 하나 더 놓기. 멀쩡한 다리 바로 옆에 또 다리 하나 더 놓기. 물론 그렇게 닦이고 세워진 새 고속도로와 다리에는 지금도 거의 UFO 나타날 확률로 자동차가 지나고 있다고 한다. 별 쓸데없는 간척공사에, 댐에, 하여튼 공사는 참 열심히 하고 했었는데... 그래서 과연 좋아졌느냐면 절대 아니었다. 여전히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많은 불안요인들을 그대로 안고 있는 채다. 괜히 나라빚만 800조엔 가까이 늘렸지. 감이 잡히는가? 800조엔이다. 무모하기만 한 재정지출의 확대와 토목공사로 는 빚만 800조엔이다. 

더구나 또 하나 간과하는 것이, 그래도 일본의 내수가 견뎌내는 것은 인구가 이미 1억 3천만을 넘어가고 있어 기본적으로 시장 자체가 큰데다, 일본인들 자신은 꽤나 불만스런 모양이지만 우리로서는 보기에 그저 부럽기만 한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로 인해 기본적인 지출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하긴 일본만일까? 어지간한 선진국, 아니 개발도상국 가운데서도 우리처럼 사회보장예산의 비중이 낮은 나라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최소한으로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것들조차 우리는 자기 주머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알량한 비정규직 일자리 좀 늘린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까? 아마 월급 받아봐야 먹고 사는데만 다 써버리고 말 텐데.

정부 스스로도 강조했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단순히 한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 초래된 것이 아닌,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말미암은 탓이 더 크다. 당장 환율이며 주가와 같은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현금이 필요한 데 당장 현금이 없어서 가장 만만한 한국에 투자했던 돈을 빼가는 과정에서 저리 난리가 난 것 아니었던가? 그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 현정부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문제는 돈이 돌지 않아 소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그런데 오히려 소비를 담당해야 할 노동자의 소득을 줄이고, 노동자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고, 그나마 최소비용에 대한 정부의 보장조차 줄이겠다? 그리고 대신 토목공사로 삽질자리만 늘이겠다? 

하여튼 이래서 교과서는 제대로 된 걸 가지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뉴딜이라 하면 그저 토목공사 일으켜서 그것으로 고용을 일으키고 가용소득을 늘렸다 하는 정도만 배우고 있었으니... 일본이 10년동안 빚만 늘린 것을 보고서도 도무지 배우는 것이 없는 것인지...

차라리 오히려 참고할만한 것이 김대중의 정책일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대중 정권의 카드사용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것 역시 기본적으로는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는 전제는 같았다. IMF로 무엇보다 소비가 위축되어 있던 당시, 소비자들로 카드대출을 통해 미래의 자산을 끌어다 시장에 풀도록 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수요를 일으키고자 시도한 것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로 인해 위축되었던 내수가 살아나고, 그 내수에 힘입어 국내경기도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겠다. 물론 이는 미래의 소득을 끌어다 쓴 만큼 미래를 희생하여 빚더미에 오른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기득권자들 입장에서 그러한 개인따위야 국가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별 문제가 아니었을 테고. 김대중이 이전의 군사독재정권과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나마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으니 인정할 뿐.

그런데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경제가 망했다고 하는 남미의 경우도 확실히 참고할 만 하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의 경우 칠레 내 자본가들의 사보타주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경제봉쇄 등의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라는 아주 상식적인 개혁정책들만으로도 한때 8%라는 높은 경제성장율을 달성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서도, 국민들이 궁핍을 각오하지 않고서도, 그들이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한 것 뿐인데도 8%라는 당시로서도 매우 높은 경제성장율을 이루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칠레의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강대국들의 압박, 무엇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말하지만 남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그렇게 가난하지 않다. 남미 각 나라들의 부자들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단한 부자들이다. 자원이며 식량이며 그들이 생산해서 해외에 수출하는 물량도 결코 적지 않고. 문제는 뭐냐면 중간층이 없다는 것이다. 정작 각 나라의 소비를 책임져 줄 중간층이 - 원래는 안정된 임금을 받는 노동자여야 할 그들이 완전히 몰락하여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주 부유한 소수와 최소한의 생활조차 불가능한 다수, 그러니 내수가 제대로 있을 리 없고, 내수가 없는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오히려 좌파정부라 일컬어지는 정권이 남미 각 나라에 들어서고 나서 지금도 경제적으로 많이 호전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긴 국내수요를 완전히 포기한다면야 가능하기는 하다. 국내수요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로지 노동자의 싼 임금에 기대 수출로서 경기를 부양한다... 그러나 이미 남미의 경우에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10년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자체가 경제적인 기초가 튼튼하고 1억 3천이라는 확실한 내수시장이 뒷받침되어 주었기 때문이지, 그저 노동자의 낮은 임금에 의지해,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수출만 늘려서야 내수 없이 소수의 수출을 전담하는 기업이나 개인만이 이익을 보는 최악의 구조로 갈 수 있다. 한 마디로 소수의 부자들은 마음껏 부를 누리고, 나머지는 당장 먹고 죽을 최소한의 수입조차 없는 남미형 경제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뭔 일만 있으면 남미형, 남미형 하며 협박질을 해댔는데, 남미형 경제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소수의 자본가가 다국적자본과 결탁하여 국내의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국민들은 그로부터 소외되어 경제의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남미형이라 하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아프리카에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돈 있는 놈들 마음껏 돈 벌어 쓰고 누리라 하고, 나머지로 하여금 허리띠 졸라매라 할 때 이르는 것이 남미형 경제인 것이다. 선진국 가운데 과연 수출만으로 먹고산다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한가?

케인즈주의가 비판받는 이유는 이미 국가경제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박정희 등의 계획경제가 한계에 부딪혔던 것도 국가경제가 일정규모 이상이 되고 나면 국가가 주도하여 이끌어가기가 버거워지는 때문이었다. 당장 아무것도 없던 때야 국가가 가장 강력한 자본이고 가장 체계적인 조직이니까 혼자서 경제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정부는 가장 강력한 자본도, 가장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조직도 아니게 되어 버리니, 시장의 중심은 어느새 성장한 자본과 기업들에게로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물론 초창기에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대기업들 역시 그들만으로 버티기에는 경제규모 자체가 워낙 커지고 경제구조도 복잡해지기에 그밖의 다른 다종다양한 중소규모의 기업과 자본들을 통해 그러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원래 이것이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는 것일 텐데,

그런데도 무모하게 오로지 기업만을 위해, 대기업만을 위해, 수출만을 위해, 경제의 주체여야 할 노동자를 희생시키자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떻게든 벌이도 쓰임도 줄이고, 악착같이 그저 미친 듯 일만 해서 나라를 발전시키자... 요즘 이런 방식 쓰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하나 뿐이다. 북한. 오로지 북한만이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국민의 노력에서 경제회생의 방책을 찾는다. 오로지 북한만이 그런 짓을 한다. 

지금은 70년대가 아니다. 60년대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가 아닌 the Republic of Korea다.  내가 시대를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살고 있는 나라를 착각하고 있거나... 그렇게 해서 경제가 살아날 시대의, 살아날 나라인가 한 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 개명한 21세기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서, 과연... 어쩌면 저들이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샌가 제대로 시간여행을 해 버린 탓에. 내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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