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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보고싶어 미치도록 힘듭니다.
게시물ID : gomin_244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산낙지
추천 : 3
조회수 : 53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12/02 14:49:02
저에겐 1살 많은 형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땐 별로 친하지도 않았죠.
맨날 싸우기나 하고 소리지르고 못되게만 굴었죠.
중학교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녀서 학교에서 마주치는 것 자체가 꺼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부터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고
야자끝나고 잠깐 1,2 시간 만나는게 고작이었을 정도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죠.
그러면서 서로 무관심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형과 같은 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형은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전 기숙사 신청기간을 놓쳐서 자취를 했지요.
형이랑 같은 대학이지만 과도 다르고 전 자취를 했기에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제가 아침강의 못 들으러 갈까봐 아침 일찍 제 자취방까지 와서 절 깨우기도 하고
제가 요리를 못하기때문에 밥은 굶지 않나 싶어 기숙사에서 반찬 나오면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부탁해서 반찬 싸오고 그랬습니다. 창피함을 감수하면서까지요.
정말 그 때 형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학기부터 같이 기숙사 들어가서 정말 행복하게 지냈죠.
한가지 맘에 안드는 점이 있었다면 당시 형한테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돈을 너무 쓴다는 것이였죠.
집안도 어려운데 아무리 알바해서 번 돈이라지만 그렇게 돈쓰는게 싫어서 전 형한테 온갖 욕설을 퍼부었죠.

뭐 어쨋든 세월이 흘러 09년 8월 31일 형이랑 같이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반입대하면 전방간다 어쩐다 해서 그냥 입대일짜만 같은 날에 신청했죠.
그렇게 우리 형제는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다른 중대에 배치받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감동받은게 있었죠.
추석날 형이 소속 소대장에게 사실 같이 입대한 친동생이 있는데 추석이라 만나고 싶다고 면회를 신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형의 소대장과 제 소대장, 분대장이 신경 써주셔서 면회허락해줬죠.
그 때 저랑 형은 행정실에서 서로 부둥키면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였죠.

훈련병기간이 그렇게 끝나고 서로 다른 자대에 형과 저는 배치받아 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자대에서는 서로 일이 바빠 연락도 자주 못하고 휴가 때 한번 만난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10년 5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근무서고 돌아왔는데 중대장이 절 급하게 찾더라구요.
그러면서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형이 지금 쓰러져서 수술 받고 있다고...

급히 청원휴가를 내고 대대장 레토나 타고 형이 입원한 의정부 C병원으로 갔습니다.
이미 가족들 친척들 모두 있었고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평소 형의 태도가 누가봐도 바보같이 성실하고 일도 잘 하는데다가 나서기를 좋아했는데
이 버릇 못 고치고 부대에서도 나서다가
제독병 겸 인사병이라는 이중보직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당시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지고나서
전군 천안함 후속조치 훈련과 형의 부대 감사가 있었는데
형이 인사병 일을 밤새서 하고 그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받은 상태에서
준비태세 훈련을 받다가 과로로 인해 쓰러지면서 뇌출혈이 온 것입니다.
뇌출혈이란게 빠른 시간내에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데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군 절차가 얼마나 쓸데없이 체계적인지...
여기저기 보고하는데 시간 다 가고, 군병원갔더니 수술이 안된다고 해서,
민간병원갔는데 민간병원에서는 또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부모님이 직접 병원에 오시기를 바랬습니다.
물론 해당부대 간부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나
형한테 일부리기는 좋아도 책임지기 싫었는지 저희 부모님이 직접 오시게 했습니다.
저희집은 자가용이 없는데 한창 일하실 시간에 급하게 택시타고 2시간만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허비되었으니 상태가 심각했고 뇌사상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정말 만약 기적이 있다면 뇌사상태에서 깨어날 수도 있지않겠느냐라고
물어보았으나 의사의 말은 한결같았죠.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오래 살아봐야 3일정도 버틸겁니다."

그런데 형은 3일이 아닌 6일을 버티는 겁니다.
어쩌면 정말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남아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기로 했고, 
전 일단 부대복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대복귀 당일 밤 12시 쯤 연락이 왔습니다.
형이 사망하셨다고...
저는 거짓말이길 바랬습니다. 꿈이길 바랬습니다.
중환자실 복도에선 가족들과 친척들이 울고있었습니다.
설마설마하며 중환자실을 들어가자 형은 아직 호흡기를 떼지 않고 숨을 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심장은 뛰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저때문에 호흡기를 때지 않았던 것입니다.
형의 손을 잡자 전 알았습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형의 장례식을 끝마치고 화장을 하는데 제일 먼저 생각난게
돈 많이 쓴다고 욕한게 생각나더라구요. 전 개새끼였습니다. 
형은 그렇게 저한테 잘 해줬는데, 난 형한테 해준게 욕밖에 없구나.
차라리 제가 대신 죽고 싶었습니다.
정작 나쁜 새끼는 여기있는데 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먼저 떠나야하는지...

결국 형은 국가유공자가 되고, 전 의가사했습니다.
벌써 의가사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형 생각이 간절합니다.
남들 전역하면 재입대하는 꿈 꾼다고 하죠?
전 형 꿈을 꿉니다.
바로 어제도 형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형 얼굴보면 좋다가도 깨어나면 진짜 미칠것 같습니다.
아직도 형이 보고싶습니다. 아니 어떻게 잊겠습니다.
올해 전 형이랑 동갑입니다.
이제 한달뒤부터는 형보다 더 나이가 많아지게됩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더 그립습니다.
특히 게시물보다가 가끔 추억거리보면 더 그립습니다.
옛 사랑은 잊는다지만, 가족이라 잊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친구들에게 위로받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니 저보다 더 슬퍼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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