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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경제성장의 허구
게시물ID : bestofbest_2217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강놤쥴리아나
추천 : 244
조회수 : 30574회
댓글수 : 8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10/27 14:04:29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0/27 06:04:07
1. 화폐개혁의 실패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군사쿠데타로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정권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박정희가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1961년도 한국의 GDP 순위는 92위로서 1960년 장면정부 시절보다 21위나 떨어졌다.) 
재정적자는 물론이고 인플레이션이 점점 위험 수위에 올라가자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6월 9일 저녁 밤 10시에 '긴급통화조치'를 실시한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누적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빨리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화폐개혁'을 통해 부정축재자와 화교의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군인들로 구성된 '혁명위원회'는 부정축재자들은 검은돈을 몰래 숨겨 놨을 것이고, 화교는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있어 현금을 다발로 집에다 모아 놨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6월10일 자정을 기해 발표된 2차 통화개혁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1962년 6월10일부터 구 ‘환’화의 유통을 금하고 신 화폐인 ‘원’화를 발행한다. 
- 신화폐 ‘원’과 구화폐 ‘환’의 환가비율은 원 1에 대하여 환 10으로 한다. 
- 구권과 지불어음은 6월10일부터 17일까지 신고 또는 예입해야 한다. 
- 17일까지의 생활비로 세대별로 1인당 500원 한도내에서 신권으로 지불한다등 이었다. 
이 중 "기존 화폐 ‘10환’을 신 화폐 ‘1원’으로 바꿔준다는 것"은(이후 대한민국 화폐는 지금까지 ‘원’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원화가치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는 통화량을 줄이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박정권은 화폐개혁을 통해 지하자금 활성화와 인플레이션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하였다.
 하지만 막상 화폐개혁이 시행되자 지하 자금은 별로 회수되지 않았다.  
'긴급통화조치'의 결과로 1962년 6월 17일까지 예입된 총액은 1,873억환인데, 이중에서 1,582억환은 환화이고 나머지 291억환은 수표 등의 지급수단이었다.
 6월 9일 당시 남한의 화폐발행액은 1,653억환이었으므로 71억원만이 회수되지 않은 것이다.
 신고액을 보면, 100만환 이하 금액이 90.5%를 차지하였고, 1억환을 초과하는 경우는 불과 7건(12억)에 불과하였다.
 즉, 박정희는 화폐개혁만 하면 이런 지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박정희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을 현금으로 거액 보관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오히려 금과 같은 현물을 보유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자금의 흐름이 막힌 관계로 가장 빨리 타격을 받은 것은 중소기업이었다. 
약1만7,000개의 업체를 거느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집계한 가동률에 따르면 통화개혁이 실시된 직후인 6월10일의 가동률을 100으로 했을 때 6월20일의 그것은 42.5% 에 불과했다. 
무려 절반 이상의 공장이 가동을 멈춘 것이다.
 통화개혁 후 한달이 지난 후인 7월9일의 중소기업 가동률 역시 57.7%로서, 이로써 한국 기업들은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통시장 역시 사금융 두절로 인해 극단적인 자금고갈 현상을 빚었으며, 유휴자금 활용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경제적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미국 정부의 압력은 물론 국민적 비난이 고조되자 군사정부로서도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긴급금융조치법'을 통해 예금동결을 일부 완화한데 이어 7월13일에는 아예 봉쇄예금에 대한 특별조치를 발표, 예금동결을 사실상 전면 해제해 버렸다. 
통화개혁을 왜 단행했는지 그 목적 자체를 의심케 하는 전면후퇴 선언이었다. 
이로써 화폐단위만 10분의 1로 절하되어 인플레이션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잃게 된 것이다. 
 박정권이 화폐개혁을 통해 거둔 효과는 이렇게 경제 활성 둔화와 인플레이션이었고, GDP 순위가 102권까지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2.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동산 투기로인한 집값 상승 

 1960년대에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은 농촌 붕괴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 막대한 실업과 외화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의 해외송출을 추진했다. 
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게 되었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외면하게 되었고, 그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들도 수출기업에 제공할 차관을 빌리기 위해 보내졌다. 
정부는 당시 간호사와 광부의 봉급을 담보로 잡고 차관을 얻어왔다.  
그렇게 빌려온 차관은 일부는 박정희의 뒷 주머니로 들어가고, 일부는 공장을 지어 서민들을 17시간 노동시키고 무역적자를 가속화시키는데 사용되었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6년간 도입된 상업차관은 약 8억달러로서, 5%가 박정희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는데, 계산하면 4000만달러(100억원)이다. 
참고로 그 당시 한국의 한 해 예산 규모는 1500억원(66년도 기준)에 불과했다. 
국가 예산의 1/15을 자기 돈으로 만든 셈이니 이는 오늘날 규모로 환산해보면 수십 조원에 이른다. (6년간 축적한 부정 재산이 이 정도이니 나머지 임기 동안 축적한 돈까지 합하면 상상을 초월할듯..) 이렇게 박정희의 대국민 수탈 정책은 기상천외하고도 엽기적이었는데, 이명박은 박정희에 비하면 좀도둑 수준이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12/10/200712100500015/200712100500015_1.html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수출경쟁력 확보의 원천이었지만, 수출 증대의 명분 아래 국민들이 희생을 강요당한 건 ‘물가 폭등’에서도 한눈에 나타난다. 
물건을 나라 밖으로 보내고 그 대신 돈을 들여오는 수출 중심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됐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통화량 증대로 이어져 물가가 계속 오른 것이다. 
이는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큰 독이 되었다. '수출입국’이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가능했는데, 오히려 수출 증대가 노동자들에게는 또다시 ‘높은 물가’로 보복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63년 20%, 1964년 29%를 기록하는 등 60년대 동안 해마다 10% 이상 폭등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1974년 24%, 1975년 25%를 기록하는 등 1973년만 빼고 매년 10% 이상의 물가 상승을 기록했다. 
‘독재’뿐 아니라 ‘성장’의 뒤편에서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민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1인당 국민소득은 실질소득이 아닌 명목소득으로서 김재규의 총탄으로 사망할 1979년까지 연평균 9.1%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는데,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이 보다 약 두 배 정도 높은 16.5%를 기록하였다. 이를 물가상승률 대비 경제성장률이라는 절댓값으로 계산해보면 0.55로 역대 정권 중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전두환 1.42, 노태우 1.13, 김영삼 1.42, 김대중 1.25, 노무현 1.51)   '17시간 노동'과 '통일벼 재배'로 대표되는 '저임금·저곡가'에 기초한 ‘내수 억압적 불균형 산업전략’에서는 내부 소비구조가 형성되지 못함에 따라, 한국 경제는 그 뒤 대외여건이 어려워져 수출 증가율이 둔화됐을 때 내수를 확대해 불황을 넘어가기 어려워졌다. 
특히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 지급보증 등 각종 지원·특혜로 자금을 풀면서 총통화 관리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당시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부터 도입한 차관자금의 연평균 이자율은 5~6%에 불과한 반면, 국내 시중은행의 이자율은 25~30%에 이르러 기업들이 차관자금을 도입하여 국내 은행에만 예치해도 막대한 이자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체금리는 이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차관자금으로 이자놀이만 하여도 막대한 이익이 발생할 수 있었다. 
물가 폭등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지자 그때부터 ‘투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대출받은 돈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을 사들여 앉아서 떼돈을 버는 등 투기를 부추겼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 시절의 연평균 지가 상승률은 33.1%로서 역대 정권 중 가장 땅값이 많이 올랐다. 
이는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와 서민들의 판자촌 내몰림 현상을 반영해주는 수치이다. (참고. 연평균 지가 상승률 - 이승만 21.6%, 전두환 14.9%, 노태우 17.7%, 김영삼 -1.2%, 김대중 -0.6%, 노무현 4.5%) 
 박정희 정권하의 저임금 정책은 양극화를 극대화시켰으며, 내수경제가 침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1977년에 총 취업인구의 59.2%인 770만명이 노동자였는데, 이 중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과 최저 생계비는 1977년 당시 4인 가족 최저 생계비가 9만 7천원이었고,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6만 9천원이었다.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4인 가족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1978년 최저 생계비는 11만 9천원, 노동자의 평균 임근은 9만 2천원으로 실질임금은 더욱 낮아진다.
1979년 최저생계비는 15만 3천원, 노동자 평균 임금은 11만 4천원으로 이를 통해 노동자 서민들이 살인적인 물가상승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하루 16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돌아오는 임금은 최저생계비의 5분의 1이었다. 
당시 평화시장 피복노동자들의 77퍼센트가 폐결핵 등 기관지염을, 81퍼센트가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 김진국, <WWW.한국현대사.COM> 217p -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할수록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박정희 정권 당시 노동운동을 하다 잡혀갔던 동일방직, 원풍모방의 여성 노동자들은 재판 중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저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서 옷걱정, 먹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동자로 일해서 먹었던 음식과 입었던 옷보다 범죄자들에게 제공되는 음식과 옷이 더 좋더군요. 
우리 노동자들은 그동안 범죄자들에게 주는 처우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저임금 구조는 박정희 정권을 유지시키는데 가장 큰 정책 중 하나였다. 
 물가가 폭등함에 따라 돈의 가치가 떨어져 환율도 엄청나게 상승하였는데, 1960년 12월까지 달러 당 65원이었던 환율이 집권시기인 1961년에는 130원으로 두 배 상승, 박정희 사망 당시의 환율은 485원에 이르렀다.
 이 수치는 매우 중요한데, 원화 가치 하락은 기업 입장에서 볼때 물건을 만들어 외국에 판매하면 국내에 판매할 경우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들은 실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분야의 물품들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기업 역시 기업 나름대로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므로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수입은 더욱 급증 하게되었고, 물건이 팔려나갈 수록 무역적자가 계속되어 박정희 임기 말에 이르면 총 250억달러(당시 돈 12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000조 이상)의 무역적자가 나게 된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박정희 재임 기간(18년 동안) 연평균 55조의 무역적자가 난 셈이다. 
이러한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시 정부와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 정책을 펼치게 되고 정부는 화폐를 더 발행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요약- 경제개발계획을 세웠지만 비젼이 없어서 미국에게 빠꾸먹고 케네디가 하라는데로 수정해서 고치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해나감.
화폐개혁을 망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엄청난 실패로 돌아감.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1%인데 물가상승률이 기본 16%였던 나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극도로 떨어져 연평균지가 상승률이 무려 33.1%... ㄷㄷ 
지금의 부동산버블의 책임자이며 주범.
차관을 받는데 그중의 100억을 6년간 자신의 정치자금으로 사용. (당시 대한민국 예산 1500억)
지금으로 따지면 수십조의 돈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인간.
연평균 무역적자 55억....
노동자들은 하루평균 17시간을 일해야했음.
농촌붕괴의 주범.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모든 문제점들의 시초가 박정희의 18년동안의 경제정책이었음.
박정희 찬양론자들은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막고살기 좋아졌지않냐 박정희 없었으면 우리는 망했다고 하는데 개소리임.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99%가 미국과 일본의 원조와 지원에서 나온 것.
다시말해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우리의 경제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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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지브리
2015-10-27 07:10:21추천 4/14
댓글 3개 ▲
2015-10-27 11:38:44추천 38
패배주의 냉소주의는 박근혜의 일용할 양식
2015-10-27 15:07:07추천 1
좌빨 소리를 들어도 사실은 사실인데요.
2015-10-27 17:05:12추천 0
왠 놈팽이 하나가 나라를 어떻게 작살내는지 알 수 있네여... 독일고 그렇고...
2015-10-27 08:27:51추천 0
이글을 ㅇㅂ에다 던져줬음 합니다
댓글 3개 ▲
2015-10-27 10:41:40추천 39
3줄 넘어가면 이해를 못해요.. 병신들이라..
TY
2015-10-27 14:11:10추천 6
3줄요약

지금까지 박정희가 경제살렸다는 말이, 사실 쌩구라임.
오히려 미국이랑 일본의 도움이, 당시 성장의 99%를 차지함.
박정희가 하는 일은 하나같이 도움 안되고, 발목만 잡음.
2015-10-27 15:50:26추천 0
3줄이나 이해하다니. 3글자 아닌가요.
[본인삭제]제이멕스
2015-10-27 08:58:45추천 55
댓글 1개 ▲
2015-10-27 10:49:57추천 38
왜 진리인줄 알았냐면
국정교과서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또한 그러했으니까요.
베스트 게시판으로 복사되었습니다!!!
2015-10-27 10:40:34추천 1
빚을 끌어쓰든 사기를 치든 매출 수치만 뻥튀기하면 은행에서 다 메꿔주는 행태를 학습시킨게 그 시절이죠.

지금 재벌들이 다 그렇게 컸구요.
댓글 0개 ▲
2015-10-27 10:44:00추천 0
이명박이 좀도둑이었다니!!!!
댓글 0개 ▲
2015-10-27 10:46:12추천 0/3
그럼 어떻게 성장했었어야 할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궁금함
댓글 15개 ▲
2015-10-27 10:53:26추천 1
2차대전 종전 후 핀란드 정책 ㄱㄱ
어떻게 국가를 일으켰는지 검색

즉.. 2차대전 종료후 북유럽국가들은 어떻게 했는지 잘 살펴보셈..

우리가 6.25겪은거랑 비슷한 상황임
2015-10-27 11:05:26추천 5
아마 비슷하게 갔을겁니다.언젠가든 중화학 공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외자가 필요했을거고 내수붕괴 통화량 급증 등으로 성장과 인플레가 함께 왔을거죠.

경제발전의 모델은 단 하나 뿐입니다. 1차산업에서 돈모아서 경공업으로 넘어가고 경공업으로 돈모아서 중공업으로 넘어가고  또 돈모아서 금융 서비스 쪽으로 넘어가고......

박정희가 했던거는 경공업으로 돈을 모으는 과정을
단축시켰다는 거지요. 시민의 피와 눈물로
아마 자기 아니면 적대국가 북한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박정희보다 40년도 빠른시기에 비슷한 생각을한 독재자가 있었죠.
스탈린이라고요. 소련을 10년만에 깡촌 농업국가에서 철강 전기 생산량 세계2위로 올리고 남들이 대공황으로 -10% 성장률을 보일때 . 혼자 매년 10% 성장했죠.
2015-10-27 11:26:52추천 2
뾰족한 방법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방식으로 뻘짓 안 하고 지들끼리 혜쳐 먹기만 안했어도
뭘해도 지금 보다는 나았을 겁니다.
당시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요충지중에 하나였죠.
미국은 일본을 태평양 마지막 방어선으로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팍팍 밀어 줬지요..
한국은 소련, 중국, 북한 바로 앞 1차 저지선 총알받이 였구요..
이런 요충지 독재자 라면 미국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외교력을 더 발휘해서 일본 만큼  더 받아 오고. ,
받아온  돈 지네 맘대로 해쳐먹지 말고 조언을 더 충실하게 받아 들였다면,,
최소한 이모양 이꼴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2015-10-27 13:18:32추천 11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단 겁니다.
미국이 가만 놔둘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미국이 일본과 국교트고 일본경제에 거의 종속되는 수준까지 만들어놨지요.
박정희 아니라 장면이 대통령 계속햇어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강한 경제를 갖고있을 확률이 높지요.
매년마다 지가가 33%가 오르고 매년마다 무역적자가 55억.
100억 지금으로 치면 몇십조입니다.
그돈만 제대로 안떼먹고 잘쓰고 좀 더 균형적으로 경제운영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겁니다.
박정희 처럼 꼬라박아도 미국이 경제개발계획 다 세워주고 원조해주고 일본에게도 지원받고...
중화학공업은 박정희 아니어도 필수 였습니다.
다만 그 공장들의 위치가 경상도에 치우치지만은 않았겟죠.
2015-10-27 14:39:17추천 2/3
일단 북유럽식은 위에서 미국을 많이 쓰셨으니까 불가능할거 알고 쓰셨을거라 생각하고

더구나 체제경쟁이 가장큰 화두였기에 불가능했고

장면총리가 계속 했다면 중공업까지 간다는건데

그당시는 수출이 경공업이라 부를수도 없는 보따리상이라 봐야했는데

그 적자기간이 산업기반갖추던 시기라고 봐야하는데

중화학공업이 필수라기에는 당시 야권은 반대노선이였고

박정희를 까건말건 그건 자유니까 상관이 없는데

박정희만을 깔시기가 아니지 않나요 지금?

댓글에도 많이 있는데 박정희때 빚이 김영삼때 터졌다는데

역사를 흐름으로 볼거면 박정희때 왜 드라이브를 걸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전정권도 안나올수는 없음

그 정권이 그걸 안했다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세워진 그당시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는거지

본문 댓글 틀린말 하나도 없는데 정답이라고 말할순 없조

왜냐면 우리는 근현대사라 불리는 역사를 냉정하게 3자의 시각에서 배우질 않았으니까

지금 40대형님들(과거 486이 아닌 90년대 학번들) 역사를 배운수준과 30대(00년대 학번들)

들이 배운 교육자체가 많이 다름 이야기만 해봐도 차이가 심함

교육이 그것을 숨겼다는게 아니라 그것을 안봐도 되는 교육으로 변했음

주저리 주저리 썼지만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예전에 박정희 깔때 박정희 시대만 보고 까는거 말고

이승만 정권부터 그 흐름을 냉정하게 까는 글들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적었습니다.

국정교과서가 존나 무서운게

30살인 제가 배운현대사랑 20살 대학 새내기가 배운 현대사가 차이가 있다고 하고

40살 형님들이 배운현대사에도 차이가있슴..

말도안되는 좌파좌파하지만 일괄적으로 의견차이가 생기는 현대사는 책에 넣지 않고 진행했음

결국 좌우편향을 떠나서 자체를 배우지 못하게함

그러니 누구는 공을 말하고

누구는 과를 말할수밖에 없음

공이있다고 과를 덮을수 없고

과가 있다고 공을 치하하지 않을수 없는게 역사인데

지금은 안배운다고 하는게 맞는 말임

지금 국정교과서가 박정희교과서로 가는 느낌은 바람직 하지못함....

보수=박정희 이 공식은 현실에서는 이제 정답이아님

박정희만 깐다고 변하는것도 아니고

냉정하게 이승만정권부터 똑바로 바라봐야하는 시각이필요

우리가 박정희만 언급해서 국정교과서가 취소되거나 축소된다?

그래도 이미 이승만시절을 건들기 시작하면

결론적으로는 기울어진 교과서를 가질수밖에없음

주저리 주저리 써서 죄송합니다.
2015-10-27 15:21:00추천 0/11
이분들 무언가 착각하는데 한국인은
핀란드등의 북유럽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데 핀란드처럼 한다고 경제 성장 한다고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몇번이나 말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성장했을 거란
멍청한 소리는 제발 좀 안했으면 좋겠네요.

멕시코 같은 나라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성장하는게 아니라 저런 꼴이 납니다.
한국민이 멕시코인들보다 국민성이 낫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멕시코는 너무 갔다친다면 한국인들의 민도가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그리스인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까?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국민성은 우리랑 똑같다 못해 거의 판박이 입니다.
인정의 이끌려다니는 것은 멕시코 사람들도 절대 지지 않지요.

지금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복지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의 국민들은
우리와 같은 가족주의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나라들입니다.
파벌끼리 나눠서 지들끼리 해쳐먹는 문화가 없는 나라입니다.
저는 이놈의 가족주의가 부정부패의 근원이 된다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고요.

한국인은 틈만 나면 파벌을 일으키고
잘모르겠지만 문화적으로도 의외로 부정부패에 대해서 관대합니다.
예를 들어 스승의 날 선물 바치는 행위는 외국에선 금지되어 있는 사항인데 한국은 그런거 없죠.

그들과 우리는 그 성향이 전혀 다릅니다.

엿같지만 박정희가 독재짓 안했으면
감히 경제성장은 불가능 했다고 생각합니다.
2015-10-27 15:36:31추천 1
이래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 이런 댓글에 전혀 신뢰를 못느끼겠음.
2015-10-27 16:16:39추천 4
저는 북유럽모델은 얘기하지않았고요
멕시코를 예로 드십니까?
멕시코랑 우리나라가 어떻게 같나요?
우리는 공산화에 반대되는 표본같은 국가 였습니다.
우리나라 위치를 보세요.
중국 러시아...
미국이 눈에 불을 키고 도와주고 원조를 얼마해줬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심지어 경제개발 모델 계획까지 미국이 강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온건 순전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순박하게 하루에 17시간씩 일한 노동자들 덕입니다.
어디서 그게 박정희의 덕이라고 하십니까?
박정희가 총맞아죽었을때 우리나라 gdp어느 수준이었는지 아십니까?
2015-10-27 16:17:59추천 4
아무것도 안해도 이정도 된다는게 아니라
박정희가 아니라도 미국의 원조를 뒤에엎고
"조금이라도 더 도덕적 혹은 민주적인 지도자"가 이끌엇으면
더 나앗을것 이라는걸 말하고자 하는게 아닐까요??
좀만더 뇌물 안처먹고, 원조받은거 제대로 산업에 투자하고 이런것들 말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면 무정부랑 다른게 뭔가요
멕시코는 정부가 없나요?멕시코는 아무것도 안햇나요..? 부정부패 햇잖아요..
혹시 그시기엔 부정부패 안할수없엇다는걸 말씀하고 싶은건 아니죠?
독재 할수밖에 없엇다고 말씀하시는건 아니죠??
2015-10-27 16:24:56추천 1
미국의 대대적인 원조는 전후 딱 50년대 초까지입니다.
그 후부터 미국은 한국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못느낍니다.

처음에는 일본처럼 엄청난 성장을 할거라 기대했었는데
전후 7여년동안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슬슬 돈만 먹는 한국에서 손을 빼려고 했었고요.

이유는 뻔합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 정도가 너무 심해서
미국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전후 한국민들이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냐면 그것도 아니죠.
당시 한국은 그냥 농경 국가였습니다.

일제가 지들이 먹을 쌀을 위해 한반도 아래는
공업단지를 조성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인력도 없었죠.
2015-10-27 16:28:09추천 0/3
부정부패를 쿠데타로 엎고 나선게 박정희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늙은이들이 그를 그렇게나 추앙하는 것이고요.
당시 쿠데타를 할려고 마음 먹었던 군부 실력자는 박정희만 있었던게 아니었고요.
2015-10-27 16:29:54추천 0
죄송... 미국의 원조는 전후 50년대 말까지입니다.
2015-10-27 17:09:15추천 1
26남자사람님 밑에 댓글에 박장희정권때 gdp순위와 동아시아 경제성장률
그리고 미국 차관까지 다 써놨느니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박정희의 힘으로 나라를 엄청 대단하게 발전 시킨줄 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미국 일본, 피눈물흘리면서 일했던 노동자들, 베트남파병된 군인분들이 나라먹여살렸습니다.
그렇게 지원을 많이 받고도 18년동안 gdp순위 7위 올려놓은게 전부입니다.
동아시아국가들 경제성장률중애서도 중간정도 밖에 안되요.
2015-10-27 17:20:45추천 3
아리카스미./
길게 썼는데 막줄에 핵심이 있네요.
독재짓 안했으면 경제 성장이 없다... 왜냐면  한국인인 파벌이나 일쌈고  부정부패에 관대해서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정희가 부정부패로 쿠테타로 막은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논리네요.  착한 쿠테타... ㅋㅋㅋ
국민을 개병신으로 보는것은 또 식민지 근대화론 같기도 하고..ㅋㅋ
어디서 주워 쳐 듣고 와서 시부리는지 잘 알겠습니다.
왠지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집니다.

한국인 무시하지마라 .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된 많은 나라들 중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다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냈던 것이고. 중간에 다카시 전대갈 노가리 없었으면 더 빨리 이뤄냈을꺼였다.
자발적 노예는 되지 말아야지..  벌레가 자립심이 없어..
2015-10-27 17:27:09추천 1
제가 gdp순위와 미국원조받은 자료 보여드렸더니
이리키스마 님이 저 밑에 댓글에 정중하게 사과하셨습니다.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2015-10-27 11:34:09추천 1
제목만 읽었는데 저도 박정희시기 경제발전이 왜 그나마? 인정하는 부분인지 모르겠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거치면서 빚으로 만든 고속도로 땅 공장이 결국 김영삼 시절 터진 것일텐데
댓글 0개 ▲
[본인삭제]아산시배방읍
2015-10-27 11:36:52추천 1/30
댓글 9개 ▲
2015-10-27 11:57:10추천 14
정말 순수하게 경제성장을 이뤄냈다고 보기엔 뭔가 많았죠

빚이라던지, 빚이라던가... 빚같은거요

김영삼시절 imf가 단순히 김영삼이 뭐 석유잘못사서 빚생겨서 일어났던게 아니잖아요? 앞에 대통령부터 꾸준히 빚내서 하다하다 부도가난거지
[본인삭제]깔멸꽁
2015-10-27 12:04:29추천 14
2015-10-27 12:07:18추천 0/6
인정할건 인정
[본인삭제]훼르쭈
2015-10-27 12:34:55추천 4
[본인삭제]유기농꿀
2015-10-27 14:15:00추천 11
[본인삭제]iscream
2015-10-27 14:20:33추천 5
[본인삭제]곰보배추
2015-10-27 15:52:27추천 0
2015-10-27 16:03:24추천 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5-10-27 17:08:38추천 0
아니 떠 먹여 줘도 아니라고 뱉으면 그게 종교지요.. 에휴..
2015-10-27 11:43:57추천 1
오랜만에 긴글 정독했네요
주변에서도 그렇고 배울때도 박정희는 독재자.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킨사람이라 듣고 배웠는데 이글보니 헛웃음만ㅋㅋㅋㅋ
명바기가 좀도둑수준이라니
댓글 0개 ▲
[본인삭제]연애고자님
2015-10-27 11:49:56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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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깔멸꽁
2015-10-27 12:01:54추천 2
댓글 4개 ▲
2015-10-27 23:18:59추천 0
월급을 담보로 잡지는 않았지만 저때 당시 독일에서 광부나 간호사는 3D 업종으로 분류될만큼 근무환경이 안좋았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저런 직종에 인력을 투입해주는 대신 차관을 받아왔다고 알고있는데.. 너무 예전에 본 자료라 정확히 링크를 걸어드릴수가 없네요 ㅠ
[본인삭제]깔멸꽁
2015-10-28 02:43:43추천 0
[본인삭제]깔멸꽁
2015-10-28 02:44:51추천 0
[본인삭제]깔멸꽁
2015-10-28 02:51:20추천 0
2015-10-27 12:48:24추천 1
제가 봤을 때는 박정희 시기에 사회간접자본과 생산재 산업의 성장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러나 일단 이를 박정희가 한 덕분이라고 주장하기 어렵구요. 더욱이 물가앙등으로 인해 경제에 모순이 폭발하기 직전이었죠. 10.26 안 일어났음 어차피 중남미 독재정권들처럼 결국 경제운용 실패로 끌어내려졌을겁니다.

객관적으로 박정희시기 물가상승으로 인한 ㅈ망을 피할수 있었던건 전두환시기 3저호황과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의 저물가 정책이거든요. 전 문어대가리를 사람새끼로 보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5공시기 경제정책이 잘못되었음 우리나라도 중남미처럼 중진국 함정에 빠져서 그대로 미끄러졌을겁니다
댓글 2개 ▲
2015-10-27 13:14:46추천 0
문어가 유일하게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김재익에게 경제를 넘긴거라고 생각합니다(....)
2015-10-27 17:15:31추천 0
저도 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한국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게 전두환 시대입니다.
전두환이 잘한 거 딱하나...
김재익을 기용한 겁니다.
베오베 게시판으로 복사되었습니다!!!
2015-10-27 14:07:47추천 0
다카키 마사오 진작에 총맞아 뒤졌어야 했는데!!
댓글 0개 ▲
2015-10-27 14:16:31추천 1
박정희가 경제개발했다는 인간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

어디서 다까끼 따위가.. 갓 미국느님이 다 해준것을..
댓글 0개 ▲
2015-10-27 14:21:42추천 2
박정희 빠는 인간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 강탈하고 나서 10년이 넘도록 북한에게 경제적으로 후달렸다는 거
그리고 한반도는 체제경쟁의 경기장이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남한이 북한에게 경제적으로 털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직간접적으로 서포트를 많이 함. 대미수출도 그 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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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4:33:02추천 2
18년간 흑자 한번 못낸 인간이 박정희임 ............. 세번  경제 말아 쳐먹음  69년도  73년도  78년도 ..........
김재규의사에게 확인 사살 당할때  gnp 1680    물가 18%폭등 세계 4위 빚쟁이 국가     전두환이 쿠데타후  일본가서 60만달러 빌려
국가 부도 막음 .....................
댓글 0개 ▲
2015-10-27 14:34:35추천 1
북한이 경제 발전 하자  . 미국이 이러다 큰일 난다며  경제 팀을  박정희에게 보냈으나 워낙 돌대가리라  못 알아들으니  할수없이  미국이  한국에서 나는 못든걸 수입해줌 .. 더구나 관세도 안 붙이고 .................그래도 흑자 한번 못낸 인간이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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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4:36:00추천 0
전두환 노태우때도 경제는 쭉쭉 컷음. 무려 88서울올림픽도 개최~...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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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4:55:03추천 0
시절이 그런 시절이었기도 했죠.
요즘 고가 스마트폰은 못 사더라도 일반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듯이 문명의 혜택을 덩달아 받았던 시기였고, 전쟁 후에 극빈한 삶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되니 경제 성장에 대한 체감은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노인들에게는 그 시절이 청춘이었으니 얼마나 미화가 되겠어요?
상황이 짜증은 나지만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40대 이하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돌대가리라고 밖에 설명할 말이 없는 것 같네요.
댓글 0개 ▲
2015-10-27 14:58:01추천 8
웃긴것은 그 당시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었던 대만이 우리보다 더 성장률이 더 높았음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초고속성장을 장개석의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장개석은 나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르니 늬들끼리 알아서 해 나는 중공군과의 안보만 내 관심사다

이게 장개석 입장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총통은 그냥 경제를방치한것이 우리보다 더 높은 경제 성장 기록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었는데 우리보다 경제성장률이 다 높음

그보다 상황이 좋은 대한민국은 한국 일본 대만 삼각 경제 블록에서 최하위권 기록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면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경제를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놔두고 숨만 쉬도 성장할 경제에 괜한짓해서 오히려 경제성장률만 깍아먹어 동북아 경제 블록중에 꼴지를 기록한 셈이ㄷ되어버림
댓글 0개 ▲
2015-10-27 15:28:33추천 0/3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잡을 때
한국은 당시 전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최빈국이었습니다.

제발 좀 아무리 밉고 싫어도 기본적인 사실관계은 알아둡시다.
댓글 5개 ▲
2015-10-27 15:31:57추천 2
유신헌법 만들고 영구집권 하려던 시기는 이미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죠.

게다가 최빈국에서 뭘 시작했으니 경제성장률이 높아보이는건 당연한겁니다.
그와중에도 엄청 뛰어난 수치를 보이진 않았어요.
[본인삭제]곰보배추
2015-10-27 16:05:40추천 0
[본인삭제]곰보배추
2015-10-27 16:08:16추천 2
2015-10-27 16:15:50추천 0
2015-10-28 17:27:02추천 0
그걸 인정하면 솔직히 일제가 기간 시설 깔아놓은 것도 동북아 구석탱이의 야만국에다 근대문물을 들여놓은 공을 찬양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말해 일본이 근대식 문물을 체계적으로 깔아주고 가긴갔거든요. (대신 몇 배를 수탈해가서 문제지)
2015-10-27 15:29:04추천 2
경제의 규모만 커졌을뿐 질은 매우 안좋아 졌죠..
그 규모증가도 박정희 공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투입때문..

박정희빠들은 그 규모증가만 보고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좋아진거 아님..
댓글 0개 ▲
2015-10-27 15:35:08추천 0
언론통제도 한 몫했을듯 합니다.
불리할만한 내용들은 전부 검열삭제 였을테니..
댓글 0개 ▲
2015-10-27 15:35:35추천 1
그냥 흔히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 발전이 되지 않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느냐. 독재는 불가피 하였다 등등.

마치
독재자->경제발전->민주주의
이런 루트를 따라가는 것처럼 표현하는데

박정희가 이런저런 산업화한 다음에 민주주의 할라고 했나요?
아니죠 오히려 영구집권 하려고 했죠.
독재하다가 경제성장한 다음에는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는건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그 예시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댓글 2개 ▲
2015-10-27 15:59:38추천 0
독재자 경제발전 민주주의 루트는

독재자가 경제발전 후 알아서 하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발전엔 독재가 효율적이고 경제가 발전해서 국민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국민의 정치적 지식수준과 열망이 커져서 독재자를 몰아낸다로 봐야할 겁니다.

저 이론이 진리라고 동의해서 이 답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해당 논리구조에 대해서 오해를 한 상태로 글을 쓰신거 같아 답글 남깁니다
2015-10-28 01:08:17추천 0
싸우려는 의도는 아니고

쉬르스트뢰밍님이 언급하신게 오히려 정상적인 구조입니다. 단지 경제발전에 독재가 효율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요.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이 일어났었습니다. 70년대 80년대 학생운동에 불이 붙었었고 노동운동도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독재에 대해 저항을 했죠.

즉 저는 김재규에게 죽기 전까지 독재자를 몰아내지 못한 국민들 탓을 하는게 아니라

박정희가 시간이 지난 뒤 오히려 영구집권을 꾀했던 것으로 독재자->경제발전->민주주의 루트 및 당시 경제로써 독재는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박정희를 옹호하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지요.
2015-10-27 15:55:36추천 1
공이과팔 쯤 이라고 봐도.

독재국가면서 도로깐거 (영동선이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효율면에선 경부선이 가지는 이점은 무시 못하죠) 거기다 추후 물동량 증가시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 것

그리고 KIST를 만들고 중공업을 추진했다는 건 현대사의 여타 독재국가에 비해 우수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대만과 같은 소기업 체제가 더 나았을거란게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그러나

일단 삶의 전반기가 동료 동기 국가에 대한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

친일잔재청산을 끝내 못했다는 것(지금까지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죠. 뭐 본인부터가 친일이니 무리가 있었겠지만)

본인도 본인이지만 해쳐먹어도 너무 해쳐먹었다는 것(해쳐먹으려다보면 자연히 해쳐먹게 할만한 기업 몇몇 위주로 몰아주기가 되는게 자연스럽죠, 이것도 두고두고 나라 발목을 잡내요)

지역갈등 및 반공을 적극적으로 정치에 매우 원색적인 방법으로 활용했다는 것(정말 개인적으로 제일 개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함)

가장 ㅈ 같은 건, 본인을 굉장한 국민적 영웅으로 선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모 시에서는 반인반신의 탄신제도 지내고 학교명도 바꾸자 하고 도로명 도시명도 바꾸자고 할 정도니까요. 이정도면 뒈지고 욕쳐먹은 히틀러보다 고단수 인듯

역사에 만약은 없으므로 비록 빚덩어리이나 중공업 화학으로 나갈 기틀을 다질 수 있게 없는 땅덩어리에 공업입국이라는 방향성을 결정해서 자본투입을 한 점은 인정해야한다고 봅니다. 국가 예산은 한번 흐르기시작한 방향은 틀기 어려우니까요.

뭐 전반적인 결론은 역시 아쉬운 점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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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삭제]곰보배추
2015-10-27 16:00:54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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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6:04:10추천 1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박정희의 능력을 평가해보자면, 비슷한 조건의 경쟁국과 비교해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집권기간동안 1인당 GDP순위의 변화가 그 지표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1960년 70위
1961년 91위(5.16 쿠데타)
1965년 105위
1970년 83위
1975년 79위

다른 나라들도 반인반신의 영도력을 지닌 지도자가  있었던거겠죠?
그와중에 무역수지 흑자를 단 한번도 못냈던건 아마 기분 탓일 겁니다.

그리고, 박정희 말년에 경제가 어려워지자  포항앞바다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뻥카를 쳐서
민심안정을 시키려 했던 추태도 빼놓을 수 없죠.
댓글 16개 ▲
2015-10-27 16:11:02추천 0/4
이건 자료를 보여주세요.
1960년대 전후 한국이 세계 70위라는 사실은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네요.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박수를 쳐주던가 합니다.
새누리당하고 도대체 뭐가 다른 겁니까?
2015-10-27 16:27:31추천 3

님이 그렇게 바득바득 우기시는 gdp 자료 여기있습니다.
박정희 재임 기간만으로 좁혀 봅시다.
5.16 쿠데타 전 해인 1960년에 71위이던 것이 1965년에는 102위까지 떨어집니다.
그리고 10.26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에는 다시 64위가 됩니다.
고작 7단계 상승에 그친 겁니다...
순위만 놓고 보면 대략 10% 정도의 성장을 한 셈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30위 정도를 떨어뜨려 놓은 다음에야 다시 원래 있던 자리 수준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타동아시아 경제성장률입니다.
기타 동아시아 : 1965년 ~ 1980년(아시아 개발은행 자료)

1. 일본 : 10.5%
2. 싱가포르 : 10.1%
3. 대만 : 9.8%
4. 한국 : 9.5%
5. 홍콩 : 8.6%
2015-10-27 16:29:30추천 4
자료를 보여줘도 거짓말이라면서
알지도 못하시면서 상대방 비판하고 자신만은 마치 고귀한
중립적인듯이 선동하시는게 참으로 안타깝네요
저는 자료 다내놓고 말하지않습니까?
근데 님은 그저 박정희 아니었음 안됐다 인정할 건 해야한다
오로지 이논리로 말하시면서 멕시코를 비유하시니....
2015-10-27 16:34:57추천 0/3
출처를 보여주세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랑 비교해 보겠습니다.

얾마나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2015-10-27 16:37:17추천 2
이리카스미//
링크보시고도 아직도 거짓말 타령입니까?

박대기기자의 어머님 말씀을 인용하고 싶네요.
"영어를 배워야 진실을 안다."
2015-10-27 16:39:33추천 4
국가 gdp순위나 동아시아국가 경제성장률이 다른 자료가 어디있나요.
그리고 60년대 이후 미국 지원없다고 하셨는데요
베트남 파병 그리고 일본과의 국교를 트면서 그돈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2015-10-27 16:42:07추천 3
이리카스미//
혹시나 볼줄 모르실까봐 말씀드리는 데,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ast_and_projected_GDP_(nominal)_per_capita
첫번째 표의 원하는 년도를 두번 클릭하셔서 내림차순으로 정렬해보세요.
2015-10-27 16:43:57추천 0/2
분명히 대대적인 지원이라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재임기간 1인당 GDP라고 적힌 저 자료의 출처를 묻는겁니다.

위키 자료는 신뢰합니다만 저로써는 조금 더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2015-10-27 16:44:43추천 0/2
제가 알고 있는게 잘못되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아닙니다.
2015-10-27 16:46:32추천 3
세계은행입니다.
여기 링크도 있네요.
http://databank.worldbank.org/ddp/home.do?Step=12&id=4&CNO=2
2015-10-27 16:51:38추천 3
그럼 월남파병이나 한일정상회담하고 국고터서
원조받은건 지원이 아닙니까?
참 황당하네요....
실제로 월남파병시기에 박정희가 돈받아먹은게 얼만지 한번 계산해보세요.
미국 일본 없었으면 우리나라 죽어도 발전 이렇게 못했습니다.
2015-10-27 16:55:16추천 6
그많은 지원을 받고도 gdp순위는 겨우 7단계올려놉니다.
18년동안요.
그리고 경제성장률도 다른 동아시아보다 전혀 뛰어나지않아요.
지가상승에 무역은 18년간 평균 55억씩 적자냈습니다.
55억이면 지금시가로 얼마인지 아십니까?
노동자들은 피땀흘려서 17시간씩 일했습니다.
이런나라가 어디있습니까?
베트남에 파병보내서 돈받아먹고 일본과 한일회담해서
일본 죄 묻지않겠다는 약속을하고 돈받아먹고 국교틉니다.
일본이 지금도 그 정상회담때 일로 자기들은 이미 배상했다고 말합니다.
나라를 이꼴로 만들고도 절대 뛰어난게 아니라고요.
2015-10-27 16:57:35추천 1
88올림픽님이 올리신 자료가 제가 올린 자료와 같습니다.
세계은행자료인데 제 자료는 한국말로 바꿔서 그래프로 나타낸거지요
2015-10-27 16:57:39추천 2/3
강놤쥴리아나>
88올림픽Ω>
맞는 말씀입니다.
미국 일본 없었으면 우리나라 죽어도 발전 이렇게 못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자료가 명백해서 뭐라고 반박을 못하겠습니다.
거짓말쟁이라고 몰고간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기분 나빴으리라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출처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2015-10-27 17:01:06추천 5
이리카스미님 처럼 박정희신화를 너무나도 세뇌될 정도로 듣고 큰사람들이 많아서 어떤 지표를 볼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것이 국정교과서의 폐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저도 박정희를 인정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국방부분이요.
미국에게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해보려하고 핵을 만들려고 시도할 정도의 배짱은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박정희 없었으면 우리도 없다?
이건 진짜 웃기는 소리입니다.
이번 기회에 잘 아셨으면 좋겠네요.
2015-10-27 16:58:09추천 0
화폐개혁으로 개판만들어논건 알았는데
단편적으로 환에서 원으로바뀌면서 인플레가 생겼다 라고만알았지 이런 자세한 정보는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댓글 0개 ▲
2015-10-27 17:19:19추천 1
네. 저도 이 글이 사실임을 아는게.. 미국 행정부 출신의 저자가 쓴 책에서도 이것과 똑같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진보계열중에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게 씁쓸하죠.. 보수는 말 할것도 없고... 아마 보수쪽 고위 정치인이나 교수들은 이런 사실을 일고있으면서도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만 하는 것일 수 있죠.. 박정희를 숭배하기보단 박정희를 이용해 지들 입지를 유지하는...
댓글 0개 ▲
2015-10-27 17:19:52추천 0
박정희 경제개발신화가 이따구 사실이라면...
븅신같이 정치해놓고
사상조작으로 반인반신 경지에 올라있다는건가!!!
진짜 국정교과서 하믄 안될 이유네!!!
댓글 0개 ▲
2015-10-27 17:25:52추천 0
기성세대 박정희 지지의 가장 큰 영향은 집값 폭등이 아닐까함. 많이 오르기도 했죠 그동안
댓글 1개 ▲
2015-10-27 17:29:47추천 3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지가가 연평균 33.1%씩 상승했습니다.
집값의 3분의 1이요.
18년동안 꾸준히...
이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자기집하나 사기가 불가능한 나라가 됐지요...
2015-10-27 17:56:39추천 0
화폐개혁 실패이전에 주가조작이 있습죠.이때 이미 나라가 흔들흔들
댓글 0개 ▲
2015-10-27 18:58:11추천 0
명박이 좀도둑수준이면 와
댓글 0개 ▲
2015-10-27 20:13:45추천 1
박정희 정권 말에 이미 경제가 파탄 지경이라 5년만 더 집권했으면 IMF가 80년대에 왔을지도..

그래서 문어가 경제는 손 안대고 전문가에 맡겨 둠.

그나마 문어 때 경제가 성장했다는 말은 이해해도 박씨 때는 글쎄..
댓글 0개 ▲
2015-10-27 22:37:00추천 0

댓글 0개 ▲
[본인삭제]스테판카레
2015-10-28 00:29:04추천 0
댓글 0개 ▲
2015-10-28 16:57:55추천 0
이상태라면 내년에 화폐개혁한다고 하는거 아님???
댓글 0개 ▲
2015-10-28 17:28:12추천 0
오히려 경제개발 독재신화가 어울리는쪽은 전두환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0개 ▲
2015-10-28 21:23:13추천 0
4천만 달러면 100억이 아니라 USD1 = 1130원 해서

450억 가량이 되네요

1/15 가 아니라 30% 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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