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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모기
게시물ID : readers_223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백수일기장
추천 : 3
조회수 : 2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31 03: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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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곤한 몸을 뉘이고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닫아, 단칸방의 어둠마저 아득아득해질즈음 날카로운 날개짓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세상의 모든 날카로움을 비웃듯이 더욱 세차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저 탐욕스런 비행의 파공음. 종을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누른다. 방에 불이 들어오면 이내 눈에도 불을 켜고 단잠을 방해하는 모기를 찾아 벽이며 옷걸이를 샅샅이 살펴본다. 녀석에게 몇 방 뜯겨 겪을 가려움증과 화증보다도, 지금 당장 나의 잠을 방해하는 저 날개짓 소리가 나는 너무나도 짜증스럽고 용서할 수 없을 따름이다.

 가증스럽게도 녀석은 새까만 몸을 하고서 침대 옆 하얀 벽지 위에 붙어 가만히 가만히 앉아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고, 그 누구도 자신을 보지 못했으며, 앞으로 보지 못하리라고 장담하는 것처럼. 녀석은 자신만만하다. 그만큼 방심하고 있다. 잡으려면 지금뿐.... 심기일전하여 한방에 녀석을 보내지 않으면 오늘 밤 안락한 잠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

 아뿔싸.... 그러나 내 손은 애꿎은 벽만 후려쳤을 뿐, 기대했던 까만 사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 번 눈으로 놓친 녀석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찾는 일이란 요원한 바람일 뿐이다. 지금처럼 깊은 잠으로 빠져들다가 만 어정쩡한 기분과 동체시력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에 단칸방의 벽면을 사방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괜시리 검은 옷가지며 가방이며 모자를 툭툭 쳐본다. 그러나 역시 녀석은 떠나고 없다. 

 떠난 녀석을 뒤로하고 다시금 까만 방에 가만히 누워본다. 그러나 잠은 오질 않고, 점점 더해오는 내 몸의 긴장과 어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이 집중된 나의 귀만 느껴진다. 잔뜩 긴장되어 잠은 오질 않고, 잠이 오질 않자 공연한 망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러는 나도, 모기도 그저 불쌍할 뿐이라고. 어차피 녀석은 오늘 밤 비행에 성공해서 달콤한 피로 배를 가득 채우더라도 이 원룸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분명히 내일 아침 무거운 배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고 느린 비행으로 인해 나에게 발각되거나, 둔하게 벽에 앉아 있다가 벽지에 핏자국만 남기게 될 운명이겠지. 하수구 구멍으로 올라왔는지, 낡아서 허술해진 방충망을 뚫고 우연찮게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달콤한 피를 꿈꾸다가 너는 그렇게 벽지의 핏자국으로 끝나게 될 운명인거야. 그러니 너도 불쌍하고 오늘 밤 잠 못이루는 나도 불쌍한거지.

 밤은 깊어가고, 지루한 긴장과 망상은 끝이나질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주 문득.... 나도 모기와 같다는데 망상이 미쳐 스스로가 불쌍해진다. 어쩌면 나도 어떻게든 달콤한 피를 한 번 빨아보겠다고 이 원룸에 들어와 앉아, 벽지에 한 줌 핏자국이 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아닌가. 아니아니.... 그래도 녀석은 스스로의 날개짓으로 여기까지 들어와 피라도 한 번 빨아보고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나는 취직을 명분 삼아 부모님의 돈으로 여기에 들어왔고, 원하던 것도 달성할지 어떨지 기대도, 자신감도 없다. 이대로는 벽지에 핏자국은 커녕 세상에 한 줌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갈 것이라는 애석한 마음이 가슴에서 올라온다.

 어쩌면 이미 나는 모기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모두가 하찮게 여기고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모기.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어쩔수 없이 원룸으로 다시 기어드는 모기. 나도 밉고 세상도 미워서 그다지도 날카로운 날개짓을 하는 것일까.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뿐이라서.... 단지 그렇게 날카롭게 날선 마음으로 날개짓을 해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서. 그래서 녀석은 이렇게 깊은 밤중에 날카롭게 날카롭게 귓전에 날개짓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다 허튼 망상이라고 허공을 휘휘 저어본다. 나는 모기가 아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자야 내일 또 다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그러나 역시 쉬이 잠에 들 수 가 없다. 아마도 아직 녀석이 내 방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 가만히 있다가, 어느새 뛰쳐나와 또다시 그 날카로운 날개짓을 해댈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잠 못드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역시나 다 그 날개짓 때문이다. 

...다 그 날개짓 때문이다...
출처 백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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