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요즘에 <어벤져스 2>가 그렇게 난리라면서. 할리우드의 귀하신 분들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촬영을 하고 가신다는 말에 다들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어벤져스 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하늘 아래 완벽한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본 잉여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극비리에 떠돌아다닌다는 <어벤져스 2> 시나리오의 파편들을 입수하여 그 조각을 맞추어 보았다. 완전한 시나리오를 입수하지 못한 바, 이야기의 간극에 상상력을 조금 보태어 보았다.
때는 2014년 대한민국. 세금만 엄청 먹어댔지 대체 어디다 쓰는 용도인지 서울 시민은 아무도 알지 못했던 미지의 공간 ‘세빛둥둥섬’. 사실 그곳에서는 극비리에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혁신적인 프로젝트가 수년 째 진행 중이었다.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단 하나의 시스템. 스스로 끊임없이 보안을 업그레이드 하고 진화하는 자율적 인공지능을 가진 한국 IT 기술의 최고 정점. 그것은 이름하야 ‘울트론 프로젝트’였다.
다 쓸데가 있어서 맹글었느니라...
울트론 프로젝트는 단순한 보안 프로그램이 아닌, 창조경제의 정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국가의 모든 주요부서가 하나로 마음을 모아 그야말로 ‘대통합’의 정신을 갖추도록 지시를 받았고, 그러한 정신은 고스란히 울트론의 제작에 반영되었다.
개인정보를 수집 중인 울트론의 위엄 돋는 자태.
먼저 국방부에서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선 개인정보만 지켜선 되겠느냐’며 아예 무장을 시켜 서울시민들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추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거기에 문화관광부에서는 울트론을 보통의 컴퓨터가 아닌 로봇 형태로 만들어서 ‘대외적으로 한류를 홍보하기 위한 국가적 마스코트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아예 울트론의 주제가를 만들고 가수 싸이를 기용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자는 의견이 오갔다. 아울러 여성가족부에서는 ‘남자 형태의 울트론만 있는 건 성차별 아니냐’며 여성형의 ‘울트로라’도 만들자며 강력히 건의했지만 울트론을 한 대 만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만큼, 담당부서로부터 ‘지금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울트론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전혀 예상 밖의 지점에서 터졌다. 끊임없이 스스로 업데이트를 하는 최첨단 인공지능을 갖춘 울트론이 어느 날 펌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폭주한 것이다. 연구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보안을 위해 수많은 액티브 X를 여러 번에 걸쳐 설치한 만큼, 문제가 일어날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측 프로젝트 담당자는 울트론의 인공지능이 좌익사범과 종북, 무장공비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신원정보를 처리하던 중 북괴의 바이러스가 침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폭주한 울트론은 이미 세빛둥둥섬 깊숙이 위치한 비밀 연구소를 파괴하고 탈출해버린 뒤였으므로 확인할 방법이 전무했다. 담당부서의 직원은 바이러스 전문가 출신 모 국회의원에게 문의했지만 ‘울트론의 향후 행동에 따라서 북에서 침투한 바이러스라고 볼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다른 원인으로 야기된 무언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조또 애매모호한 대답만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울트론은 국가 안보 지킴이에서, 국가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북괴의 위협인지는 불분명했지만, 이미 울트론이 내란을 일으키고 있는 시점에서 결국 정부는 ‘북이 원하는 대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북의 소행’이라는 관심법을 시전하며 울트론을 적으로 규정했다. 또한 내부적인 모든 문제의 뒷감당은 인턴 연구원이었던 수현에게 일임하는 책임전가의 미덕을 시전했다.
이 예쁜 아가씨한테 대체 무슨 짓이에여...
갑자기 나타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 울트론 사태는 각종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지만, 정작 울트론의 개발이 애초에 어디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일절 다뤄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제 순식간에 전 국민의 개인정보는 울트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의연한 국민들은 "이제 와서 뭘 새삼스레..."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울트론이 각종 정보통신사를 장악한 뒤 벌어졌다. 무선 인터넷을 모두 차단해버린 것이다. 3g고 LTE고 터지는 곳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출퇴근길,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좋아요’를 누르지 못하게 되어버린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좌절에 빠졌고, 수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거 왜 이래 씨팔’같은 트윗을 남기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갑작스럽게 ‘과자런’, ‘사탕부수기’등의 게임 순위를 업데이트 하지 못하게 된 시민 중에는 화를 못 이기고 발작을 일으키거나 졸도하고, 심하게는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두고 애도의 물결이 이어진 가운데, 생활 속 위험을 다루던 모 방송프로그램의 작가들은 ‘드디어 소재거리가 늘었다’며 환호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제 울트론의 위협은 국가를 초월한 문제가 되었다. 울트론의 계속되는 업그레이드는 한국을 넘어 세계 국가들의 보안을 위협할 수도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비밀 기관 ‘쉴드’에서 슈퍼히어로로 구성된 ‘어벤져스’를 긴급 파견했다. 이미 맨해튼을 치타우리 종족의 습격 위기에서 한 차례 구해낸 바 있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온다는 소식에 국내 기관들은 안심했다. 물론 해외 순방중인 대통령이 돌아오는 즉시 관련인사들이 차례대로 문책을 당할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또다시 문제는 터진다.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 각종 언론사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이 도착한 공항에 미리 진을 치고 있었던 것. 천재 과학자이자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토니 스타크를 향해 기자들의 플래시와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물론 대부분의 질문은 국가의 안보나 울트론과 무관한, "김치를 좋아하느냐"라던가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느냐"하는 영양가 없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과도한 기자들의 취재공세에 토니 스타크가 당황하는 제스처를 보이자, 동행한 호크 아이와 블랙 위도우는 기자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자제를 부탁했다. 어느 몰지각한 기자의 입에서 "듣보잡은 설치지 말고 꺼져"라는 말이 나왔고 지나치게 직업정신이 투철한 통역사는 애석하게도 이를 충실히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전달하는 우를 범했다. 결과적으로, ‘듣보잡’ 발언은 브루스 배너 박사를 화나게 만들었다...
“김치 안 먹어! 강남 스타일 모른다고 이 색히들아!”
헐크가 공항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어벤져스의 울트론 진압 작전은 점점 지연되기 시작했다. 그 난동의 와중에서도 어떤 기자는 헐크를 향해 "바지는 어느 회사의 제품을 구입했는지" 질문하는 프로정신을 보여주었다고 하니, 이는 가히 칭찬해야 마땅할 기자정신이라 해야겠다.
한 편 캡틴 아메리카로 알려진 스티브 로저스는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따로 출발했다가 착오로 인해 김포공항이 아닌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전철을 타고 서울로 이동 중이던 캡틴은 자신이 탑승한 이후 열차가 한 번도 정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아해 한다. 캡틴은 몰랐지만 사실 울트론이 이미 전철 운행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은 뒤였다. 어벤져스 멤버들의 집결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울트론은 열차를 종점까지 계속 달리게끔 조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대응 또한 빨랐다. 10-4 차량, 즉 전철의 꼬리 칸에 탑승했지만 머리 칸인 1-1 차량까지 도달해서 운전실을 통제하기 위해 그는 열차 안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근데 전철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퇴근 시간이 겹쳤던 모양이다...
한편 본격적으로 울트론 진압에 나선 아이언맨은 위기를 맞았다. 울트론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던 중 울트론의 해킹으로 인해 아이언맨 슈트의 인공지능 컴퓨터, 자비스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다시 슈트가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선 부품교체가 시급한 상황. 아이언맨은 서둘러 용산 전자상가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하는 부품을 찾아서 값을 치르려는 찰나, 되레 점원에게서 질문이 날아왔다. 자비스의 통역에 의하면 ‘물건 값이 얼마냐’는 것이었다. ‘아니, 물건을 사는 건 난데 왜 나한테 값을 물어봐?’ 자비스의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토니 스타크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비스의 통역은 정확했다.
하릴 없이 달라는 대로 부품 값을 다 치르고 만 아이언맨.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부품을 교체하니 자비스가 제대로 작동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류가 나고 말았다. 화면엔 각종 팝업창이 뜨기 시작하고 한술 더 떠 슈트는 아예 작동을 멈춰버렸다. 용산역 통로 한 가운데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된 토니 스타크. 뒤늦게 열차에서 탈출한 캡틴과 토르가 도착해 그를 부축해서야 가까스로 집결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한 차례 난동을 일으킨 이유로 브루스 배너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반 강제로 구금당한 상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언맨마저 활약할 수 없는 통에 어벤져스는 곤경에 처한다. 이제 싸울 수 있는 멤버는 블랙 위도우와 호크아이,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까지, 넷뿐이었다.
강남역 테헤란로에 울트론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네 명의 어벤져스는 황급히 이동해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울트론이 아닌 무장한 전투경찰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미 국내의 모든 공공기관의 네트워크까지 울트론의 통제 하에 들어가 버렸고, 경찰병력의 지휘권마저 손에 넣었다. 울트론은 경찰당국에 어벤져스 멤버들의 집결을 불법시위로 규정한다며 해산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전경들과 싸울 수도 없는 처지의 어벤져스는 오해라며 상황을 해명하려 했지만, 통역사는 이미 달아난 뒤였고 다급한 상황 속에서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경찰대원은 없었다. 최대한 무력 사용을 자제한 채 방어만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상황이 울트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편 비록 별에서 오진 않았지만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미인 연구원 수현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상부에서는 ‘국내에서 울트론이 만들어졌다는 일말의 증거도 남기면 안 된다. 울트론의 제작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삭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모든 자료가 담긴 슈퍼컴퓨터 앞에 서서 수현은 갈등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 쉴드의 수장 닉 퓨리가 나타났고, 닉 퓨리는 그녀를 설득해서 울트론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토니 스타크에게 넘겼다. 가까스로 기능을 회복한 쟈비스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이용해 그들은 울트론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울트론의 보안은 과연 대단했다. 몇 겹에 걸쳐서 설치된 액티브 엑스의 벽은 난공불락 같았다. 어떠한 해킹 프로그램이나 바이러스로도 울트론을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쟈비스는 한 가닥 희망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울트론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설정된 프로그램만은 바꿀 수 없었다. 국가가 공인한 이메일 주소인 만큼 스팸메일 내지는 바이러스 침투의 확률이 무한히 0으로 수렴되는 샵메일. 울트론의 제작 당시 생성시킨 고유의 메일주소로 국가공인메일을 보낸다면 반드시 열어보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토니 스타크는 수현에게 어떤 문구를 메일에 적어서 보내야 할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토니를 대신해 쟈비스의 음성인식 시스템을 이용해 단 두 줄의 문장을 적어 울트론의 주소로 발송했다.
금일 저녁 예비군 훈련
소집 장소 강남 테헤란로 8시
어벤져스가 전경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바로 그 장소였다. 캡틴과 토르, 블랙 위도우와 호크 아이가 가까스로 전경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와중에 거짓말처럼 울트론이 나타났다. 국가공인메일에 전송된 메시지는 울트론으로서도 거부할 수 없었다. 본체에 내장된 스피커에선 유명작곡가에게 의뢰해 만든 울트론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쌈마이스러울 수 없었다.
“모두 비켜!”
여태 무력을 행사하지 않던 토르는 단번에 전경들을 멀리 날려 보냈다. 시야가 트이자 블랙 위도우와 호크 아이는 그동안 아껴왔다는 듯 총알과 화살 세례를 퍼부었고, 구금되어있던 브루스 박사 또한 어느새 합류하여 헐크로 변해 울트론에게 일격을 날렸다. 거짓말 같은 최후였다.
에필로그
공식 발표에 따르면 울트론의 하드드라이브에 저장되었던 국민들의 개인정보는 모두 무사히 회수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벤져스의 활약을 보도하는 언론사는 없었으며, 테헤란로에서 있었던 사건은 할리우드의 영화촬영으로 인한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다.
어벤져스 멤버들은 모두 서울의 어느 조그마한 식당에 둘러앉아 그들만의 뒤풀이를 즐겼다. “김치도 먹어보니 나쁘지 않은데?” 브루스 배너 박사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토니 스타크도 한 마디 거들었다. “내 친구 중에 한국인이 한 명 있는데, 한국에 오면 꼭 전통주를 먹어보라고 권하더군. 그런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단 말이야...뭐라고 했더라? 쿡...국...쟈비스? 혹시 알고 있나?”
어벤져스 멤버들은 모두 토니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해 귀 기울였다. 술에는 관심 없는 척하던 캡틴의 얼굴에서도 은근슬쩍 기대감이 비쳤다. 이내 쟈비스에게서 대답을 들었는지, 토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맞아! 그거야! 아주머니, 여기 국뽕 한 사발 주세요!”
그리고 나타나는 어벤져스 2의 로고.
............
.........
.....
..
...제작진의 이름이 담긴 자막이 모두 올라간 후 쿠키 영상이 나온다. 어쩐 일인지 토르와 로키가 함께 명동거리 한 가운데에 서있다.
“대체 이 변방의 나라까지 나를 데려온 이유가 뭐야, 형? 새로운 형태의 벌칙인가?”
로키가 이죽거리듯이 묻자 진지한 표정으로 토르가 대답한다.
“부라더, 개그할 때가 아니다. 매우 강력한 적이 나타났어.”
그리고 이야기는 <어벤져스 3>로 이어지거나 말거나...
※새삼스럽지만 본 시나리오는 당연히 사실과 관계없으며, 트위터 등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패러디 개그들을 취합하여 만든 가상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하는 바입니다. 마블의 공식발표대로 한국이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영화로서 <어벤져스 2>가 훌륭히 완성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잉여일기,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