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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 수도 왕험성, 한반도에 없었다” |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와 융합고고학과 공동연구로 밝혀 |
첫째, 중국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 원정군의 수군은 산동성 북쪽에서 발해(渤海)를 관통해 한반도 평양에 상륙하여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을 공격했다고 돼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양은 중국의 동해(황해를 지칭)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 경로상 모순이 있다.
둘째, 중국은 한나라의 수군이 갑판에 3층 누각이 있는 배를 이용해 한반도로 원정을 왔다고 주장하나, 이 배는 연안과 강에서의 전투용으로 개발된 누선으로 중국 학자들도 이러한 누선의 도양(渡洋) 항해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의 원정의 목표는 넓은 바다를 지나야하는 한반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나라의 수군이 바다를 건너 대동강에 상륙했다 하더라도 대동강의 하구는 현대 해병대도 상륙하기 어려운 조류가 빠른 지역이며, 대동강은 폭이 좁고 물이 얕아 한나라의 수군 7천 함대가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 강이다. 따라서 한나라의 수군이 상륙하기에는 대동강 하구와 상류 모두 기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부적합하다.
넷째, 왕험성이 한반도 평양에 위치했다는 기존 학설에 따르면 한나라의 육군 5만이 중국 하북성에서 한반도까지 행군하는 동안 8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한나라 육군이 8개의 강을 건너는 동안 위만조선군의 상당한 저항이 펼쳐졌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기록상 위만조선군의 저항은 한번 밖에 없었다고 되어있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다섯째, 한나라 육군의 출발지와 평양과의 거리는 육로로 약 1,300km이며 이처럼 먼 거리를 보급부대를 제외하면 겨우 일개사단 규모인 한나라의 육군이 평양으로 원정했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특히 연구팀은 중국 하북성에서 모집한 죄수들로 구성된 한나라 육군 병사들이 긴 행군기간 낙오하거나 탈영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상식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여섯째, 위만조선의 수도가 한반도 평양일 경우 작전 거리나 환경 상 한나라의 육군과 수군의 합동작전에서 유기적 협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군수지원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일곱째, 기존 학설에서는 한나라 수군의 출발지가 한나라 육군의 출발지 보다 후방에 있다고 하지만 한반도 평양 원정을 목표로 했다면 수군은 보급 문제 상 평양에서 최단거리 지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따라서 한나라의 수군이 육군보다 후방에서 출발했다는 기존 학설은 군사적 관점에서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고 연구팀은 강하게 지적했다.
이와 같이 연구팀은 총 10건 이상의 모순점을 들어 위만조선의 수도 왕험성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요동반도 혹은 하북성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연구팀은 군사학적 분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해군본부 등 관련 군 기관에 검토와 토론을 거쳤다.
이 논문의 성과가 파급되면 동북아 국제관계와 국내 사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지역에 대한 고대로부터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중국은 명분을 상실한다. 또한 위만조선 왕험성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고 따라서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 일본 총독부 지침을 답습한 기존 관점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나아가 조선총독부의 역사관 계승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과 시정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others/newsview?newsid=20150720111530242 http://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