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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결론이 결혼이 아니라, 연애의 과정에 결혼이 있기를'
-하상욱
우린 나 스물하나, 오빠 스물넷에 처음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찍도 만났네 싶지만
그때는 내가 다 큰 줄 알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k.a 만인의 '아는' 오빠였던 그를 학교 선배이자 동아리 후배로 만났는데
그 무렵 술, 담배, 게임도 안하던 그는
술약속도 아닌(나는 이해가 안감) 커피약속, 밥약속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고
그러면서 학과 우수상을 탔던 신기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별명은 '신'
그의 인생에서 몸과 성적, 노래와 기타실력이 최고조일 때였다.
영어도 잘하고.
느지막히 들어온 동아리에서 동생들에게 온갖것들을 가르치느라 바빴다.
타학교지만 우리 동아리에 잠시 기웃거린 동생도 오빠에게 기타를 처음 배웠다
그치만 내겐 다행스럽게도, 여학우들한테 인기는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처음엔 애정어린 눈빛이 아닌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오빠를 보았다.
여럿 있는 자리에서 카페에서 음료를 가져오거나 문을 열 때,
동아리 방 청소나 물건을 옮길 때 등등
윗학번임에도 먼저 나서서 하는게 좋아보였고
나도 나중에 저래야지..생각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오빠는 주위 여기저기에 밥이고 커피고 참 많이 사주고 다녔다.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 카페를 애용했던 것 같다.
항상 시크한 검정고양이 주인님과 그와 비슷한 정도로 무표정의 시크한 사장님이 운영하던 카페였는데, 그와 별개로 나도 좋아하던 카페였다.
(일주일이 넘게 매번 다른 후배랑 밥을 먹으러 오는 오빠를 보고 사장님이 웃었던 이야기를 가지고 4년 째 놀려먹고있다..)
그러던 오빠였어서 거부감 없이 꽤 많이 친해졌다.
그래, 난 오빠가 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스물 두살이 되었을 무렵
신촌에서 강남역까지 주말 점심을 사주러 오고
커피한잔을 사러 강남역까지 오고.
다른 사람이면 의심이나 했겠지만
오빠라서 별 생각 안했다 .
오 짱 친절한 사람이야!!!+_+
한강이 땡겼던 어느 엄청 추운 날, 아마 2월
우린 바람이 미친듯이 부는 압구정 한강둔치에 갔고
나는 내가 그때까지 스무해동안 무서워..아니 적대시하던 고양이가
우리쪽으로 오는걸 느꼈다.
그리고 오빠또한 키워본적도 없는 고양이와 우린 자연스럽게 놀았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것의 반은 얘 덕분인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과 공감대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나였는데,
말이 너무 잘 통하던 오빠가 신기했다.
역시 머리좋은 사람은 다르군...정도로만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오빠는 그때 자기와 참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세상에 나랑 비슷한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 반가웠다.
근데 어처구니없게도, 이때까지, 혹은 이 다다음 만날 때 까지도 우리는 우리가 썸타는건줄 몰랐다. 사귀기 시작한 다음 한참 뒤에도.
그 때의 나는 무엇을 시작하는 데 상당히 방어적이었기에,
나는 마음이 있었지만 접을 수 있는 선이었다고 생각했고
오빠는 원래 그런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커피에 환장하는 내가 카페인 금지 선고를 받은 어느날,
오빠는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가게를 알아보았고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온다고 하였던 그날
왠지 오늘 오빠가 고백하지않을까 싶었다.
그럼 만나봐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기대같지 않은 애매한 기대를 했었는데
몇 시간 뒤 나는 집에 가는 버스를 찝찝한 기분으로 혼자 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