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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계약연애
게시물ID : art_20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비트
추천 : 0
조회수 : 61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12/03 14:12:08

성준은 엠티를 가는 기차에서, 엠티에 참가한 일을 후회했다. 동아리에서 그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 유령부원이었다. 동아리 부원 중에 친한 사람도 없고, 넉살이 좋게 아무 곳에나 끼어서 놀 수 있는 성격이 아닌지라 영 불편했다. 동아리 사람들이 가자고 부추겨서 오기는 했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지루했다. 사람들과 처음 만나 인사 나눈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끌고 온 녀석들은 뭐가 좋은지, 한쪽에서 처음 보는 후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서 끼어보려 했지만 딱히 말할 거리도 궁했고,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는 도착지에 당도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담배를 한대 물었다. 담배에서는 식당에서 나눠주는 물수건 같은 맛이 났다.

숙소는 허름한 겉과는 달리, 꽤나 아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짐을 풀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성준은 사람들이 가져온 식재료들을 분류해 놓고, 쌀을 씻었다. 여전히 자리가 불편해서, 밥을 앉혀놓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동아리 후배로 보이는 여자애가 말을 걸어 왔다. 여자애는 뭐가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어댔다. 그리 귀찮지는 않아서 적당히, 대구를 하며 밥을 준비했다. 옆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식사를 마치고 물가로 나갔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더니만 한두 명이 물에 젖기 시작하자 이내 전체가 장난을 시작했다. 그도 그 사이에 끼어서 즐겁게 놀았다. 비록 덩치 큰 녀석들에 의해서 물에 던져지기는 했지만, 기분이 상쾌해졌다

해가 질 때가 다 되어서 일행은 숙소로 돌아왔다. 먼저 씻은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였다. 성준은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해가 피를 뿜으며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산을 넘어가다가 산등성이에 찔린 듯 붉은 빛이 하늘에 흩뿌려졌다. 성준은 노을을 보며 오늘 하루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라 생각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식탁에는 모든 남녀를 서로 연인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물건이 올라왔다. 그 물건은 인류가 만든 인간관계의 최고의 미약이자 최악의 말썽꾼이었다. 수많은 역사가 이 물건으로 이루어졌고 또 무너졌다. 성준도 잔에 이 물건을 채웠다.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여기저기에서 이야기가 피어났다. 성준은 때때로 흥분해서 커지는 목소리를 조금씩 누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가 살아왔던 역사가 노래되고 가치관이 부딪치며 전쟁이 벌어졌다. 그들은 그 이야기들 속에서 역사가였으며 지휘관이었다.

"선배 있잖아요."

무르익은 분위기가, 조금 잦아들었을 때였다. 누군가가 성준을 불렀다. 그가 돌아보자, 언제다가 왔는지 여자아이 둘이서 같이 앉아 있었다. 조금은 머뭇거리면서도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아이와 수줍은 듯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는 아이였다.

"응?"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다른 아이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러자 왜에? 라면서 작게 소곤거리고는 투닥였다. 성준은 무슨 일인가하고 바라보다가, 두 사람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고개를 돌리려 했다.

"얘가 선배 좋아한데요"

예상 밖의 말이라 성준은 속으로 당황했다. 술이 조금 들어가서인지,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를? 왜?’ 그는 정신이 차리기 위해, 물을 한잔 마시다는 것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더욱 정신이 없었다. 옆을 보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는 귓불까지 빨개졌다.

"조건이 있어"

그녀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여전히 빨갰지만,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녀는 성준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 나 이외에 다른 남자와 단둘이 술 마시지 마, 대신에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건 괜찮아”

“둘째. 그 자리에서 탄로 날 귀여운 거짓말 외에는 하지 마, 대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더 이상 묻지 않을 게”

“셋째. 나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다른 이름을 지어줘. 남들도 다 부르는 오빠나 선배 같은 대명사로 부르지 마.”

"넷째.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주었으면 해

"이상은 상대방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거야 문제가 있거나 추가하고 싶은 것 있어?"

그녀는 그가 하는 말을 곱씹어보더니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피지 마요"

성준은 자신의 옆에 놓인 디스플러스를 한대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는 그 모습에 낙심한 듯 보였다. 성준이 담뱃갑을 구기자, 그녀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성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연기가 그의 입을 지나 하늘로 향해 녹아들어갔다. 성준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 없던 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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