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춘추시대 송양공(宋襄公) 을통해본 오유
게시물ID : history_221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보킹
추천 : 0/9
조회수 : 883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7/24 06:00:46
BC480년 초, 홍수라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송나라와 초나라의 대 결전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宋나라 임금은 송양공(宋襄公), 장수는 공자 목이(公子 目夷)이였으며, 상대방 초나라 장수
는 유명한 맹장 성득신 이었고 양국의 군사력 규모는 楚군이 두배가량 우세한 상황이었다.
 
 
송나라 장수 목이는 적의 병력이 월등히 우세하여 이길 수 없으니 회군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 하였으나
송양공은 적은 군사력은 많으나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아군은 인의를 갖추었으니 반드시 아군이 승리할
것 이라고 장담하면서 결전을 명령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을 하천의 양안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병력이 우세한 초군이 드디어 도하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때 목이 장군은 적 도하 시 기습공격을 감행한다면 일거에 적을 수장(水葬)할 수 있으니 즉시 공격할 것을
주장 하였으나 송양공은 “仁義” 라는 군영의 깃발을 가리키며 적이 어려울 때 공격하는 것은 떳떳치 못한
처사라고 오히려 목이를 비난하고 공격을 허락 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나고 초군이 도하를 완료하고 교두보를 준비 하고 있을 때 목이는 다시 도하 시 만은 못하더라도
지금 전열을 갖추지 못한 적을 공격하면 어느 정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다시 건의 하였지만 역시
송양공은 인의만을 다시 내 세우면서 진을 치지도 않은 적을 공격 한다면 일시적 이득은 취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세에 지탄을 받는 부끄러움이 될 것 이라면서 또한 공격하기를 불허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전열을 갖춘 초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고, 이에 맞선 송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채 일격에
대패하고 말았으며 송양공 역시 이 전투에서 적장의 칼에 전사하고 만다. 이 고사를 들어 지나치게 명분에 얽매어
현실을 인식 못함으로서 낭패를 보는 바보스런 경우를 비웃는 말로서 요즈음도 자주 사용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한다. ※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세줄요약
 
춘추시대 초나라vs송나라 싸움남
 
송장수가 도하하는 적들을 기습하자고 건의하나 송양공이 인의仁義를 따지며 거부함
 
결국 조내 똑똑한척 하던 씹선비 송양공에 의해 송나라 멸망.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