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은 스스로 타오르지 못한다. 탈 수 있는 물체가 있어야 불꽃은 타오를 수 있다. 타오르는 불꽃이 뜨거운 이유는, 태워지는 물체의 아픔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가 꽤 쌀쌀하군..”
주섬 주섬 옷을 챙겨입으며 성진이 말한다.
“어디 가?”
성진의 말에 졸다 깬 한 여자가 안방에서 문을 열며 얘기한다.
눈이 마치 아름다운 별과 같은 여자다.
“친구좀 만나러.”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하늘에서 어느덧 눈이 몰아친다. 첫눈이지만 꽤나 기분 나쁘게 질척이며 내린다. 평소 추위를 잘 안타던 성진이지만, 오늘은 옷을 바리바리 겹쳐 입는다.
“미안해, 첫눈 내리는 날은 함께 하기로 했었는데..”
성진이는 꽤나 아쉬워한다. 세연이를 만난 후로 함께 하는 첫 첫눈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친구라서 어쩔수가 없네.. 정말 미안.”
“괜찮아~”
평소 같으면 안된다고 울고 불고 보챘을 세연이지만, 왠지 오늘은 얌전하다. 어쩔 수 없는 성진의 마음을 이해 한 눈치다.
“...대신 내일은 스키장 대려가 줄게.”
“나 내일은 시간 없어.”
“아.. 응.”
평소답지 않은 그녀의 태도에 성진이 당황한다. 오늘 함께 있어주지 못해 화가 난 모양일까.
그녀는 얼른 성진을 문 밖으로 배웅한다. 세연의 인사를 뒤로, 성진이 웃으며 밖으로 나선다. 세연도 애써 웃으며 성진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성진은 삐진 듯한 그녀를 위해 오는 길에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한 다발 사주리라 다짐한다.
‘꽃은.. 음.. 빨간 장미꽃이 좋겠군.’
빨간 장미꽃의 꽃말은 ‘아름다움’. 그는 아름다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성진과 세연은 함께 살지만, 아직 정식 부부는 아니다. 사실 말하자면 그들은 조금 특이한 케이스다. 성진도, 세연도 결혼 생활을 하다가 배우자와 헤어졌다. 단지 차이점은, 성진은 아내가 죽어 헤어지게 된 것이고, 세연은 배우자가 떠나버려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어찌됐든, 그들은 그래도 꽤나 잘 맞는 커플이다. 요즘 들어 세연이 이유 없이 뭔가 차가워 진 것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어느 연인이나 그런 때는 있는 법이니 성진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컨디션 하나를 샀다. 오늘은 취하면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만날 친구는, 몇 시간 전 생 두부를 한 입 베어 먹은 놈이다. 몇 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오늘에서야 출소 한 것이다. 그런 놈과 함께 술에 취해 깽판을 부리면, 상상 할 수도 없는 대형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오늘은 취하지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한다.
“여, 잘 있었나?”
“오랜만이다 김태호? 그래 그래, 콩밥 먹고 나온 기분이 어떠냐?”
꽤나 번듯하고 잘생긴 친구가 성진에게 인사를 건낸다. 범죄자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잘생기고 키도 크다.
“시끄럽다 마. 거긴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아이가. 술이나 빨리 한잔 받으라, 크크.”
완연한 부산 사투리로 태호가 술을 건낸다.
몇 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놈이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여서 그런지 성진은 어색하지 않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성진은, 태호가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놈이지만, 반성만 깊게 하면 이해 해 주리라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 반성만 제대로 하고 있다면.
소주를 함께 원샷 하고, 성진이 먼저 입을 띠었다.
“참 너도 결혼 했었었지? 니 아내는 잘 사냐? 니 옥살이 끝내고 이제 막 왔는데, 아내부터 만나야 하지 않겠냐?”
“나도 만나고 싶다 아이가. 집에 가보니까 없드라. 이 망할년..
“뭐야, 집 나간거야?”
“니 미친나. 아까 전화가 왔는데 지금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내일 집으로 다시 온다카드라.”
“햐.. 좋은 부인 만났군. 넌 죽을때까지 결혼 안나고 이여자 저여자 만나고 다닐 줄 알았는데.. 니가 결혼을 하다니 어떤 여잔지 내가 궁금하네.”
호탕하게 웃으며 태호가 대답한다.
“크큭. 그년이 고 입술이 참말로 이쁘다 아이가. 입술이 앵두같이 빨갛다. 가지고 완전 앵두같다. 내가 고 입술에 빠져버렸지.”
태호가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문다.
“야. 내 앞에서 담배 피지마. 내가 담배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르냐?”
“에? 니가 전에 말하길 니 아내도 골초라고 안했나? 그래서 난 괜찮을 줄 알았다아이가.”
성진의 아내가 죽은 걸 모르는 태호는, 눈치 없이 성진의 아내 얘기를 꺼내버린다.
“...한마디만 더 뻥긋하면 죽인다.”
죽은 전 부인 얘기가 나오자, 성진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손에 들고 있던 쇠 젓가락이 악력에 휘어버렸다.
“하하, 진정해라 진정해 이 시키야. 담배 쫌 피는 것 같고 뭘 그리 심각하노?”
태호는 성진이 화난 이유 조차도 파악 하지 못한다. 그 점이 성진을 더 화나게 한다.
“크크, 말보로는 상당히 재밌는 담배라고.”
“빨리 안꺼?”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ccasion”
(남자는 로맨틱한 사건으로 사랑을 기억한다.)
“응?”
“크크.. 말보로의 뜻이데이.. M A R L B O R O라는 이 담배의 이름은 방금 말한 문자의 줄임말이다.”
“하.. 뭐야 그 허접스런 말장난은. 아무렇게나 끼워 맞춘 티가 팍팍 나는데?”
태호가 말한 말보로의 뜻에 성진은 코웃음을 친다.
“뭐 그럴수도.. 그치만, 이말에 얽힌 배경 이야기는 더 재미있다아이가. 꽤 감동적이라고. 한번 들어보거래이.. 킥”
“야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말보로는 참 이상해. 왜 필터가 빨갈까? 또 립스틱 향도 옅게 나는 것 같고. 옛날엔 이러지 않았다던데..”
“그치? 이건 전설적인 이야긴데.. 사랑하는 연인에게 차여, 스스로 불을 지르고 죽어가는 남자가 있었데. 그 순간에 그는, 그녀의 빨간 립스틱이 뭍은 필터를 입에 물고 죽어갔데. 그런데 경찰이 왔을 때 불길 속에서 죽은줄 알았던 그 남자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어. 그 남자는 간신히 살아남아 외국으로 떠났다는 거야. 그곳에서도 그는 그녀의 빨간 립스틱이 묻은 담배를 잊을 수 없어, 말보로를 필터가 빨간 담배로 개조시켰데..”
“그게 말이 되냐? 완전 웃긴 이야긴데? 근대 그 남자는 왜 스스로 불을 지른거야?”
“기다려봐. 이건 긴 이야기야. 처음부터 말해줄게. 참, 그전에 말보로의 뜻은 알아?”
“모르는데?”
“그것부터 말 하고 이야기를 해주지.”
『 Man's Abandonded Roses Lead Blaze Of 'Rended O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